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이 곧 나다
뻔히 알면서 안 하는 일 2
외국인들도 안다는 ‘먹방’. 먹는 게 일이다. 먹거리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마케팅을 한다. 소문난 맛집을 찾아 다니며 소개하고, 요리를 잘 하는 것으로 부족해 신제품으로 출시하고 아예 식당까지 운영해보기도 한다. 쉽고 맛있는 레시피 하나로 대박이 난다. 사람들은 먹는 데 진심이다.
다른 쪽에서는 너무 먹어서 탈이 난 사람들을 위한 방송과 마케팅이 넘쳐난다. 비만과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처럼 너무 흔해진 병에 유용한 건강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데, 핵심은 좋은 것을 적게 먹으라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유혹하고 다른 쪽에서는 절제하라고 하니 마음은 늘 괴롭다.
귀가 얇은 것도 아닌데 남들이 좋다고 하거나 유행하는 것은 뒤늦게라도 따라해 본다. 그렇게 맛있다는데 나도 맛은 한 번 봐야지 싶다. 요리 솜씨는 없어도 내 나름 주부 경력이 십수 년인데 레시피를 보면 어떤 맛일지 대충 각은 나온다. 그대로 따라 만들어보면 역시나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적당히 달고 짜면 어지간한 음식은 다 맛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맛집에서 감탄하며 음식을 먹은 뒤에는 내내 갈증이 나고, 그날 저녁밥 생각이 별로 없다. 덜 달고 덜 짜서 슴슴한 집밥은 맛은 그냥저냥 먹을 정도지만, 돌아서면 다음 끼니를 준비해야 할 정도로 소화가 잘 된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몸은 알지만 마음이 늘 이긴다. 버터 넣고, 설탕 넣고, 기름에 튀기면 뭐든 맛있다. 그런데 그런 음식들은 다 몸에 안 좋다고 건강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맛과 건강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식생활이 이어진다.
건강한 먹거리
삼시 세끼는 누가 만든 것인지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갈 때도 그랬고,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방학 때도 그랬다. 밥상을 차려내는 노동이 힘든 게 아니라, 매 끼니 무엇을 해 먹일 것인가 하는 고민 때문이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 아무거나 먹이는 것은 엄마된 자의 마음에 가책이 따르고, 매번 정성스럽게 챙겨 먹이자니 뻔한 요리 실력과 메뉴에 대한 부담이 상당하다. 입맛 까다로운 아이가 있으면 말할 것도 없고, 이제 더이상 불룩한 배가 부의 상징이 아닌 시대를 살면서도 두둑한 허리둘레와 대사질환 요소를 두루 가진 남편까지 있으니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
요즘엔 맛깔나게 조리해서 포장 판매하는 반찬 가게도 많고,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의 마법으로 바로 먹을 수 있는 밀키트가 넘쳐나니 카드 한 장, 아니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나가면 근사한 밥상 차림이 가능하다. 편하게 먹고 맛과 건강까지 챙기면 좋겠지만, 입맛 까다로운 식구들은 간편 요리가 입에 안 맞는다. 편한 게 좋다 해도 대중의 입맛에 맞춘 제품에 우리 입맛을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식품 첨가물을 생각하면 마트 매대 앞에서 늘 망설이게 된다. 건강을 위해 좋다는 걸 다 찾아 먹는 것보다 해로운 것을 피하는 게 더 효과가 좋다고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려운 이름을 가진 각종 첨가물을 모두 피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정체는 대강이라도 알고 있어야 적절히 취사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생각>(마틴 코언 지음, 안진이 옮김, 부키, 2020)은 그런 생각이 들 때 읽기 좋은 책이다. 다양한 음식의 기원이나 성분, 첨가물에 대한 정보에서부터 철학자들의 식습관이나 각종 연구 자료,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먹거리 산업의 거대하고 음흉한 의도까지 알려준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생각할 거리들이 담겨 있다.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에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면 안 된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거나 혹은 자기 욕구 대신 상대방에게 무조건 맞추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내 몸에 들어가 세포 하나하나까지 바꾸는 음식을 신중하게 고르라는 뜻이다. 먹는 것이 곧 내가 되니까 말이다. 자기 식욕을 존중하는 마음이든 건강한 몸을 챙기려는 의도든 이러나 저러나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지만 질 좋은 먹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먼저다.
먹는 낙으로 사는 사람도 많지만 나처럼 뭘 먹든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어느 쪽이든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먹거리에 완벽함을 추구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마트에 냉동고가 갈수록 많아지고 냉동식품의 종류도 갈수록 많다진다. '이런 것까지 있나?' 싶을 정도로 손하나 까딱하면 한 상 그득하게 차릴 수 있다. 그러나 참는다. 밭에서 나온 음식이 아니라 공장에서 나온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밥해먹기 싫은 게으름 탓에 늘 올바른 먹거리만 먹고 살기는 힘들다. 건강 덕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면, 더 나은 먹거리를 고르는 것은 나와 가족을 위하는 일이다.
어떤 먹거리를 선택할지 글로 배운다
먹거리에 관한 책은 무수히 많다. 그중 대다수는 저자가 직접 경험했다는 근거로 특정한 식이법을 추천한다. 예를 들면 하비 다이아몬드는 <다이어트 불변의 법칙>(사이몬북스, 2021)과 <나는 질병 없이 살기로 했다>(사이몬북스, 2017)에서 비만과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과일과 채소 위주로 식사하기를 권한다. 채식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고기를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주는 반가운 책이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채소와 과일만 먹고 살기 어렵다.
특정한 식이법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생각>은 좀 낫다. 그러나 이들 책 모두 읽고 나면 먹는 것이 두려워지는 부작용이 있다. 한의사가 쓴 <염증 해방>(정세연, 다산라이프, 2022) 같은 책은 정말 좋은 정보를 알려주지만, 읽고 나면 세상에 먹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암울한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책에서 유용한 정보들을 취하되, 너무 겁먹지는 말아야 한다. 좋은 먹거리를 지향하되 유연해야 한다. 자연식을 선택했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완벽하게 지킬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 인스턴트 음식을 먹어야 할 때도 있다. 아이들과 오랜만에 캠핑을 갔는데 소시지가 몸에 해롭다고 못 먹게 하거나, 숯불 바비큐에 발암 물질이 있다고 고기 한 점 안 먹는 것은 융통성이 없는 행동이다. 내가 선택한 좋고 옳은 것이 족쇄가 되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면 그것만치 바보 같은 일이 없다. 유연한 마음이 질 좋은 음식과 함께 건강한 나를 만든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음식은 날마다 여러 번 먹는다. 이왕이면 건강에 유익한 것이 좋다. 그런데 너무 먹어서 병이 생기고 병 때문에 먹는 즐거움이 사라지기도 한다. 건강을 위해 음식을 잘 가려 먹는 것도 좋지만 어떤 이들은 먹는 것을 줄이라고 한다. 배고프면 쉽게 짜증이 나고, 우울할 때는 달달한 게 당긴다. 스트레스 받았을 땐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며 기분 전환을 하는 이에게 먹는 걸 줄이라는 건 가혹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한 번이라도 다이어트를 시도해본 이라면 먹고 싶은 걸 참아야 하는 심정이 얼마나 괴로운지 안다.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다고 먹고 싶은 본능을 억눌러야 하나 싶다.
그러나 비만으로 몸에 이상 신호가 있거나 질병에 걸려 살을 빼고 건강을 회복해야 하는 사람들은 덜 먹어야 한다. 몸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먹거리를 조절하려고 애쓰는 만큼 몸은 달라진다. 회복된다는 걸 알면서도 식탐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몸을 함부로 대하는 거다. 먹는 것을 참아야 할 때 <잠시 먹기를 멈추면>(제이슨 펑, 이브 메이어, 메건 라모스 지음, 이문영 옮김, 김기덕 감수, 라이팅하우스, 2021)을 읽으면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체중이 100킬로그램이 넘는 저자가 직접 경험한 간헐적 단식의 방법과 효과를 자신의 건강 코치와 함께 지은 책이다. 16 대 8의 비율로 공복 시간을 늘이고 먹는 것에 자유를 주는 간헐적 단식법이 흔하다. 이 책도 단식을 예찬하는 경향이 있지만 굶는 것이 힘들다면 굳이 따라하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굶는 것이 아니라 '당'을 줄이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달달한 간식에 손이 가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 첫 번째다. 식사를 건강한 재료로 구성하는 것이 그다음이다. 누구나 걱정하는 당뇨를 예방하기 위해 인슐린 과다 분비를 유발하는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알지만 행하지 않는 우리의 상식, 좋은 걸 하기 전에 해로운 걸 하지 않기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단식을 통한 체중 감량으로 당뇨나 혈압약을 끊었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남편에게 적용해 보고 싶지만, 남편은 약을 먹더라도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빵과 떡을 좋아하는 나도 그것을 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면류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국수, 우동, 스파게티를 못 먹게 할 수도 없다. 먹는 즐거움을 버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적당한 선을 찾아야 한다.
건강을 위한다는 많은 지침서들을 읽었지만 남는 것은 얄팍한 건강 지식과 ‘두려움’이었다. 가족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특히 음식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에 안심하고 먹을 게 없다는 회으적인 결론만 되풀이된다. 지금까지 가족들에게 먹인 많은 것들이 몸에 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죄책감, 나중에 그것들이 쌓여 병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불안으로 건강 책읽기는 오히려 ‘아는 게 병’이 된다.
의사, 한의사, 한약사, 영양사, 교수들이 쓴 책들 중 그나마 현실적 감각을 지니고 충고하는 책은 <약 없이 건강해지는 식습관 상담소>(박현아 지음, 위즈덤하우스, 2024)라는 책이다. 가정의학과 의사로서 건네는 의학 상식과 직장인이자 한 가정의 엄마로서 건네는 현실적 선택에 공감이 간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약처럼 먹으면 오래갈 수 없다. 평생 안 먹을 게 아니라면 나의 욕구를 적당히 채워주면서도 안심할 수 있는 적정선을 마련해야 한다.
천천히, 기분 좋게, 다양하고 영양이 풍부한 건강한 음식으로 식사하기. 익히 들어온, 너무 뻔히 알고 있는 지식으로 일단 원칙을 정한다. 일탈하더라도 원칙이 있고 없고는 다르다. 편하고 빠르게 조리 가능한 공장 음식을 평생 안 먹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좋은 음식을 먹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채소를 손질하고 직접 요리하는 수고로움은 가끔씩이라도 감당할 수 있다. 하기 어려운 것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늘리는 게 효과적이다.
하기 전엔 대단해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별 게 아닌 일이 생각보다 많다. 먹는 것을 바꾸는 것도 그렇다. 급할 게 뭐 있나, 살아갈 날은 아직 많다. 저녁 먹은 후에는 아무것도 안 먹겠다고 가족들과 약속하기, 오늘 그것부터 실천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