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1. 그날이 기억나는 이유 (2)

단편 소설 <서쪽 끝> 2화

by allen rabbit

나는 후각의 예민함이 조금 가라앉으면 종종 소리를 참을 수 없게 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냉장고의 컴프레셔 소음이, 또 어떤 날은 집안을 날아다니는 파리 소리가, 어떤 때는 생수기를 통과하는 물소리가 신경을 긁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귀마개를 하면 이번에는 이명이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저 귀를 막고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과장은 귀를 막은 내 손을 뜯어내며 소리를 질렀다.


“천일영! 이 새끼 뭐야?! 내 말 듣기 싫다고 티 내? 매일매일 창밖이나 바라보고! 대체 일은 언제 할 거야? 리포트 언제 끝낼 거냐고?!”


나는 그대로 짐을 싸서 다니던 증권사를 그만뒀다. 나는 이 일이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꼭 뭘 잃어버려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달까, 뭔가 그리운 것도 같고…. 일이 나랑 안 맞았어요. 죽고 싶고 그런 건 아니에요.”


의사는 스트레스 탓이라고 했다. 약 먹고 잘 쉬면 나아질 거라고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잃어버린 진짜 꿈도 찾아보라고 응원도 해줬다. 하지만 먹는 약은 줄지 않았다.


***


컹컹!

쵸코가 짖었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나 보다. 집에 온종일 쵸코와 있으면서 알게 된 거지만, 녀석은 자주 턱을 괴고 현관 앞에 앉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내가 회사 다닐 땐 온종일 저렇게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미안했다. 지금 사는 오피스텔은 방음이 잘되는 편이다. 하지만 유난히 울림통이 큰 헬시코기가 짖을 땐 늘 조마조마했다. 혼자 사는 주제에 왜 웰시코기를 반려견으로 골랐을까 의아했다. 나를 돌아보는 쵸코의 눈빛이 어딘지 아련했다. 내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쵸코에게 말했다.


“쵸코. 산책 갈까?”


산책 중 편의점에서 나는 쵸코가 먹을 간식과 컵라면을 샀다. 테이블에 앉아 캔을 따줬지만 쵸코는 간식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웰시코기는 어마어마한 식탐과 산책 욕구로 유명하다. 하지만 쵸코는 강변에 나온 지 반 시간도 안 돼서 지쳐버렸다. 축 늘어진 채 턱을 괴고 있는 쵸코를 보자 그만 나도 식욕이 사라졌다.


그때 갑자기 그 사내가 나타났다. 그러자 쵸코는 반짝 고개를 들었다. 꼬리를 흔들지도, 짖거나 으르렁대지도 않았다. 그건 현관에 앉았다가 무슨 소리가 들리나 고개를 들고 귀를 쫑긋하는 그런 태도였다. 사내는 쵸코의 간식을 집어 들고 테이블 맞은편에 앉더니, 손가락으로 캔을 파먹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저기요.”

“맛있는 건데 왜? 불고기 맛 별로야?”


사내는 대답 대신 쵸코에게 되묻고는 순식간에 캔을 먹어 치웠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반쯤 벗겨진 머리에 곰처럼 크고 투실투실한 몸매를 가진 중년이었다. 눈가와 얼굴 전체에 쥐젖이 잔뜩 나 있어서 꼭 소라나 고둥 같았다. 노숙자 같지는 않았지만, 누구라도 처음 보면 흠칫할만한 인상이었다. 고둥이 이번엔 내 컵라면을 가져갔다.


“저기요. 뭐 하시는 거냐고요.”


하지만 고둥은 대꾸도 없이 아직 뜨거운 라면을 식히지도 않고 후루룩대며 먹었다. 이른 시간이라 편의점에는 쵸코와 나뿐이었다. 공원에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때문에 누군가 다가온다면 금방 알아차렸을 테지만 고둥은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어느새 국물까지 싹 비운 고둥이 물었다.


“찾는 게 있지?”


나는 그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숨이 가빠졌다.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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