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의 초고는 시간제 음악 작업실에서 썼다. 몇 년 전엔 월 단위로 임대하는 작업실이 전부였는데, 공유 경제가 활성화된 까닭인지 시간제로 예약을 받는 곳도 많아졌다. 음악 작업실은 유서를 쓰기 적합하다. 사방이 창문 하나 없이 방음벽으로 막혔고 문에는 잠금장치가 있다. 내 행동을 볼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방해할 사람도 없다.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 따윈 당연히 없다. 사람 목소리가 듣기 싫어 보컬이 없는 노래를 틀어놓고 이미 병에 주도권을 뺏긴 인생을 끝낼 준비에 몰입하면 됐다.
신기한 건 유서를 쓰면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달리 사무적인 태도로 건조하게 글을 썼단 것이다. 내 물건은 어떻게, 장례는 어떤 식으로, 뒤처리할 일이 있으면 부탁하고 그런 게 다다. 감정이 격해진 건 엄마에게 제주도를 같이 못 가서 미안하단 문장을 썼을 때뿐이다. 엄마는 녹내장이 있다. 언젠가 실명할지도 모른단다. 나는 20대 초반에 일본이나 유럽,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아버지는 출장 때문에 이런저런 국가를 나다닌다. 엄마의 여행은 주로 제주도에서 이뤄졌고, 유일한 해외 경험은 나와 오사카와 교토를 여행한 게 전부다. 실명하기 전에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곳에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아 엄마와 동유럽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 여행에서 깨달은 건 엄마는 유럽 여행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엄마는 소고기는 냄새가 나서 입에도 대지 않으며, 돼지고기도 냄새가 나면 안 먹는다. 느끼한 것을 싫어하는 데다 유당불내증이 있어 치즈가 들어가면 못 먹는다. 간이 센 것도 싫어한다. 그런 사람한테 유럽 음식은 지옥이다. 거기다 엄마는 웅장한 프라하의 야경보다는 소소한 체스키 크룸로프를 좋아했다. 화려한 건물들의 외양은 엄마의 마음을 뺏는데 실패했다. 결국 그 여행은 엄마에겐 제주도 여행이 가장 적합하다는 교훈을 주고 끝났다. 그러나 엄마는 제주도에 가질 못했다. 입대 전 나와 다녀온 여행이 마지막이다. 바쁜 아버지가 엄마를 챙겨 제주도에 갈 리가 없다. 전역 후 여유가 생기면 다녀오자 했으나 코로나가 이어졌다. 코로나가 잠잠해졌을 때 나는 여유가 없었다. 그 후엔 가세가 기울었다. 그래서 엄마가 좋아하는 제주도 여행은 5년 전이 마지막이다. 소리 내어 울어본 게 몇 년 만인가. 건조한 유서에서 유일하게 먹먹한 대목이었다.
자살하려는 이에게 살아야 한다고 말은 못 하겠다. 아직도 그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단 생각을 하니까. 요즘 이 나라를 비롯한 세상에서 좋아지고 있는 게 있긴 한가? 아마도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작업을 한 것이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제외하면 딱히 없을 거다. 아니 세상이 좋아진다 한들 그게 자살하지 않을 이유가 되기는 하나. 아무리 좋아진들 인간이 사는 세상인데. 생존하려면 오염되어야 하는데. 그걸 목격하고 직접 느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그럼에도 나는 일단 살아보기로 했다. 매일 삐걱대고, 어떤 날은 퇴보하지만 그러기로 했다.
자살하려는 이에게 그건 비겁한 행동이라느니, 가족과 지인을 생각하라니 하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 아마도 당신보다 자살을 생각하는 상대가 그것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려는 거다 그 사람은. 그런데 그 빈약한 언어로 끝없는 추락을 막겠다니. 어설프다. 차라리 술 한잔하자고 연락해 끌어내는 게 낫다. 끌어내고 나면 무슨 말을 해서 상황을 반전시키려 하지 말고 차라리 경청해라.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던 간 이미 상대방은 그 말을 백번도 더 들었다. 그러니 쓸모없는 말을 더하기보단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