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문장이 없나 메모장을 뒤적이다 나름 괜찮아 보이는 걸 발견했다. ‘당신이 당신의 평범함까지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요.’ 이 문장을 썼을 때의 나는 오만했다. 그냥 오만한 게 아니라 혐오스러울 정도로 그랬다. 나의 능력으로 누군가의 극적으로 삶을 바꿀 순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언어로 누군가의 인식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눈대중으로 상대방의 결핍을 꿰뚫어 보고 상대방에게 적합한 단어를 골라 정확한 문장을 처방하는 의사 비슷한 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게 제일 필요한 건 나였다.
세간에서 떠드는 평범함이 무슨 자료를 바탕으로 정의되는 건진 모른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떠드는 평범이란 건 잘생기진 않아도 훈훈하고 180이 넘진 않아도 170대 후반은 되는 키에 적당한 비율을 갖고 스카이까진 아니라도 인서울이나 경기권에서 인지도가 있는 대학을 졸업한 인간을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부터 떠들 평범은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목격한 평범이다. 내가 목격한 평범은 체형이나 얼굴이나 키 중 적어도 한 군데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고 학벌 콤플렉스까진 아니라도 자신의 학벌이 부족하다고 여기며 애착이나 열등감, 자존감의 부족 등으로 상처가 있는 삶이다. 솔직히 모든 인간은 정신의 어딘가가 망가져 있고 그걸 자신이 인지하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다고도 생각한다.
위국 일기라는 만화에서 주인공 아사는 되고 싶은 자신이 되려고 한다. 그녀는 중학생이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은 안중에도 없이 되고 싶은 내가 되려고 했다. 나는 종종 아저씨 소리를 듣는 이십 대 후반이다. 그런 마음을 품었을 땐, 내 안에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은 없는 것처럼 취급하고 모른 체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무작정 무시하는 건 오래 못 간다. 왜냐면 그 마음으로 오래 살아가는 건 지치는 일이니까. 방법을 바꿔야 한다.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을 콤플렉스나 결핍까지 어떻게 치유하고 활용해 나갈지 생각해야지 무작정 무시하는 건 좋은 방법론이 아니다.
나는 사랑받을 용기가 없다. 자존감이 부족하다. 학벌 콤플렉스가 있다. 실수한 장면들이 꿈자리에 나타나고 내 역량이 부족해 망가진 일들은 담배를 태울 때마다 생각나 고통스럽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몇 시간도 버티기 힘들어해 회사 생활 같은 건 다음 생에나 가능할 것 같다. 상처가 있다. 왕따를 당했다. 회복하기 어렵다. 정신병이 있다. 집이 망했다. 그게 나다. 그런 걸 인정하기로 했다. 언젠가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까지 나임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