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靑春)

by 제이

청춘의 뜻은 푸른 봄이라는데, 나의 청춘은 왜 이렇게 어둡고, 아파야만 했을까?


알록달록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벽 없이 넘나들며 각자의 색을 조금씩 얻어 가고, 자신의 색도 조금씩 나눠주는 사람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음식, 새로운 활동들을 하며 자유분방하게 세상을 탐험하는 사람들. 그들의 봄은 푸르다.


나의 옷장을 열어보면 온통 흑과 백, 그리고 그 사이의 채도로 매워져 있다. 나는 흑백의 사람이다. 나 역시 이 음식 저 음식 먹어보고, 새로운 취미를 배워가고, 머릿속에 잡다한 지식들을 욱여넣어 봤지만, 내 삶에 색과 사람이 정말 들어왔던 적이 있나 싶다.


내 인생을 난잡한 체스판 같다. 다양하다 해도, 여전히 흑과 백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 싸움에 불과하다. 계산적이고, 건조하다. 색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그건 어쩌면 규칙을 깨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계절은 정말로 봄이었을까? 그렇다면 내가 개화시킨 건 대체 뭐였을까? 외로움? 공허함? 색과 사랑에 대한 질투와 갈망?


삶에 일랑일랑 향이 들어온 적이 한 번 있다. 지독하게 부드럽고 역한 꽃 냄새. 이제는 맡고 싶어도 맡을 수 없는 향. 색은 묻어나면 지우지 않는 이상 남아있지만, 향은 붙잡고 싶어도 휘발된다. 그런 향이 내 방을 매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 내 방은 말라있다. 아무나 가져다 쓰는 세제 냄새만 종종 날 뿐이다.


모든 걸 지워버리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던 순간이 있었다.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사람.


새로운 희망.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기 위한 트리거가 될 줄은 몰랐다.


절망하기 위해선 희망이 필요하다. 이번엔 다를 거라는 희망, 내가 변하고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내게 또 다른 기회가 올 거란 희망, 행복해질 거라는 희망,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나의 인생이 푸르른 봄이 될 거라는 희망.


문자 몇 마디로 부정되는 헛된 희망.


겨울에 태어난 나에게 봄은 너무나 짧았고, 여름은 폭염과 장마 사이의 변덕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장기 짝이 널브러진 체스판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흑과 백 사이, 규칙도, 질서도, 경계도 잃어버리고, 의미와 목적마저 사라진 무채색의 삶. 향마저 잃어버린 삶.


청춘? 내게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 또 있을까.


새벽 4시. 내가 일어나는 시간. 다른 이들이 햇빛 아래서 푸른 잔디를 보며 하루를 시작할 때, 나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젖은 잔디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보는 색이라곤 나를 막아세우는 듯한 붉은 신호등뿐. 그 붉은색마저 건조하다.


청춘의 뜻은 푸른 봄이라는데, 나의 청춘은 이미 죽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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