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자아력
뻔히 알면서 안 하는 일 1
건강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야 한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만 귓등으로 흘려듣고 마는 엄마의 잔소리처럼, 엄청 중요하지만 너무 자주 들어서 오히려 주의하지 않는 것이 건강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실은 유용한 삶의 지혜임을 그때 엄마 나이가 된 지금에야 안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아파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돌이킬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야 젊어서 건강을 챙길 걸 하고 후회한다.
요즘 항노화 정보가 차고 넘친다. 고령사회의 시작이니 그럴만도 하다. 가족력으로 신경쓰이는 일이 있어 유튜브에서 관련 건강 정보를 몇 번 찾아봤다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채널을 열면 예방 수준을 넘어 만병을 통치하고 회춘까지 가능할 것 같은 방법들이 한방, 양방 할 것 없이 의사나 약사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집안에 의사 하나, 변호사 하나는 있으면 좋다는 말을 듣고 자란 옛날 사람이라, 유명하고 책도 내고 강연도 다니는 전문가의 말을 예사로 흘려듣기는 힘들다. 그렇게 한동안 건강 먹거리를 따라하다 제풀에 지친 건 혹시 나만 그런까?
유튜브가 아니더라도 아프거나 늙기 전에 미리 건강을 챙겨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자극은 많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와닿는 것은 가까운 이들의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죽음이다. 마흔이 넘어가면 누구네 와이프가 유방암이라더라, 누구네는 벌써 혈압 당뇨약을 먹는다더라 하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오고, 지인들의 부모상에 조문갈 일도 자주 생긴다. 한 다리 건넌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 동년배라면 경각심이 생긴다. 새해의 운동 결심처럼 오래가지 못하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나 남이 아니고 가족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평소 간이 안 좋았던 아빠가 빠른 속도로 건강이 나빠져 입원 후 2주 만에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건강 관리는 남의 얘기였다. 그때 내 나이 30대 초반, 운동이라곤 모르는 저질 체력으로 매일 피로를 달고 살았지만 자고 나면 쉽게 회복되는 때였다. 엄마가 병을 얻고 세상을 떠날 때는 내 나이도 마흔이 넘어 마음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엄마를 돌보면서 암을 치료하는 과정이 어떤지 생생하게 겪었고,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날마다 깨달았다. 그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나와 나를 돌볼 내 아이들이 고스란히 겪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운동을 하려고 애쓰고, 몸에 안 좋다는 음식은 가급적 삼가며 몸을 사리게 되었다.
중요하기로 치면 첫 번째로 손에 꼽히는 것이 건강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건강을 챙기라는 말을 뻔한 잔소리로 흘려듣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주기적으로 우울감이 찾아올 때마다 세상살이에 냉소적이게 되는 나는,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달고 때론 불량한 음식들에 관대해진다.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뚱아리, 아껴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남을 시키기보다 자청해서 일을 하고, 식구들 뒤치닥거리에 아무리 피곤해도 밤잠을 줄여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린다. 나를 위한답시고 하는 행동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꼴이다. 질 좋은 음식과 수면은 건강과 직결된다는 걸 알면서, 마음이 힘들면 몸까지 함부로 하는 자기 모순에 빠진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덜컥 아프기라도 하면 그땐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렇게 뻔한 스토리가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건강 관리는 마음먹기와 흐지부지되기가 반복되는 참 어려운 숙제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늘 따로 놀고, 그러면서도 걱정은 되는 건강에 대해 구체적인 감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혼자서 제자리를 맴돈다면 누군가의 조언도 필요하다. 그때 <어쩌다 마흔, 이제부턴 체력 싸움이다!> (서정아 지음, 도서출판 갈매나무, 2022)를 읽으면 좋겠다.
죽다 살아난 누군가의 건강 예찬 같은 극적인 경험담도 아니고, 무엇을 먹어라 말아라 같은 편향된 식이 요법이나 운동에 진심인 사람들의 개인적 성취에 근거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일단 거부감이 없다. 저자는 의사로서 알고 있는 지식을 근거로 환자들에게 직접 권하는 실천 가능한 건강 관리법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진료 상담 사례를 읽으며 내 증상을 간접적으로 진단받는 기분이 드는 건 이 책의 장점이다. 우리는 남의 얘기에 관심이 많지 않은가? 쉽게 물어보거나 듣기 어려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점검할 수 있으니 다른 건강 관련 책보다 읽기도 쉽다.
머리가 많이 빠지고, 눈가 잔주름이 생기고, 먹는 건 그대로인데 자꾸 살이 찌는 것 같고, 자다가 자주 깨고, 많이 자도 피로가 안 풀리고….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상의 소소한 증상들이 호르몬 불균형이나 염증, 독소와 관련되어 있단다. 책 속의 사례가 다 내 얘기인 것 같다. 노화나 스트레스로 치부되어 소홀해지기 쉬운 몸의 변화가 실은 관리가 필요하다는 작은 신호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건강을 챙기기 시작하는 일이다. 저자가 권하는 소소한 일상의 팁들은 구체적이고 어렵지 않다.
결론만 뭉뚱그려 얘기하면 식단과 생활 습관의 변화, 그리고 운동하라는 거다. 충분한 시간 동안 잘 자고, 좋은 먹거리를 적당히 잘 먹고, 자기 몸에 맞게 꾸준히 운동하기가 전부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 실망했는가? 하지만 우리가 정답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계발서나 건강 관련 책을 읽는 것은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건강을 소홀히 하고 있다면 '또 그 얘기야?' 하고 반문하기 전에 스스로 자극을 찾아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거라는 걸 안다. 알면서도 매번 쉽게 무너진다. 중요한 것은 뻔히 아는 그걸 행동으로 옮기고, 반복해서 습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행하는 것은 아니어서 서로 다른 삶을 산다. 일상의 나쁜 습관들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노화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니 속는 셈 치고 애써봄직하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움직이는 것이 축 처진 뱃살을 보고 심란한 것보다 훨씬 나으니 말이다.
뻔히 알면서 안 하는 일을 해보다.
새해 결심 1위는 단연코 운동이다. 체력의 중요성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새 마음 새 뜻으로 운동을 하자고 해가 바뀔 때마다 결심을 한다. 새로워지고 달라지고 싶은 마음은 ‘준비, 땅!’ 하는 달리기처럼 매번 처음 느낌이 나는 시간의 마디를 기점으로 삼아 리셋된다. 실패해도 해마다 결심을 반복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굳이 정초를 기다릴 것은 뭐 있나, 그냥 하면 될 것을. 그러나 ‘매일 조금씩 꾸준히’는 쉬우면서도 어렵다.
친정 엄마가 세상을 떠날 때 그 마지막을 오롯이 함께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낸 2주가 나에게는 해가 바뀌는 것보다 더 강력한 시간의 마디였다. 정작 죽음을 앞둔 엄마는 내내 잠들어 있었는데, 죽지 않을 나는 엄마 곁에서 내내 죽음을 생각했다. 질병, 치료 과정, 신체적 괴로움, 움직이고 말하고 먹는 모든 본능적 행위가 차례로 멈추는 것을 생생하게 지켜보면서 나의 죽음을 상상했다. 오래 아프지 않고, 병을 이기기 위해 남은 삶의 시간들을 고통으로 얼룩지게 하지 않고, 의식이 있는 동안 모두에게 인사하고 삶의 흔적들을 정리한 뒤에 잠들 듯 떠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바라게 되었다.
엄마를 보내고 다시 돌아온 일상은 한동안 가라앉았다. 품위 있는 죽음을 생각하기 전에 매일 먹고 사는 도돌이표 같은 생이 허무하고 지겨웠다. 오래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운동은커녕 끼니를 챙기는 것도 허술해지기 일쑤였다. 가족들이 모두 학교와 회사에 가고 나면 혼자 죽음의 책들을 읽었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친숙해질 무렵이 되자,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깨달음처럼 느껴졌다. 남겨질 아이들을 생각하니 품위 따위를 고민할 때가 아니다. 여느 때처럼 길을 가다가 혹은 버스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달려든 자동차에 치여 죽는 일이 생기는 세상인데, 환상 같은 죽을 날을 꿈꾸기보다 비루해도 지금의 일상을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대로 가라앉아 있을 수만은 없겠다 싶었다.
언제나 생각은 현실 위에 둥둥 떠서 의미있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의미가 있으려면 뭔가를 해야 했다. 세상에 선을 베풀려 하니 가진 게 많지 않아 기부는 못하겠고, 몸으로 하는 봉사라도 할까 생각하니 무거워진 몸과 마음이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봉사도 처음에 시작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시도해본 사람은 안다. 바닥까지 떨어진 몸과 마음의 무게로 용기는 고사하고, 내 가족의 일상도 겨우 챙기는 저질 체력을 실감한 것도 이때부터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결심은 뻣뻣하고 근력 하나 없는 몸 앞에서 머뭇거렸다. 나는 아주 조금씩 달라지기로 했다.
세상을 향한 의미를 만들기 전에 내가 세상에 짐이 되지는 말아야지. 성공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전략은 진짜 도움이 된다. 목표를 가지되, 아주 작은 일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걷기. 매일 나가서 걸었다. 아이들 등교 시간에 모자만 눌러쓰고 나가 걸었다. 저녁 먹고 나서는 남편과 산책하듯 걸었다. 걷는 것만으로 체력은 쉽게 늘지 않았다. 오전에 걷다가 뛰기를 반복하며 며칠마다 뛰는 거리를 아주 조금씩 늘여갔다. 목표는 30분 걷는 거리를 뛰어서 다녀오기였지만 조급하지 않기로 한다. 나가기만 해도 장한 일이다.
다음은 근력 운동. 처음에는 아침에 눈을 떠서 몸을 휙 뒤집어 플랭크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서른을 세는 동안 부들부들 떨리지 않게 되었을 때 팔굽혀펴기를 5개 더했다. 유난히 힘든날은 숫자 세는 속도가 빨라지고 팔은 굽히는 시늉만 하기도 했다. 하루 아침에 잘하기를 바라지 않았으니 빼먹지 않고 매일 하는 나를 칭찬해야 한다. 그러기를 몇 주, 여력이 생기자 플랭크를 40초로 늘였다. 배가 바닥으로 처지지 않을 때쯤 이르러 팔굽혀펴기도 두 개씩 늘여 나갔다. 여기까지만도 몇 달이 걸렸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아침 기상 운동은 이제 플랭크를 하며 백을 세고, 팔굽혀펴기는 15개까지 해낸다. 거기에 자주 뻐근해지는 다리나 목의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요가 동작 몇 개를 더해갔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20분간 이런 움직임이 이어진다. 마지막에 숨을 고르며 몇 분 간 호흡을 하는 것까지가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더 늘리지는 않는다. 플랭크 하나로 시작해 조금씩 매일 반복하고, 익숙해질 때쯤 한 동작을 추가하는 식으로 근 2년을 했더니 이제 완벽하지 않아도 다리찢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체력은 자아력
그 사이에 복지관에 재능기부 형태의 봉사 신청도 했다. 몸에 힘이 생기니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한번 해보지 뭐 하는 생각으로 바뀐 덕이다. 몸을 챙기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임을 이제는 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충효 일기장에 ‘체력이 국력’이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그때는 생활체육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을 때였기에 운동은 선수들만 하는 줄 알았다. 지금은 안다. ‘체력은 자아력’이다.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내 몸이다. 여전히 중년 아줌마의 아랫배를 가지고 있고, 손목이며 허리며 무릎은 파스를 붙여야 할 만큼 종종 아프지만, 멈추지 않고 소박한 운동을 계속해오고 있다는 것이 은근한 자랑거리다. 갱년기에는 호르몬 변화로 근육 손실이 많아진다니, 더 나이 들기 전에 근력 운동을 늘여야 한다는 부담은 아직도 크다. 그러나 욕심은 내지 않기로 한다. 작은 행동일지라도 하나씩 꾸준히 하는 것이 작정하고 덤벼드는 것보다 낫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혹시 건강해지고 싶지만 자신이 저질체력이라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산다고 생각한다면 <기대의 발견>(데이비드 롭슨 지음, 이한나 옮김, 까치글방, 2023)을 읽고 생각을 바꾸기 바란다. 운동을 권하는 책이 아니니 또 뻔한 운동 얘기냐고 넘겨짚을 필요는 없다.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는지 다양한 연구 사례가 담겨 있어서 읽고 나면 운동이나 건강 같은 문제 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를 점검해 볼 기회가 된다. 체력이 자아력이라는 얘기를 하던 참이니 운동에 관한 책의 한 대목을 옮겨 본다.
우리는 운동을 못 하는 것일까, 안 하는 것일까?
"근육 위에 마음 있다"는 말은 프로 운동선수에게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반인에게 더 큰 의미가 있다. 흔히 자신을 저질 체력이라고 믿는 탓에 건강한 삶을 목표로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활동적인 생활을 지속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듯 건강과 수명에 대한 무기력한 태도는 올림픽 메달을 하나 놓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부정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거나, 한때는 종종 운동을 했지만 중년에 접어들면서 늘어나는 몸무게에 완전히 손을 놓았거나, 어쩌면 과거의 건강했던 몸 상태를 되찾기 위해 너무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며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을 수도 있고, 최근 부상이나 질병으로 고생을 해서 다시 전처럼 건강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 자체를 아예 잃었을지도 모른다. 심리생물학적으로 피로를 설명한 최신 이론에 따르면, 이 모든 생각들은 우리의 주관적인 피로감과 객관적인 운동 능력에 영향을 미쳐 운동을 실제보다 훨씬 더 힘겹게 느껴지도록 만들 수 있다. 우리의 운동 능력에 대한 지각을 재조정함으로써 이런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 체력의 좋고 나쁘고의 차이는 그 사람이 스스로를 얼마나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뇌가 신체 능력을 조절할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운동 능력이 증가한다. 각자 자신에게 잘 맞는 도구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좋아하는 음료든 고급 스포츠웨어든 동기부여가 되는 음악이든, 결국 운동 경험을 향상시키는 것은 마음가짐의 변화다. 집을 나서기도 전부터 운동이 힘들고 귀찮다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기 시작하므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운동을 마치고 나서 기분 전환이 되고 활력이 생기는 느낌을 경험하는 등 운동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즉각적인 이점에 집중하는 것이다. 운동을 한참 하고 있으면 호흡이 가빠지거나 근육에 통증이 느껴지면 자신의 체력이 부족하다는 신호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신체 반응은 격렬한 활동에 따른 자연스러운 감각들이다. 숨이 차고 팔다리가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이는 근육이 강화되고 폐활량이 늘어나며 심장이 튼튼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자. 자신의 신체 능력이 스스로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좋아지리라 믿고 기대하는 마음이 시작이다. ( <기대의 발견>(데이비드 롭슨), 157-162 중에서)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으면서 머리로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나와 닮은 당신에게 아주 고무적인 이야기다. 기대하는 마음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는 뇌과학을 근거로 하는 말이니 믿어도 손해볼 일은 없다. 복권을 사지 않으면 당첨에 대한 기대도 부질없으니, 움직이지 않고 체력이 강해지길 바라지는 말자. 바디프로필을 찍고 싶은 욕심이 없다면, 지금 운동화를 신는 작은 행동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우리의 기대를 실현시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