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따윈 모른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웅장한 질문에 내놓을 만한 세련된 답이 내게는 없다.
고등학교 시절 진로를 고민하던 때 부모님께 선물을 받았다.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다. 고등학교 무렵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온 건 아니지만 그 질문을 오래도록 품고 있었다. 학교 앞 막걸릿집에서, 동네 해장국집에서, 새벽의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친구들과 그 고민을 나누고 덜어내고 보탰다.
전역 후 주제가 달라졌다. 우리는 어떻게 살지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살아남을지만 고민했다. 낯설던 2호선 역명을 을입, 홍입 하는 식으로 줄여 부른다고 어른이 된 건 아니었고 사회에 적응한 것도 아니었다. 그때 나는 우리가 평범으로 수렴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 여겼으며, 몸에 맞지 않는 사회라는 틀에 몸을 욱여넣느라 벅찬 기분을 느꼈다. 우리는 합정역 골목길 어귀의 술집에서 푸념을 안주 삼아 술을 들이붓고 삶이 소화되지 않아 게워댔다. 그렇게 삶을 나누어 덜어내고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자퇴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정신의학이나 우울, 투병기, 운동 관련 서적 등을 찾아 공부했다. 동네 하천을 가볍게 걷는 것으로 시작해 헬스장에서 꾸준히 운동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꾸준한 것은 무너지는 것이었다. 자퇴 직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정신을 다잡다 7월경 다시 무너졌다. 두 달 가까운 시간을 다시 술에 절어 살았다. 9월쯤 돼서야 다시 정신을 붙잡고 운동을 시작했다.
여태 써온 글은 죄 평가를 염두에 둔 글이다. 과제로 제출해야 할 에세이나 리포트, 공모전에 제출할 요량으로 쓴 수필 같은 거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누가 보기에 멀끔한 결론을 내야 한다는 기분이 차오른다. 하지만 여전히 썩 괜찮은 답 따윈 없다. 지금부터 떠들건 이렇게 잘살고 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고 시행착오 중이라는 나의 더딘 발전 과정이다. 이게 내 삶에서 뽑아낼 수 있는 가장 멀끔한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