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야 우리 서로 행복하자!
며칠 전 남편과 아들과 콘클라베 영화를 봤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영화를 보는 사람이 우리 셋을 포함해 10명쯤 되었다.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모처럼 몰입해서 본 영화였다.
양성을 가진 교황 선출이라는 결말에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지만, 포용과 변화라는 의미에서 인상적이었다.
기억에 남는 대사도 있었다.
'확신이 가장 위험하다.
확신이 의심을 멀리하게 하며
통합과 포용의 가장 강력한 적이다.'
나오면서 남편이 제의했다.
"생맥 한 잔 하고 갈까?"
우리 가족은 영화를 보고 나면 세 가지 반응이 나온다.
보통 저녁이나 밤에 보러 가는데 아무 말 안 하고 집으로 향하면 별로인 영화다.
그냥 '재밌었어' 하면 재미있게 보고 끝낼 영화,
오늘처럼 생맥주 한 잔 하자거나 이것저것 뒷 이야기가 많으면 여운이 남는 영화이다.
"근데 차르 때문에..."
과거 같으면 이유 불문하고 ok 하고 근처 호프 집을 찾았을 텐데 나의 이 한 마디에 남편도 아들도 '그렇지' 하고 집으로 향했다.
대신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안주를 사들고.
그렇다고 차르가 그 몇 시간을 혼자 못 있을 만큼 분리불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너 따로 나 따로 있지만 할머니도 계신다.
그냥 이 밤에 섬집아기처럼 혼자 기다리고 있을 모습을 지레 상상하고 우리 셋 다 서둘러 집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 통일됐을 뿐이다.
서둘러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차르는 벌써 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냐옹거리며 난리다.
우리 귀에는 '왜 이제 왔어?' 하고 나무라는 소리로 들린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어떻게 엘리베이터 소리를 들었는지 진작에 캣폴에서 뛰어내려와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우리 가족은 차르가 온 후로는 많은 것을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입양계획을 세우고, 미리 준비하고 입양한 것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우왕좌왕하고 갈등도 많았다.
고양이를 키울 때 일반적으로 알려진 단점을 몸소 겪었다.
얇아지는 지갑, 할애해야 할 많은 시간, 고양이 알레르기가 심한 아들의 고생, 부족한 새벽잠 등...
일박 여행도 고려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사한 지 6개월이 되도록 작은 아들 원룸에도 가보지도 못하고 있다.
반나절쯤 당연히 혼자 있을 줄 알지만 서로의 시간 조율을 핑계로 방문 날짜를 선뜻 결정 못 내리고 있다.
아들 또한 차르 혼자 두고 무리해서 오지 말라고 하며 대신 지가 자주 온다.
고양이만 그럴까?
성당의 한 분은 강아지 산책을 하루에 5번 시킨다.
집에서는 절대 대소변을 보지 않는 녀석이라 폭설이 내린 엄동설한에도 예외일 수 없다.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혹한 때는 강아지나 주인이나 중무장을 하는데만 긴 시간이 걸리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미사 후 조금 지체할 일이 있어도 대신 산책 시켜 줄 사람이 없는 날은 만 일을 제치고 부지런히 귀가한다.
누가 들어도 너무 힘들 것 같지만 당사자는 그런 얼굴이 아니다.
강아지와 규칙적인 산책으로 건강도 좋아졌고, 무엇보다 강아지 덕분에 우울했던 기분이 회복됐다고 고마워한다.
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감정의 교류가 아닌가 한다.
동물들로부터 받는 위로와 기쁨,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에 대한 뿌듯한 책임감, 그들의 행복한 모습, 그리고 그 행복은 말을 못 하기 때문에 더 순수하고 정직하고 아름다운 것이리라. 사랑스러운 동물의 모습을 보며 일상의 사소한 문제를 잊을 수 있고, 움직임이 적은 생활 습관이나 스트레스 예방, 가족들의 화합에도 일조한다.
-아들딸 줄 바엔 차라리 반려동물에게 유산을 남기는 주인
-애 안 낳는 중국 반려동물이 영유아 수 넘을 것
-개파와 고양이파 주인의 성격 연구
-반려동물 사후(死後) 냉장고를 판매하는 일본
-반려동물과 소통하는 목걸이
-반려동물 생각 읽기, 감정 읽기... AI 훈련
-반려동물 기르는 것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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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보호자 중 95% 이상이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한다고 하니
이러한 재미있는 통계와 연구도 있나 보다.
우리 차르의 가장 큰 매력은, 귀염귀염한 것 빼고 (고양이가 다 그렇겠지만) 감정에 너무 솔직하다는 점?(부럽다)
절대 집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법이 없지만, 행복한 감정을 표현해 주면 감격할 지경이다.
고양이 박치기를 당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내 아들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경제적, 정신적, 물리적 희생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고 일생을 책임져 줄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묵직한 고민도 해본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는, 우리 가족은 즐겁고 행복한가?
대답이 선뜻 'Yes'이고 절대 의무감 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기꺼이 차르를 품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