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나로 살아가야 할 순간
연역법의 대전제는 참이다
생전 처음 구급차를 타 봤다. 119를 불렀으나 응급상황은 아니었다. 병원으로 향했지만 치료가 목적인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죽으러 가는 길이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나는 사람이다. 고로 나는 죽는다.’
오래전 학교에서 논리를 배울 때 이 문장이 예로 나왔다. 연역법은 대전제가 참이어야 결론이 참이 된다. 누가 뭐라 해도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참이다. 교과서에 실린 논법의 예문이니 반박의 여지가 없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전제는 만고불변의 진리여야 한다. ‘사람은 죽는다’ 만큼 반박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 또 있을까? 수명이 아무리 길어져도 영생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진실한 이 문장을 우리는 잊고 산다.
엄마가 아프기 전까지 그랬다. 아빠가 돌아가셨지만 벌써 십 년도 더 넘은 일이라 일상에서 죽음의 그림자는 옅어진 지 오래였다. 아빠의 죽음 이후 형제들이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통에 생명의 탄생과 성장의 경이로움이 아빠의 빈자리를 채웠다고 생각했다. 정작 엄마는 아무리 손주가 예뻐도 텅 빈 옆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내내 외로웠을 거라는 건 지금 와서야 드는 생각이다. 혼자된 슬픔이 병이 되었을까, 한평생 부엌에서 보낸 세월이 병이 되었을까. 엄마 몸에 암세포가 있다는 걸 알고서야 우리는 다시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 일이 우리 엄마에게도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살았는데 죽음은 걱정 없이 살만하다 싶을 때 당연한 듯 다가왔다.
암 환자가 흔한 세상이니 치병하는 환자도, 보살피는 가족도 많을 것이다. 겪어 본 사람은 안다. 아픈 사람도 서럽고 원통하지만 돌보는 가족도 힘들고 지치는 건 환자 못지않다. 똑같은 병에 똑같은 치료를 받아도 사람마다 효과가 다르고 예후도 다르니 넘쳐나는 건강 정보들이 오히려 애간장을 태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듯, 병을 잡겠다는 항암 치료는 멀쩡한 몸도 상하게 만든다. 부작용에 시달려도 꿋꿋하게 항암치료를 견뎌내다가도 전이암이 발견되면 희망이 사라진다. 엄마는 뼈에 전이가 되었을 때 암이라는 것을 알았다. 전이가 있을 때는 증상이 아무리 미미해도 4기 진단을 받는다. 암 5기를 들어본 적이 없음을 생각할 때, 4는 말기라는 최후만을 남겨둔 암울한 숫자가 된다.
초기 진단도 무서웠지만, 2년여의 치료 끝에 뇌전이를 알게 되었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폐가 망가졌을 때도 유지되던 일상은 뇌가 망가지면서 모두 허물어졌다. 걷기, 말하기, 먹기, 깨어있기 순서대로 생존 기능을 하나씩 잃어가다가 결국 엄마는 호스피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구급차에 탄 순간부터 하얀 천에 쌓여 영안실로 옮겨지던 때까지 꼬박 2주 동안 나는 깨어나지 않는 엄마 옆에서 먹고 잤다. 존엄한 죽음을 추구한다는 그곳에서는 기적이 없었다. 초조하게 언제 올지 모를 죽음을 기다리며 삶의 경계선에서 흔들렸다. 아무리 애쓴들 결국 사람은 죽는다는 참의 명제가 허무함을 안겨주었다. 마흔이 넘었어도 부모를 잃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해졌다. 그때부터 삶에 질문이 많아졌던 것 같다.
돌봄과 보호, 관계의 순환
죽음이 그렇게 생생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아빠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내 결혼식을 코앞에 둔 때였다. 아빠는 결국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빠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나와 남편을 알아보고는 바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이튿날 눈을 감았다. 아마 따님을 기다렸던 것 같다는 의사도, 회사 사람들도 경사와 조사 특별휴가를 연달아 쓰게 된 나를 두고 위로했지만, 정작 나는 죽음을 앞둔 아빠 곁을 내내 지키지 못했기에 오랫동안 아빠의 부재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의 마지막을 내가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를 이유로 보호자 교대가 까다로운 것이 기회인 양, 나는 내 아이들을 다른 가족에게 맡기고 기어이 혼자서 엄마 곁에 머물렀다. 아빠를 보내던 화장터에서 엄마보다 더 섧게 울던 내가 엄마를 보내는 마지막 순간에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은 것은 충분한 이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돌봄이 끝이 났다.
조앤 롤링이 쓴 <해리포터>에서 해리는 마법 세계에서 성인이 되는 만 17세가 될 때까지 이모집에서 지내야만 했다. 보호 마법이 걸린 이모집에서 여름 방학을 지내야만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모 가족들의 학대를 보호라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이모집은 해리 엄마를 대신하는 보호막이었다. 죽어서도 자식을 보호하려는 해리 엄마의 마음이 그렇게 구현되는 것이다.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부모는 상징적인 보호막이다. 부모가 늙고 아파서 우리가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살아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우리를 보호해 주는 마법 같은 존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닿아야 알게 되는 삶의 지혜와 균형이 있었다. 해가 갈수록 몸이 여기저기 고장난다는 엄마를 더 자주 찾아가 챙기면서 돌봄의 관계가 역전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빈자리를 보고서야 거기에 있던 존재의 무게를 제대로 느낀다. 엄마가 죽고 나서야 신체적 돌봄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엄마의 부재로 느끼는 휑한 마음은 내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는 외로움과 두려움이었다. 나는 보호막이 사라진 취약한 존재가 되었다. 어른 고아가 된 것이다.
온전히 몸으로 겪어낸 진실은 오래간다
누구나 죽으니까 죽는다는 사실에 억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은 억울하다. 아프거나 사고거나 죽는 이유도, 죽는 때도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불확실함이 죽음을 더 두렵게 만든다. 언제 어떤 방식이든 어차피 한 번은 겪을 일이니 미리 준비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말은 쉽지만 아무리 상상해도 죽음은 상상 그 너머에 있다. 실감하지 못하는 죽음을 준비하기란 더 어려운 법이다. 그럴 때 나는 한 장면을 떠올린다. 차가워진 몸으로 누운 엄마 얼굴을 떠올리는 것이다.
얼굴이 하얘지고 입술이 퍼렇다 못해 보라색이 된 얼굴에 하얀 시트가 덮이는 장면은 생각할 때마다 매번 눈가가 뜨거워진다. 그 장면에서 엄마 얼굴 대신 내 얼굴을 대입해 본다. 생각만으로도 몸이 떨리고 무섭다. 그때 내 옆에는 누가 있을까, 나는 무엇을 남기고 세상을 떠날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가 슬픔과 두려움으로 숨이 막힐 것 같으면 머리를 흔들어 떠오른 장면을 깨뜨린다.
상상만 하는데도 물에 빠져 숨을 쉬기 어려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 보니 나는 아직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가 보다. 그러나 엄마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뒤로 나는 죽음을 외면해도 삶이 편안하지 않았다. 죽을 때가 멀어 죽음이 두렵다면 잘 살기라도 해야 할 텐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다.
사는 게 허무하다 싶다가도 계절이 바뀌어 얼굴에 닿는 바람이 달라지면 날마다 그대로인 것 같아도 매일 변하는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와닿는다. 해지는 하늘의 주황빛이 곱다고 생각하다가 죽으면 이런 걸 느끼지 못하겠지 싶고, 아웅다웅 다투고 투정 부리는 아이들을 봐도 죽음 앞에서는 이것마저도 소중한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겠지 싶어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달리 보였다. 그런 생각과 느낌이 삶에 초연해지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면 좋으련만, 죽으면 모든 것이 다 소용없다는 염세주의로 흐르면 삶이 시들해지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질문하고 고민하는 것은 잘 살기 위해서라기보다 후회도 걱정도 없이 고요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죽음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나니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말이 더 이상 교과서 문장 같지 않다. 그 뒤에 어떤 문장을 써서 내 인생을 서술할지는 철저히 나에게 달렸다.
죽음을 인식하면 삶이 보인다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자꾸 죽음을 들먹여서 거북한가? 역설적이게도 삶을 탐구하면 풀리지 않는 문제를 푸는 것 같은데, 죽음을 탐구하면 오히려 쉽게 답이 풀리는 기분이 든다. <죽음이 물었다>(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세계사, 2022)가 그런 내 기분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사는 내내 죽음을 찬밥 신세로 대하다가 죽을 때가 다가오면 평온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라는 모순을 가진 우리에게, 브라질 완화의료 전문가인 저자는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하는 당신은 잘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은 예정되어 있는데, 모른다고 두렵다고 피하려고만 해서는 반쪽짜리 삶이 된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시간이 가로놓여 있다. 삶은 우리가 그 시간 동안 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체험이다. 날이 저물기를, 주말을, 휴일을, 은퇴를 기다리며 삶을 보낸다면 죽음의 날이 더 빨리 오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진정한 삶은 일이 끝난 후에 시작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을 사는 것'은 특정 순간이나 삶의 즐거움에 맞추어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아니다. 즐겁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100퍼센트의 시간을 산다.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지나간다. 삶은 날마다 일어나는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죽음이 물었다>, p.107)
그래, 삶은 날마다 일어난다. 그 날들이 쌓이고 흘러간 끝에 죽음이 있다. 나는 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짠하고 등장해서 모든 걸 끝내 버리는 게 아니다. 잘 살고 있는 날, 매일의 삶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떠올리면 지금 이 순간, 오늘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잘 사는 게 잘 죽는 비결이고,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잘 살게 된다는 역설은 더 이상 말장난이 아니다. 저자가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면서 삶을 강조하는 것도, 죽어가는 엄마를 돌보고 나서 살아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도,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묻는 '죽음'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삶과 죽음이 우리의 '존재'적 체험이기 때문이다.
부모든 아이든 돌봄이 끝난 자리에 남는 가장 큰 감정은 상실감이다. 부모를 돌보는 일도 끝나고, 아이를 돌보는 일도 점점 줄어가는데 인생 숙제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돌봄이 끝난 자리에 새로 돌봐야 할 대상이 생겼다. 그간 매번 뒷자리에 밀려났던 내가 거기 있다. 이제 온전히 나로 살아가야 할 이유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