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없어졌다
방에서 거실까지
거실에서 방까지 잇는
회로에 켜진 미등
불안한 주름의 미로
쳇바퀴가 엉켰다
추억은 또 어디에서
헤매다 멈추었을까
어둠이 내려앉자
목을 뺀 나무 뒤로
뽀글한 호두머리 엄마
달그락 들어오신다
❤❤ 생각 주머니
두 수의 연시조입니다. 우선 제목의 신선함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호두의 방’은 어떤 방일까? 호두머리 엄마에 힌트가 있네요 엄마의 방이군요.
‘방에서 거실까지/ 거실에서 방까지’ 엄마가 종종걸음으로 다니던 방입니다. 그러나 엄마가 없어졌네요, 그리고 그 회로에는 미등이 켜져 있습니다. 옅은 어둠이 오고 있나봅니다. 엄마가 없어지자 그 미로는 불안해지고 날마다 오가던 쳇바퀴도 엉켜버렸네요. ‘불안한 주름의 미로’에서도 주름진 호두의 모양이 연상됩니다.
둘째 수 추억도 헤매다 멈추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미로에 새겨진 일들을 추억했다는 이야기이고 그리고 미등을 켰던 어둠이 내려앉자 나무의 그림자가 긴 목을 빼지요 왜 목을 뺄까요? 나무도 엄마를 기다리는 군요
그리고 문득 그 나무 뒤로 ‘뽀글한 호두머리 엄마가 달그락 들어’오십니다. 첫수와 둘째 수 중장까지 긴장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종장에서 탁, 그 긴장을 풀어주며 해방감을 줍니다. 해방감을 주는 신호는 ‘달그락’이라는 의성어이군요.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을 깨어나게 하는 엄지와 중지를 부딪쳐 내는 ‘딱’ 소리와 같이 들립니다. 여기서는 최면에 걸리게 하는 신호일까요. ‘달그락’ 소리를 내며 엄마가 들어오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연시조에서 마지막 수의 종장이 시조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글 김일연 시조시인) <경남시조40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