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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공비행 Oct 27. 2024

이방인.

 카뮈의 이방인이나 이센스의 이방인과는 1도 관련이 없다. 이방인이란 단어가 이미 소모된 단어 같아 쓰기 싫다. 하지만 경계인, 가장자리, 변두리 같은 말들이 입에서 맴돌다 이방인이 가장 낫겠다 싶어 쓴다.


 이십 대 초반, 동교동에서 약속이 있어 2호선을 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당시의 나는 해외여행을 종종 가곤 했는데, 순간 여기가 해외와 뭐가 다르지 싶었다. 언어가 통하는 것이 크긴 하지만 나는 역 안의 인파 중 단 한 명의 취향도, 역사도 모른다. 순간 낯선 이국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이방인같이 느껴졌다. 나는 툭 튀어나온 사람이다. 웬만한 분야에 있어 통상적인 한국인과는 대화가 잘 통하질 않는다. 학창 시절에도, 대학에서도, 군대에서도 그랬다. 늘상 변두리를 맴돌았고 딱히 중심으로 가고 싶단 생각도 없었다. 보통의 한국인처럼 살아보려고 안 한 것도 아니다. 생긴 것에 맞지 않는 삶을 살아보자 시도했으나 거창하게 말아먹고 병만 얻었다.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내 기준으로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튀어나온 나를 깎아봤자 느는 건 담배뿐이었다. 별로 깎여 나가지도 않았고. 이렇게 살아보자 결심한다고 하루아침에 남의 시선에 무심해지는 것도 아니고 불안하지 않은 것 역시 아니다. 다만, 난 사람들 다 가는 길 가는 게 정말 안정적인 방식인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또 그렇게 살면 정말 불안하지 않은지도 의문이다. 난 삶에서 불안이란 건 제거할 수 없기에 차라리 익숙해지거나 당연하게 대해서 무심해지는 쪽이 마음 편하다고 본다. 까짓 거 이방인으로 살자. 나는 더는 나를 고갈시키고 싶지 않다.


 세상 모든 것들이 알파메일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으로 존중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나도 타인의 삶을 존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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