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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보다 높은 수의사 자살률

마음으로 낳아 가슴으로 잘 키우기

by 모니카
종이봉투 굴 속 차르






'간치수가 좀 높으신 편이어서...'

'...'?

'치아가 선천적으로 좋지 않으셔서...'

'...?'


아들과 차르 동물병원 검진 갈 때마다 듣는 어색한 존댓말이다.

처음엔 그 안 좋다는 주체가 헷갈려서 선생님이 실수를 하셨나 했는데 매번 마찬가지였다.


"문 선생님은 왜 자꾸 차르한테 존댓말을 쓰시지?''

"저는 그게 이해가 돼요. 항의하는 사람이 있다잖아요. 보호자들 반응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대요."


아니, 아무리 사랑하는 반려동물이지만 존대를 하지 않았다고 항의를 하다니.

하긴

'빵 나오셨습니다.'

'죄송하지만 자리가 없으십니다.'

하는 사물에 대한 존대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얼마 전 차르의 입원 때도 주치의 선생님은 더 상심이 크셨다.

발병 전날 치아 검사를 했는데 진정제를 먹였음에도 예민한 차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건 아닌가 염려하셨다.

검사 수치상 다 정상인데 식음을 전폐하는 것이 치아 검사 때 받은 스트레스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우려하셨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차르가 쉽게 차도를 보이지 않아 병세 문의로 전화를 할 때마다 선생님 잘못인 양 미안해하셨다.


과거 복막염 치료를 받을 때도 아들보다는 나의 표정이 더 변화무쌍했는지 나의 반응에 굉장히 신경을 쓰셨다.

흉수가 가득 차 천자를 해야 된다고 하실 때는 내 표정이 안 좋았는지 계속 나를 의식하시며,

'어머니가 너무 걱정하셔서...'

하며 진료과정과 계획을 무척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그때는 단지 차르가 잘못될까 걱정스러운 마음뿐이었는데 말이다.


수의사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자신의 반려동물에 대해 지나친 대우를 원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높은 진료비로 인해 과잉진료에 대한 항의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차르가 탈없이 자라주질 못해 어릴 때부터 동물병원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청구서를 보고 속으로 '헉' 소리가 날 때가 많다.

실제로 수납 중에 큰소리를 내며 항의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차르 주치의 선생님은 중복되는 검사 비용은 면제해 주고 간단한 소독약 같은 것은 무료로 주기도 하지만 동물병원 진료비가 높은 것은 사실이라 간혹 동물의 생명을 살리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 돈만 밝힌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수의사들도 종종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도 수의대는 들어가기 어려운 데다 비싼 학비로 인해 수입에 비해 많은 빚을 진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학자금 대출 등 많은 부채로 인해 수의사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매몰 비용이 너무 커서 새로운 직업으로의 전환도 쉽지 않다고 한다.


특히,

잦은 안락사에 대한 노출과, 안락사 후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 동물을 진료해야 하는 것은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져온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치료 가능하지만 보호자가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우도 수의사로서의 스트레스는 증폭될 것이다.

최근에 차르 정기 검진 시에도 복막염 재발에 대해 여쭈어 보니, 선생님이 치료했던 고양이가 복막염이 재발했는데 집에서 치료를 반대해서 몰래 치료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치료약이 워낙 고가라 몰래 치료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치료 예후도 좋지 않다고 어둡게 말씀하셨다.



강도 높은 업무도 무시 못한다고 하는데, 미국의 한 여 수의사는 말한다.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일할 때도 있습니다. 한 명의 의사가 10시간 교대 근무로 20건 이상의 동물 치료를 맡아야 하는 날도 있으니 업무량이 천문학적인 수준이죠.'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차르가 다니는 병원도 24시간 진료하는데, 밤 9시에 진료를 하신 분이 다음날 저녁 7시에도 진료를 보고 계셨다.



이러한 모든 요인이 수의사들의 자살률을 일반인보다 남성 수의사는 2배, 여성 수의사는 4배나 더 높게 만든다고 한다.

동물을 안락사 시킨 그 약물로 자살의 유혹을 받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도 수의사 약 70%가 동료를 자살로 잃고, 약 60%가 불안, 우울증, 업무 스트레스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느 직업이든 고충과 애로사항은 있겠지만 우리나라 총 가구 중 약 1/4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니 어쩌면 극한 직업 중에 하나인 수의사를 보는 우리의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할퀴고 물려도 나는 수의사니까' -오늘도 동물병원은 전쟁터-<박근필>

에서도 임상수의사의 고충과 높은 자살률을 다뤘고, 책 제목처럼 내가 접한 수의사들 손 등에 할퀸 자국이 없는 의사가 없었다.



펫밀리(pet family)가 대세인 요즘,

한 설문 조사에서 반려동물 양육자 83%가 고가의 동물병원 진료비로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으니

'반려동물보험제도' 개선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서 펫보험도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낳아 지갑으로 기른다'는 말 대신 '마음으로 낳아 가슴으로 잘 기른다'는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반려동물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더 오래 잘 키우기 위해서는

수의사와 반려동물, 그리고 보호자가 서로 신뢰와 믿음, 이해와 사랑으로 한 마음, 한 팀이 되는 것이 것이 가장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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