대학생 새내기의 풋풋한 연애
다들 한 번쯤은 대학교에 가면 CC(캠퍼스 커플)에 대한 로망이 있었을 것이다. 다들 CC는 하얗고 순수한 1학년 때 해야 한다고 선배들이 조언을 해주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도 1학년 2학기 때 CC가 되었다.
연애 초 반에는 항상 그렇듯이 분위기도 좋고 서로 얼굴만 봐도 에너지가 넘쳤다. 과가 달라서 교양과목 한 과목 정도는 같이 들으려고 미친 듯 애 수강신청도 해보고 공강도 같은 날로 만들기도 했다.
강의 사이에 틈이 생기면 학교 안에 있는 연못 근처에 앉아서 수다도 떨고 학교 생활이 매우 행복했다. 아주 가끔은 대출(대리 출석)도 해서 서로의 학점도 챙겨주는 의리도 있었다. 이 시절이 나의 낭만 시대였다.
우리 학교는 기숙사가 부족해서 대다수 한국 유학생들은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해서 지냈다. 한국처럼 원룸 개념이 아니라 아파트에 방 하나를 계약하는 샘이다. 예를 들면, 방 3개, 거실, 화장실 1개인 구조의 아파트가 있다고 생각하면 502호 안에서 방 3개 중에 1개만 계약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가 合租(흐어쭈)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익숙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옆 방에 남자가 살 수도 있고 여자가 살 수도 있다. 그건 복불복이다. 나는 옆 방에 커플이 살고 있었던 집이었는데, 그 커플이 싸움을 했는지 새벽에 엄청 큰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던지는 소리, 깨지는 소리 등.. 그때 당시만 해도 어렸던 나는 겁에 질려 전화를 걸게 되었다.
내가 그 친구에게 고마운 점은 항상 무엇을 하고 있던 내 전화를 4년 동안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새벽에 전화를 받은 그 친구는 내 방으로 와서 내가 잠들 수 있도록 옆에서 있어주었다. 그때 처음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커져갔다.
내가 전시회, 공연 등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중국에서 열렸던 전시회나 공연 또는 연극 같은 것은 항상 같이 보러 갔었다. 물론 그 친구는 예술에 대해서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지만 나랑 같이 다니면서 작품에 대해서 같이 생각하고 의견을 공유하면서 점점 취미 생활도 비슷해져 갔다.
나는 그때 느꼈다.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면 상대방의 장점을 닮고 싶고 같이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는 것을.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PC방을 가본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 친구는 고등학생 때부터 유학 생활을 해서 혼자 심심할 때는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가 나에게 같이 PC방 가서 게임을 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할 줄 아는 게임이라고는 크레이지아케이드, 메이플스토리 그리고 카트라이더뿐이었다. 내가 유학했던 시기에는 LOL(리그오브레전드)가 유행이었다. 그 친구가 처음으로 소원이라고 간절하게 부탁하여서 나는 속성으로 게임을 배우고 같이 적을 물리치러 갔다.
그러다가 1년쯤 되었을 때 위기가 왔다. 인간은 늘 처음에는 연기를 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가면을 벗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 친구도 처음에는 부지런하고 본인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섭섭하지 않게 매일매일 옆에서 잘 챙겨주고 연락도 잘해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침잠이 많아지고 심지어 중간고사도 공부를 못했다며 포기하는 등 점점 내가 배울 점이 사라져 갔다. 이제는 반대로 내가 그 친구 기숙사에 가서 강의실 가라고 깨워주고 어려운 과제가 있으면 도와주는 등의 거의 현실판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같은 느낌이 되었다. 그래도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었어서,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는 또 찾아욌다. 그 친구가 군대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말라서 공익으로 빠지게 되었다. 물론 공익이라 연락도 자유롭고 출퇴근이라서 괜찮았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무조건 가야 하는 거라서 난 기다려줄 마음이 그때까지만 해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공익을 지원하고 합격까지 해놓고 한국 입국을 두 달 정도 남아있는 상태에서 나에게 통보를 한 것이다. 그 친구가 나에게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물론 기다려줄 수 있지라고 답하였지만 이 시기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올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친구가 한국에 들어갈 날이 되었다. 기초군사훈련 4주간은 연락이 안 되었지만 중국에서 틈틈이 편지도 보내주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하였다. 그리고 훈련소를 퇴소하고 근무지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 친구는 공립학교 장애인 지원근무였다. 내가 부산을 가기도 하고 그 친구가 어렵게 해외여행 신청을 해서 중국에 오기도 하였다.
너무 멀리 있어서 그런지 점점 그 친구의 연락 횟수는 줄어가고 처음과는 달리 카톡에도 성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잠이 많은 친구인 건 알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니 새삼 더 느껴졌다. 나는 반대로 잠이 별로 없어서 오래 자는 사람을 이해 못 하는 편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결혼을 약속하고 미래에 제출할 혼인신고서도 작성하기도 했다.
나의 모든 것들을 이뻐해 주고 지지해 주는 친구였는데, 아무래도 장거리다 보니 연락 주기도 점점 늘어나고 그 친구의 잠자는 시간도 다시 원래대로 늘어나서 신뢰가 점점 떨어져 갔다. 내가 칭찬했던 부지런함도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갔다.
전에 이야기에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행복할 땐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사이가 안 좋을 때는 외줄 타기를 하듯이 아슬아슬하게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가장 순수하게 감정에만 집중하며 연애를 해서 그런지 아직까지 생각이 많이 난다. 내 카톡 아는 친구 목록에 뜰 정도면 그 친구가 내 연락처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인데, 서로에게 좋은 추억 중에 하나였길 바란다.
그 친구와 끝내 결별을 선언하고 또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 친구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내 감정은 단순히 그 친구가 옆에 있지 않다는 서운함을 나타내는 것뿐이었다는 것을... 나의 20대 초, 중반을 내 안에서 같이 살아서 그런지 그 친구에게는 딱히 나쁜 감정은 없다. 혹시나 우연이 만나서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제는 웃으면서 그때 이야기를 추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나의 낭만적인 시대가 끝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