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서쪽 끝>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서 잤던 날이었다. 그날이 기억나는 이유는 너무나 평범한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 자고 일어나 여유롭게 출근 준비를 마친 다음. 침대에 누워 핸드폰 앨범을 보고 있었다. 엄마가 아침을 먹으라고 불렀다. 오랜만에 콩나물밥이었다. 어째서인지 콩나물밥이 굉장히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양념간장을 끼얹고 비비려고 숟가락을 막 든 참이었다. 순간, 내 가슴에 심장이며 폐 따위가 송두리째 타버리는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무엇인가 나를 떠나가는 것만 같았다. 너무나 무서웠고 서러웠고 또 사무치게 그리웠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기분이었다. 난생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어떤 감정은 정말 설명하기 힘들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렇다. 새 학기가 되었다. 지난 학기에 친했던 친구를 만났는데, 어쩐지 사이가 멀어질 것 같은 예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예감일 뿐이지만 꼭 그렇게 될 것 같은. 먼저 도착한 미래를 잠깐 맛보는 기분. 친구의 마음이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절대, 절대 그 친구와 멀어지고 싶지 않은 그런 감정 같았다. 엄마가 걱정스레 물었다.
“일영아, 왜 그러니?”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너무 꺼이꺼이 울어서 엄마 아빠는 내게 말도 붙이지 못했다. 나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탁자 밑으로 그대로 주저앉았다. 가슴을 쥐어짜는 슬픔이었다. 뚝뚝- 굵은 눈물방울이 마룻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적막해진 집 안에는 내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이윽고 아침 햇살이 마루로 비춰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루로 들어온 한 줄기 빛이 주저앉은 내 손등 위에 어루만지듯 얹어졌다. 그 모습은 나를 더 서럽게 만들었다. 무슨 일 있니? 걱정스레 엄마가 물었지만 나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니야. 아니야. 몰라. 나도 모르겠어.”
아침 햇살이 마루를 가득 채울 때까지 꺼이꺼이 오열했던 그 아침을 나는 기억한다.
***
1년이 지나도록 나는 내가 그토록 울어야 했던 이유를 모른다. 그날의 슬픔은 나를 굴복시켰다. 콩나물에서 나는 옅은 비린내를 참을 수 없게 됐고, 얼마 뒤에는 채소가 풍기는 냄새를 모두 견딜 수 없게 됐다. 파도가 밀려오듯 섭식장애가 덮쳤다. 세상 모든 것이 냄새를 가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거리마다 냄새가 있고, 지하철에서는 쇠 비린내가, 보도에서는 쉰내 섞인 흙냄새가 났다. 사람들에게는 체취가 느껴졌고, 나는 온갖 핑계를 대며 마스크 쓰기를 고집했다. 후각은 금방 피로해지는데 예민해진 뇌가 계속 냄새를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나는 약을 한 움큼씩 먹었다. 그즈음 나는 종종, 아니 자주 멍때리기를 했다.
“혹시 최근에 중요한 사람을 잃으셨나요?”
의사가 물었다.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치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나는 한참이나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없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도 있나요?”
나는 무슨 이야기 끝에 이런 질문이 나왔는지 몰랐다. 아마 나도 모르게 또 멍을 때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랬다. 나는 줄곧 죽음을 생각했다. 내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디로 가게 될까. 죽음은 아무 의식이 없는 상태일까.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죽는다면, 또는 실종된다면 어떨까? 나는 이미 죽었는데, 누군가는 여전히 내가 살아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래서 죽음은 상대적인 건지도 몰랐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초등학교 반 친구. 그 애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어쩌면 죽음은 무기력에 가까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상관치 않는 무기력. 그게 죽음의 정체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