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학생활(2) 학점과의 전쟁 / 언어와의 전쟁
이번 이야기는 유학생활 중에서 가장 돌풍이 휘몰아쳤던 시기에 대해서 써 내려가보려 한다. 누구나 살면서 위기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 글의 제목을 “나의 춘추전국시대”로 적은 이유는 중국 역사에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변화 기를 일컫는 말이다.
이처럼 내가 대학교 1학년 생활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많은 위기는 겪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1학년 때는 유학생들끼리만 강의를 들어서 서로 중국어 실력도 고만고만하고 강의 내용도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학점을 무난하게 딸 수 있었다. 하지만 2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국제경제학 / 국제금융학 / 국제무역학개론 / 국제경제통상법 등의 전공으로 들어가면서 중국인들과 같이 강의를 듣고 경쟁해야 했다. 한국어로도 어려운 경제와 무역을 중국어로 하려니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그 때서부터 이제 큰일 났다는 것을 직감하고 학교 도서관으로 거의 출퇴근하다시피 다녔다. 시험 기간에는 강의 끝나고 도서관 가서 공부하고... 밥 먹고.. 그러다 보면 해는 지고 저녁이 되어 있었다. 중국인들은 모국어다 보니 번역의 과정이 필요 없었지만 중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에게는 전공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재미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공부하는 게 즐거웠다. 내가 관심 있고 잘하는 분야여서 그런지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역시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서 하면 스트레스가 아니라 흥미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시험기간이 아니어도 도서관을 가서 에세이 같은 읽기 편한 중국어 책을 빌려서 읽곤 했다. 한국에서는 E-Book으로 보다가 오랜만에 아날로그 식으로 종이책을 읽으니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열심히 공부한 결과... 더 멘붕이었다. 유학생들은 역시 중국인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었는가? 학점이 너무 판타스틱 그 자체... 그다음부터는 작전을 바꿨다. 각 과목 강의실에서 중국인 친구 한 명을 만들어서 그 아이가 귀찮지 않은 선에서 내가 물어보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다행히 중국인 친구들이 친절해서 족보랑 노트 필기 같은 것을 빌려주고 공부도 도와줘서 학점이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시련은 1학년 때는 교수님들이 외국인인 것을 고려하여 중국어를 또박또박 정자로 필기해 주시거나 컴퓨터로 간체자를 직접 써주시기도 하였다. 하지만 2학년 때부터는 외국인 배려라곤 없었다.. 우리가 한글을 날려쓰듯이 한자를 날렸으니 정말 이건 답이 없었다.. 나를 위해서 판서를 또박또박해달라고 하는 건 또 선 넘었으니.. 그래서 판서 내용을 사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의 쉬는 시간이나 교수님 사무실에 가서 “교수님, 정말 죄송한데.. 혹시 판서 내용 이게 맞는지 확인해주실 수 있으실까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교수님의 대답이 의외였다. ”너 어느 나라 사람이야? “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기분이 나빴다. 무슨 학생을 국적으로 차별하는지... 그래서 당당하게 한국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이후의 교수님 대답을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너 외국인인 거 티 났는데, 배려해 줄 수 있었는데 일부러 안 했어. 근데 너처럼 이렇게 질문하는 학생 처음이야”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상황도 이해가 갔다. 대부분 외국인들은 중국인과 같이 수업 듣는 강의를 선택하게 되면 그 강의는 버리는 과목으로 생각하고 수업을 잘 안 듣는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다른 과목으로 학점을 채우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일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내 목표는 3학년 1학기까지 학점을 다 채우고 2학기부터는 자격증 공부 등 다른 것들을 하려고 매 학기 26학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강의를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버리는 강의는 있을 수가 없다. 나는 교수님에게 말했다. “저는 3학년 1학기까지 학점을 다 채워야 돼요..”라고 말이다.
나의 질문을 계기로 교수님도 판서를 조금 더 명확하게 해 주시고 강의 시간에 가끔 질문도 해주셨는데, 많은 중국인들 속에 홀로 외국인이어서 더 주목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1학년과 2학년을 마치면서 졸업 학점 절반 이상을 채울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대학교에서 공부만 한 아이로 착각할 것 같은데, 시험기간에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나도 대학 생활을 즐겼다. 학교 근처 쇼핑센터 가서 중국인 친구들과 쇼핑도 하고 CGV 가서 영화도 보고 한국의 대학생들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나에게 한국인 친구는 CC였던 그때 당시 남자친구와 한국 유학생회뿐이었다. 나는 한국인들과 친해질 생각이 별로 없어서 중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외국인 친구들과 많이 놀았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와 중국어가 자연스럽게 늘기 시작했다.
역시 책상 앞에서 하는 공부도 좋지만 직접 겪는 인생에서 배우는 공부가 삶에 더 유익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1학년과 2학년이 지나가니 조금은 학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변이 없는 한 내가 목표한 3학년 1학기에는 다 채우고 졸업 논문도 미리 구상해 놓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학점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하고 언어와의 전쟁에서도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를 얻게 되었다. 전쟁에서의 승리 끝에는 명예와 부가 따라오지만 나의 전쟁에서는 승리 후에 내면의 뿌듯함과 치솟는 자존감을 얻게 되었다. 값진 승리라고 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