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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Dec 15. 2023

<그럭저럭 살고 싶지 않다면 당신이 옳은 겁니다>

완벽주의자의 셀프 치유


<캐서린 모건 셰플러 지음, 박선령 옮김, 쌤앤파커스, 2023.>



자칭 어설픈 완벽주의자의 셀프 문답.

"자신이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있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완벽주의자는 완벽주의를 버려야 할까?"

"사람이 완벽할 수 없으니 그래야 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완벽하고 싶다."


나에게 완벽주의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다. 잘해서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다. 잘해서 후회 같은 것도 안 하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싶은 마음이다. 남들이 잘했다고 인정해도 아쉬움이 남으면 내 기준에 완벽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완벽함의 기준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완벽하고 싶은 마음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정받는 느낌과 자부심을 느끼고 싶은 나를 위한 것이다.


완벽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다. 뭐든 잘하면 좋다. 그 결과로 남들도, 나도 좋은 것을 누리면 더할 나위 없다. 완벽주의가 버려야 할 강박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지향점과 과정의 문제 때문이다.

무엇을 원하는가? 

어떻게 그것을 이룰 것인가?


목표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은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다. 이 지점에서 완벽주의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이 책, <그럭저럭 살고 싶지 않다면 당신이 옳은 겁니다>에서는 완벽주의를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열정형 완벽주의자, 전형적 완벽주의자, 낭만형 완벽주의자, 게으른 완벽주의자, 난잡형 완벽주의자. 유형 이름만으로 서열을 매기지는 말자. 완벽주의자는 자기도 모르게 평가하고 있을 게 뻔하다. 내가 그랬다. 


좋고 나쁜 것은 없다. 애초에 뭐든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완벽주의자를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궁금하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책 서두에 간단한 질문들이 있어 자신의 완벽주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 성격에는 좋고 나쁜 게 없다지만 좋은 결과를 받고 싶은 심리 테스트처럼 사람을 묘하게 긴장하게 만든다. 



그럭저럭 살아도 모나지 않고 평범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까?

다들 원하는 바가 있고, 그것을 이루고 싶고, 자기 나름의 성공을 바라고 살지 않나?

그러기 위해 일상을 관리하고 자기 계발에 힘을 쏟고, 더 배우고 더 나아지려고 하지 않나?

그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모두가 그렇게 살지는 않는 걸까?


혹시 당신은 완벽주의자인가?

더 나은 삶을 바라며 새벽 기상을 하고, 운동과 독서에 매진하고, 무기력에 빠질 때마다 자기 계발서를 읽고 있는가?

엄격한 자기 검열로 늘 준비가 부족한 것 같아 꿈꾸는 삶에 다가서기를 망설이는가?

실수를 줄이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도 불안한 마음에 자꾸 확인하는가?

일상의 루틴을 방해받기 싫어하고 변화와 즉흥적인 약속을 거부하는가?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살고 있다며 스스로 뿌듯해하지만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겸손하게 구는가?

짐작했겠지만, 내 모습이다. 저자가 구분한 유형으로는 전형적 완벽주의자와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다.



남편은 늘 나더러 구멍이 많다고 한다. 잘 까먹고, 실수해도 뻔뻔하고, 현실 감각 없이 이상에 치우쳐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산다고 말한다. 물가에 내놓는 아이처럼 내가 뭘 한다 하면 걱정이 앞서 잔소리꾼이 된다. 그런데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신중하고 똑 부러지고 논리적이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소심한 프로 계획러가 신중하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고 애쓰고 살았다. 그런 나를 남편은 귀신같이 알아챘다. 십수 년을 같이 살았으니 뻔히 보였을 거다. 그러나 구멍이 많은 내 모습도, 타인을 대하는 친절하고 고지식한 내 모습도 그대로 인정한다. 남편에게는 구멍이 있든 없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는 것이다. 내 구멍을 보여도 괜찮은 가족이 있어서 마음에 힘을 빼고 회복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족 안에서도 독립적 존재임을 자처하는 완벽주의자다. 남편에게서 얻는 위안이 아니라면 스스로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부족한 자신에게 실망하는지 모를 일이다. 알면서도 더 잘하려고 애쓰게 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성장하고 싶은 욕구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완벽주의를 버리지 못한다면 잘 다스려야 한다.


사람은 이해와 공감을 받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저자가 심리치료사이기 때문인지,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완벽주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다는 데 있다. 그럭저럭 살기는 싫고, 더 잘 살고 싶은데 자꾸 부족한 것 같고 더 성장해야 할 것 같다면 당신은 완벽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혹시 그런 자신의 완벽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면, 이 책을 권한다. 완벽할 수 없지만 완벽을 바라는 역설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완벽은 역설적인 말이다. 당신은 완벽해질 수 없지만 이미 완벽하다.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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