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 없이 사라지기, 잠수하기 좋은 날
열병이, 총알이 난무하는 허공에서
언젠가 널 파먹을 거야
서서히 잠길 거야
불덩이가 되고 싶다 화인처럼 찍혀서
맨살에 장전된 돌 먹줄처럼 튕겨놓고
어둠을 가늠질하는
달의 눈이 붉다
산사나무 그늘처럼 네 속의 고독처럼
빛이라곤 다 베어 먹고 남겨진 붉은 사랑
바람은 가끔 달을 위한
레퀴엠을 부른다
김진희 시인의 <달의 눈>은 개기월식이라는 우주의 한 현상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으로, 진부성을 벗어난 체험의 창의적 재구와 정제된 호흡으로 시상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지게 되지요. ‘레퀴엠’을 부르는 바람이 긴 여운을 줍니다. 보편적 공감의 장을 허용하지 않아 거듭 읽게 합니다. (글 공영해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