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에서 나온 언어로 나를 가두리 양식하려 했지만 완벽하게 성공하진 못 했다. 누가 봐도 무너질 법한 큰 계기가 아니라도 쉽사리 무너진다. 그게 나다.
고등학교 시절 이런 생각을 했다. 역사를 배우다 보면 관 뚜껑 닫히고 평가가 뒤바뀌는 인물은 부지기수다. 그러면 내 인생도 사는 내내 좋지 못한 평가를 받다가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을 때 돼서야 평가가 바뀔 수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장기적인 의미에서 긴 과정을 살다 갈 뿐이다. 자기 삶의 총체적인 평가란 건 결국 모른 체 가는 거다. 그렇게 따지면 삶은 그저 긴 과정에 불과하니 쫄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오래도록 잊고 있었다.
유시민 작가의 신간을 읽는데, 서문에 몇 페이지를 이 나라의 암울함에 대해 말하다 갑작스레 희망은 힘이 세다는 말로 끝이 나더라. 잠깐 의아했으나 희망은 그런 거지 생각했다. 희망은 근거가 없거나 미약하다. 최소한 내 삶에서 희망은 추상적이고 절망은 구체적이었다. 희망을 품으려면 그 희박함에 자신을 걸고 갈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결과고 나발이고 내던지고 무작정 희망을 품을 때가 즐거웠다. 마구잡이로 살잔 건 아니다. 다만, 최소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 방향을 틀고 싶다. 다행인 건 이 모든 걸 내가 메모해뒀단 거다. 만약 적어두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단 사실 자체를 잊고 어쩔 줄 몰라했을 거다.
사실 어떤 고급진 문장보다 중요한 건 관성을 바꾸겠단 생각일지도 모른다. 내가 방향을 고쳐 잡고 삶의 경로를 수정하려 해도 자꾸만 넘어지는 것도 망가졌던 날들의 관성이 남아 있어 그런 것 같거든.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상기하고 방향을 고쳐 잡은 결과 뭐가 변했나? 술을 끊기로 해놓고 못 끊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7번 이상 마시던 걸 3번 이하로 줄였다. 정상 범주의 무게까지 빼진 못했지만 11kg을 감량했다. 눈치가 보여서 헬스장도 못 가고 동네 하천만 산책하다 이젠 아침이면 자연스럽게 헬스장에 가 데드리프트를 한다. 빠른 속도로 러닝머신을 타진 못해도 속도를 0.1씩 올려 점점 높은 속도로 걷는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 뛰는 날이 오고 그런 날이 자연스러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