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요량으로 간 호텔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3월 중순부터 제대로 학교에 가지 않았고, 술만 마신 상태였다. 모은 돈도 다 써버렸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며,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경험상 이럴 땐 곧장 병원에 가는 게 낫다. 나는 내 상태와 근 몇 달간 행동에 대해 보고했다. 중요한 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 상태에 대해 가족에게 알릴 것, 다른 하나는 입원할 필요성을 느끼면 입원을 고려할 것.
도저히 말로 내 상태를 보고할 용기도 나지 않았고, 논리 정연하게 풀어낼 자신도 없었다. 부모 앞에서 자살을 생각한단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쓰려고 한 유서 대신 편지를 썼다. 내 상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와 병원에서 들은 말들을 최대한 상세하게 적었다. 그걸 책상 위에 두고 나와서 전화해 읽어보라 말했다. 종일 불안해하며 걷기만 했다. 집에 들어가기 직전엔 숨이 막혀 약을 때려 넣고 마음을 추슬렸다. 잘한 일인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단 거다.
가족과 대화했다. 가족은 선생님을 뵙고 내 상태를 알고 싶다 했다. 그렇게 했다. 몇 번 뵌 적도 없는 학과장님께 메일을 보내 자퇴를 위한 상담 날짜를 잡았다. 이상하게 학교만 가면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 같아 공황이 심해졌다. 분명히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으며, 저들이 떠드는 건 학과 안에서 누가 누구랑 썸을 타고, 과제가 귀찮고 피곤하다는 흔한 내용임을 알아도 그랬다. 처음엔 휴학을 결심했으나 휴학 신청 기간이 끝나 등록금 반환이 어려운데, 자퇴하면 부분적으로 등록금을 돌려준다고 해 자퇴하게 됐다. 학과장 교수님은 학교생활 외에 다른 일이 잘 풀려서 자퇴하냐고 웃으며 질문하셨다. 나는 사실을 말했고, 교수님의 표정은 굳었다. 철학 박사 학위가 있는 사람도 이런 상황은 어렵구나 하며 연구실을 나섰다.
학창 시절 동창이나 대학 동기들은 진즉에 졸업장을 땄고 취직했다. 취직한 지도 꽤 되어 이직을 고민하는 이도 있다. 나는 흔한 대학 졸업장 하나 없는 고졸이 됐다. 가진 거라곤 1종 보통 면허와 전역증뿐이다. 자퇴 신청서를 낸 5월의 교정은 더럽게 푸르렀고, 봄날의 대학생 무리는 짜증 나게 해맑았다. 일련의 절차를 마친 나는 학교를 나오며 카톡을 켜 전에 일하던 가게에 연락해 비는 자리가 있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