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썸머 Mar 07. 2024

사람의 기본값 심리

강자에겐 착한 사람이 약자에겐 냉철인이

톡방에서.

톡방에 글이 올라온다. 즉답을 한다. 헤헤 거리는 개 같다.

톡방 자기 글에 좋아요 선답을 달면 묵인한다.


직접 만나는 자리에선.

먼저 인사를 하고 헤헤거린다.

와도 모르는 척하고 쌩깐다. 아니 고개 돌리지 않으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보인다.


그렇다. 사람은 도덕적이다 비도덕적이다, 윤리판단이 필요 없이 그에 앞에 신경 써 대해야 할 사람과 무시해도 될 사람의 판단에 따라 행동이 바뀐다. 그 사람의 윤리관을 따질 소지가 아니다. 사람이 그렇다.

그게 어제 보였다. 그리고 방금 생각이 났다. 순간의 생각을 기록한다.

그게 영향을 미쳤냐고. 좋을 순 없지만 그런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런가 보다 한다. 보이고, 알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 감정에 동요는 아주 없진 않겠지. 눈에 들어왔으니 머리로 생각하는 과정을 거쳤고, 사고에 들어가 나가는 동안 약간의 불쾌함이나 인간에 대한 신뢰의 깎임이 어느 정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다. 사람이 편하거나 좋지도 않다. 함께하는 걸 대체로 불편해하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이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우나에서 아줌마, 할머니뻘 나이의 여성들의 다양한 주제의 얘기 듣기를 좋아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어 대화하기를 쉽게 하는 편이다. 어려운 사람이 있고 쉽고 편한 사람이 있기 마련. 잘 모르고 나이 있는 분에 대해 편하게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하다.

또 사람과 가까워 지기를 어려워한다. 피상적인 인사로 시작한 한 두 번의 대화는 어색함을 감수한 채 하지만 세 번 이상의 대화나 지속적인 만남에서 연속적인 괜찮은 사람다움을 보이며 관계를 맺는 게 에너지를 고갈시킬만한 어렵고 부담스럽고 힘든 일로, 피하고 싶고 피하게 된다. 그게 습관으로 자리 잡혀 있다. 아마 내가 사람들과 깊은 유대를 어려워하는 면을 지니고 있는 거 같다.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나는 사람이 어려운 사람이다. 왜 그럴까. 심리학에서 항상 귀결되는 어린 시절 부모 양육의 결과인가. 인정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고, 구박받고, 꾸지람에, 큰 언성의 야단으로 주눅 든 어린 자아가 내면에 깊게 박혀 있어서. 누구에게도 나를 드러내 보이지 못하고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피해의식과 의심이 가득한 회피형 인간으로서의 내가 된 것인가. 그것이 결국 나르시시스트의 먹잇감이 되는 행동이 되고 물려 찢기고 뜯겨 사람에 대한 회의감을 더 키워 가는 악순환이 되는 것일까.

나르시시스트 옆의 골든차일드와 서플라이들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내쳐지는 와중에 가는 줄을 잡고 있는 형국 같기도 한 상황에 있다. 나를 어디에 위치 지을까. 나의 태도를 어떻게 가져갈까를 생각한다. 나는 혼자로서 괜찮을까. 힘들 것 같아 이 비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한쪽에서 존재 없이 자리하는 것이 가장 나을 거란 판단에 조용히 내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적응해 가며 사람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울 때 보는 우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