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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Jun 28. 2023

스토리의 보고(寶庫) <동야휘집>

도서 리뷰. 황금비, 김현룡 김종군 외


동야휘집은 재미난 책이다. 지금은 책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에 조선시대 민간에서 구전되던 야한 이야기를 엮은 책을 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 책의 원전이 이 책 <동야휘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동야휘집>은 조선시대 민간에서 구전되는 이야기를 모은 책으로 전 4권의 굉장히 두꺼운 책이다. 오래도록 한글 완역이 안 돼오다가 이제야 완역본이 나왔다. 이 책을 내는 데 5년이나 걸렸다고 하니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원작자는 이 책의 내용이 “간혹 현실과 거리가 먼 허황한 사건이나 괴이한 신귀(神鬼) 이야기인, 옛 성인 공자께서 말씀하지 않았다고 하는 괴력난신(怪力亂神) 관련 내용이라 할지라도, 이미 기록되어 전하고 하나의 전설(傳說)과 고사(古事)로 굳어진 이야기는 역시 빠짐없이 수록”하였다고 적었다. 읽다 보면 신비한 이야기에 넋을 잃고 빠져들거나, 재밌는 이야기에 박장이 터지기도 한다. 인간사의 모든 기기묘묘한 이야기들을 모조리 담고 있는 기분이다. 간혹 선계의 이야기나 귀신의 이야기처럼 애초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뺀다면, 이 책은 신기할 정도로 논리적이다. 간혹 우연이 섞여 들어오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대게 납득될만한 이야기 구성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옛날이야기니까 억지스럽게 꿰맞춘 부분이 많지 않을까 하는 편견을 아주 날려버렸다.


제1권부터 옛이야기라 재미없을 거라는 편견을 깨 준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세종대왕은 어느 날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자를 홍문관 6품에 올린다. 그러자 신하들이 맹렬히 반대하고 세종은 알았다며 임명을 철회한다. 그리고 다음 날 세종은 그를 이번에는 홍문관 5품으로 한 등급 올려서 임명한다. 당연히 신하들이 또 맹렬히 반대한다. 그러자 세종은 알았다며 철회하고 다음 날에는 4품에 앉힌다. 신하들이 또 맹렬히 반대하자 세종은 또다시 철회를 한다. 하지만 세종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 세종의 캐릭터가 돋보이는 재미난 이야기!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영민했던 남편은 결혼을 하자 부인과 노느라 공부를 멀리한다. 그러자 아내는 공부방에 미인 그림을 하나 걸어 놓는다. 그러자 남편은 공부를 미친 듯이 열심히 하더니 단박에 대과에 급제한다. 남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권에는 세종대왕, 성종, 율곡 이이, 서화담과 토정 이지함, 오성과 한음, 이순신과 임경업 등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의 재밌는 야사가 한가득 담겨 있다.     

동야휘집 2권은 1권과는 조금 다른 신기하고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다. 금강산 암자에 사는 늙은 왜승의 사연을 보자.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조선 8도에 위협이 될만한 인물들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일본이 보낸 8명의 첩자 중 하나였다. 이들이 처음 조선 땅에서 마주한 것은 뜻밖에도 이들이 첩자임을 아는 어느 선비였다. 그는 어마어마한 검술로 첩자 다섯을 순식간에 죽이고 만다. 그러자 나머지 셋은 선비에게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애원하게 된다. 그래서 선비는 이들을 제자로 들이게 되지만 이들의 운명은 생각지도 못한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그렇게 혼자 살아남은 왜승은 선비에게 전수받은 검술을 마지막으로 선보인다. 이때 왜승이 칼을 꺼내는 장면은 정말 기가 막힌다. 노승은 소매에서 끈으로 묶은 쇠공 두 개를 꺼내는데 끈을 풀고 접혀 있는 쇠를 펼치면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이 되는 것이다! 놀라운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이 밖에도 기묘한 술수로 문제를 해결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영민한 어린 제자의 이야기, 탱화를 그리기 위해 90일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아야 하는 노승의 이야기 등 신비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2권 가득 실려 있다.


동야휘집 3권은 우리 조상들의 일상다반사라 할만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자식의 혼수를 걱정하는 아빠. 서울에 물건 팔러 갔다가 사기를 당하는 시골 장사꾼, 가난한 두 남매를 혼인시켜 주는 어사 박문수.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간 이웃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느 가난한 아빠는 딸의 혼수가 걱정되어 용기를 내 평양 감사를 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러 간다. 감사는 친구의 집으로 혼수를 보내주면서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조그마한 열쇠를 하나 같이 보낸다. 이를 본 아내는 이게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한다. 한편 집에 돌아온 남편은 나날이 야위어 가기만 한다. 과연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 마을에 힘 좀 쓰는 사내 우상중은 덤벼드는 호랑이의 허리를 잡고도 어쩔 줄 몰라 아내를 부르러 집까지 호랑이를 끌어안고 간다. 그러자 벼락처럼 뛰어나온 아내는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죽인다. 남편 우상중보다 아내가 힘이 더 장사인 것. 우상중은 전라 좌수사로 부임해 내려가서는 어느 기생에게 눈독을 들인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아내가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회오리바람처럼 수백 리 길을 사흘도 안 되어 달려 내려간다. 장교와 병졸이 가득한 배 위에 나타나는 아내. 이 호랑이 같은 여자가 우상중의 아내인 줄 안 병사들은 엎어지고 넘어지며 배 밖으로 부리나케 탈출한다. 그래서 과연 남편은 어떻게 됐을까? 재밌고 웃긴 이야기들로 가득한 3권은 선조들의 해학과 일상다반사가 빛나는 책이다.


동야휘집 4권에는 남녀상열지사와 기이한 괴담이 많이 들어 있다. 정염에 휩싸인 남녀 군상들과 신선, 귀신, 뛰어난 무장을 갖춘 무인과 영리하고 셈 밝은 상인도 등장한다. 한눈에 반해 버린 여인과 정을 통하기 위해 반년씩이나 공을 들인 상인이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상인. 그는 우연히 어떤 남자에게 자신이 정을 통한 여인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준다. 그런데 하필 그 남자는 여인의 남편이었고, 남편은 자기 아내가 이 상인과 불륜을 저질렀음을 알게 된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장모가 아프다는 소식을 전하며 아내에게 먼저 집에 가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친정 부모와 함께 보라고 편지를 한 장 들려 보낸다. 친정 부모와 함께 열어 본 편지에는 이혼하겠다는 글이 적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된다. 마치 일일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끝이 날 듯하지만, 또 새로운 사건이 생기고 이 사건은 전혀 예상 못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우리 조상들 역시 막장 드라마를 즐겼던 모양이다. 동야휘집 4권에는 다른 세 권의 책 보다 훨씬 더 진기한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 호랑이와 요괴가 등장하고, 개와 기녀가 나오고, 도적과 임금이 등장한다. 상인은 큰돈을 벌기 위해 꾀를 내고, 귀신과 함께 놀며 귀신을 속이는 등 온갖 기기묘묘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가령 이런 이야기다. 어느 산속 깊은 곳에 사는 이름다운 두 여인은 잠자리를 갖는 남자마다 다음날 시체가 되고 만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과연 이 여인들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전체 4권 중 단연코 제일 재밌다고 할 수 있는 제4권이다. <동야휘집>은 우리나라의 천일야화라 할만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뜻밖에 억지나 무리한 전개가 없다는 점이 놀라웠다. 하여튼 우리 조상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만만한 존재들이 아니다. 뭐든 참 잘한다. 나는 남들에게 말해주고 싶지 않은 비서(祕書)를 손에 쥔 기분이다. 사주팔자를 보면 나는 남의 글에 아이디어를 더하는 각색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쪽으로 나가야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런데 마침 <동야휘집>을 읽으니 과연 이것이 운명인가? 싶다. 기기묘묘하고 재미난 이 짧은 이야기들을 각색하며 야금야금 빼먹어 볼 생각에 마음이 두근두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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