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끝에 2024년 4월 25일을 내 기일로 정했다. 자살을 결심한 건 올해 3월이다. 누구의 잘못인지, 무엇의 영향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전원 버튼을 강하게 눌러 강제 종료하고 싶었다. 어차피 끝낼 거 여기까지 온 경위는 알 바 아니었다. 4월 중순이 생일이라 생일에 죽어 생일과 기일을 같게 해 가족이 두 번 슬플 일 없게끔 하고 싶었으나 내 생일의 다음 날은 엄마의 생일이다. 생일 전날이 자식의 생일이자 기일인 건 너무 하다 싶었다. 그렇다고 4월을 통째 피하면 5월인데, 그땐 또 가정의 달이다. 어버이날도 있고. 그래서 그것도 안 된다. 그렇다고 그 이후에 죽자니 남은 삶이 너무 길다 싶다. 그래서 4월 말로 내 기일을 정했다.
값나가는 물건을 팔아 치우기 시작했다. 안 팔릴 법한 물건은 버렸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쓴 글과 짧은 메모들이 저장된 노트북을 버렸다. 옛날 일들을 그대로 간직한 핸드폰을 버렸다. 그간 살아온 흔적과 살아있었단 증거를 모조리 없애고 싶었다. 학교는 가지 않는다. 어차피 죽을 건데 교수님 말씀이 무슨 소용인가. 그곳에 있으면 괜히 공황만 심해진다. 대신 음악 작업실에 간다. 적당히 녹음하고 들어본 뒤 삭제한다. 해가 지면 맥주 두어 캔이나 소주를 적당히 마시고 취하지 않은 체하며 귀가했다.
우리 집은 운 좋게 주택 청약에 당첨됐다. 자가다. 부모님은 이 집으로 이사하며 죽을 때까지 살 거라 말했다. 내 방에서 일을 치르면 부모님의 계획은 수포가 된다. 고민 끝에 호텔 방에서 모아둔 백여 알의 약을 술과 함께 털어 먹고 끝내기로 했다. 호텔 직원이나 투숙객에게 폐가 되겠지만 가까운 이들에겐 상처가 덜할 것이다. 이기적인가 싶음과 동시에 그런 것에 관심 없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모은 돈은 모조리 써버렸다. 옷이나 장신구, 음식 따위에 흥청망청 써버렸다. 내가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병이라는 게 끔찍하다 싶으면서도 모든 게 편했다. 끝내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호텔에 방을 잡고 인근 피자집에서 피자를 샀다. 편의점에 들어가 술을 샀다. 돌아와 앉아 여태 모아둔 약 봉투를 꺼냈다. 대강 써둔 유서만 마무리해 주면 됐다. 그렇게 유서를 쓰려 컴퓨터를 켰다.
그러나 나는 그날 죽지 않았다. 거기까지 가서 왜 살아 돌아온 건지 나도 의문이다. 지인 중 살다 보니 자기 인생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렇지도 못하다. 생각을 거듭해도 세상은 살 이유보단 죽어야 할 이유가 많았다. 살만한 삶으로 전진하기 위해선 가성비 안 나오는 노력을 끝없이 해야 한다. 삶을 되돌아보면 생존보다 죽음이 타당하다고 여겨졌다. 더구나 난 종교도 없으며 신을 믿지 않는다. 나는 그 호텔 방에 들어가 체크아웃을 할 때까지 내가 살아야 할 이유 따위는 못 찾았다. 물론 지금도 모른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산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걸 이유 삼기엔 불충분하다고 느낀다. 일부 타당하나 전부는 아니다. 그러면 나는 왜 살아야 할까, 내 삶의 이유는 뭘까, 나는 왜 그날 죽지 않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