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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냥이실록
18화
새벽에 차르와 사랑 나누기
by
모니카
Jan 9. 2025
새벽녘에 외로운 차르
9시부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독감이 유행이라고 난리인데 우습게 알았다가 혼쭐이 나고 있다.
끙끙 앓고 있는데
남편이 달려들어
비명을 지르는데도 어깨부터 손바닥까지
사정없이 지압을
했다.
남편의 혈자리 지압과 뜸이 우리 집 응급처치 법이다.
처음에는 적극적인 남편의 시도에 식구들이 도망 다니며 거부했지만 한번 당해보면 은근히 효과가 있어서
이젠 어디가 아프면
먼저 남편을 찾는다.
얼마 전에도 편두통이 왔는데 통증 부위를 중심으로 괄사를 사정없이 밀어주더니 다음 날 통증이 거의 줄었다.
병원 가는 것과 약 먹는 것을 병적으로 꺼리는 우리 부부는 감기가 와도 고스란히 아프고 낫는다.
주위 사람들이 '아직 덜 아프군'하며 쯧쯧 거렸지만 감기엔 뜨겁게 데운 곡물베개나 고춧가루를 푼 매운 콩나물국을 더 신뢰한다.
감기 이틀째 되는 날 깍두기 국물과 고춧가루를 푼 콩나물 국을 한 사발 먹고 일찌감치 누웠다.
한기가 느껴져 무거운 이불을 하나 더 뒤집어쓰니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오며 열이 올라 몸에서 땀이 났다.
가물가물 잠이 들려고 하는데
살짝 벌어진 이불 사이로 차르가 얼굴을 디밀고 울었다.
아직 잘 시간이 아닌데,
밤참도 안 주고 화장실도 안 치워 주고 양치도 안 했는데, 벌써 누워있는 엄마가 이상한가 보다.
일어나서 아는 척하기에는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손을 뻗어 좀 쓰다듬어 주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이번 감기는 남편이 제일 먼저 걸리고 다 나아가자 아들과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 온 식구가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매일 밤 12시는 돼야
잘
준비를 하는데 이렇게 일찍 불을 끄고 온 식구가 드러누워서 차르가
어리둥절하고 불안할까 걱정이 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주위를 맴돌며 계속되는
냥~힝~응~ 울음소리를 신경 쓰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희미한
냥~~ 소리에
갑자기 잠이 깼다. 핸드폰을 보니 3시가 좀 넘어 있었다.
그런데 차르가 내 머리맡에 있었다
.
3신데, 5시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아니 잠을 안 잔 거니?'
뒤집어쓴 이불을 내리자 차르가 얼굴을 내 얼굴에 사정없이 비벼댔다.
환경에 민감해서 고양이는 주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던데 평소와 다른 집안 분위기에 불안했을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났다.
어둠 속에서 식구들이 깨기를 기다렸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안쓰러웠다.
어릴 때 엄마는 자주 앓아누우셨다.
우리 오 남매는 장난치며 놀면서도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었다.
차르도 그랬을까?
새벽 5시 이전에 깨우면 절대 아는 척 안 하지만, 내 옆에 바짝 엎드린 차르 엉덩이를 두드려줬다.
화장실로 주방으로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놓칠세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려가며 눈을 떼지 않았다.
고양이는 3살 정도의 지능이라고 하니까
이제 2살 반 된 차르는 아무리 청년기라고 해도
3살 아기일 것이다. 할아버지 고양이도 세 살 아기 다루 듯해야 한다는 어느 수의사 말이 생각났다.
어둠 속에 혼자 남았을 3살 아기 차르가 가여워서, 감기가 옮을까 고개를 돌리고 계속 쓰다듬어 주었다.
차르를 만나기 전에는 고양이가 이렇게 사람과 깊은 유대를 가질 수 있고 감정의 교류가 오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렇게 눈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마음을 알고 울음소리로도 감정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나의 아들들을 키울 때 그랬던 것처럼 차르가 아픈 것은 견딜 수가 없고,
잘 먹는 소리에 기뻐하고 건강한 배설에 환호하게 되었다.
이 새벽에 끙끙 앓아 누었다가 고양이 울음소리에 잠이 깨어 내 몸 아픈 것보다 어둠 속에 혼자 깨어있었을 차르의 불안을 더 걱정하고 있다.
우리 식구가 되지 않았다면 다른 길고양들처럼 이 추운 겨울밤에 잘 곳을 찾아,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또 다른 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필 우리 가족이 되어서 내 생에 아니, 우리 가족들의 생에 깊숙이 들어와 버린 차르의 운명과 우리의 인연이 너무 소중해서 차르를 꼭 안아 주었다.
고양이도 이럴 수 있다.
으스러지게 안아도 물고 할퀴지 않고 발버둥 치지 않고 꼭 안겨 행복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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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고양이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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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잠과 줄탁동시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젊은 시절 30년을 아이들하고 어울리다 보니 어른들보다는 아이들과 노는 것이 자연스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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