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황제 냥이실록 에필로그

황제 냥이실록 탄생 이야기

by 모니카
감사합니다





2022년 9월 4일 일요일 저녁

연일 태풍 힌남노가 북상한다고 요란했던 날,

차르가 왔습니다.

꾀죄죄한 아기 고양이가 우리 집 재활용 박스 안에 앉아 있었죠.

2개월짜리 아기 고양이가 아파트 13층까지 올라올 수는 없을 테고, 저희 시어머니 말씀대로라면 무슨 중한 병이 있어서 누가 살짝 놓고 간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환영받지 못 한 채 우리 집 식구가 된 차르는 차츰, 시나브로 정이 들어갈 때쯤 진짜 중병을 앓게 됩니다.


일명 고양이 천적이라고 하는,

치사율이 99.9%라는 고양이 복막염!


아직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제도 없어서

2018년 이전 까지는 걸리면 거의 다 사망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2019년에 GS-442524라는 신약이 개발되어 복막염에 걸린 많은 고양이들 생명을 구해왔습니다.

우리 차르도 그 신약 덕분에 살 수 있었답니다.


미국에서 개발된 이 신약은 아직 연구 단계라 상용화되고 있지 않지만, 중국을 통한 복제 신약으로 많은 치료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약값도 많이 저렴해졌다고 합니다.


FDA의 승인을 아직 받지 못해 우리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고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서만 구매 가능하기 때문에 동물병원에서도 귀띔만 해줄 뿐 취급하지 않습니다.




고양이 복막염은 고양이 상당수가 보균하고 있다는

코로나 바이러스(사람 코로나와는 다른)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병된다고 추정됩니다.

하지만 간접적인 추정일 뿐 정확한 발병요인이나 유전적 요인은 알려져 있지 않고 예방법도 완전하지 않다고 합니다.


치료 없이 방치할 경우 길어도 한 달이면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이라, 살리고 싶다면 무조건 빨리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네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던 차르가 5개월쯤에 자주 설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발정기도 오기 시작하는지 밤마다 닫힌 거실 창문과 주방 문을 붙들고 이상한 소리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죠.

한 달 전부터 설사 치료를 해 주던 병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하면서 설사 치료도 집중적으로 해보자고 하더군요.



어떻게 해서든 설사를 낫게 하고 싶어서 두 말 없이 받아들였죠.


중성화 수술과 치료 후 얼마 간 좋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행동과 섭생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복막염을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는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어난다고 하는데 아마 그 수술과 치료가 차르한테 큰 스트레스가 아니었나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체육특기생이었던, 5개월밖에 안 된 차르가 구석으로만 들어가고, 잘 먹지 않고, 설사를 자꾸 해서 고양이 특성상 고통을 숨기려 한다지만 금방 변화를 알아챌 수 있었어요.

다시 설사 치료를 받으며 어서 낫기만을 고대하고 있는데, 어느 날 저를 쳐다보며 '어떻게 좀 해 줘요. 너무 아파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치료 중 설 연휴를 맞게 되었죠.

설 연휴 동안에도 계속 힘들어하는 차르를 더 지켜볼 수 없어서 연휴 마지막 날, 급히 찾아 간 24시 동물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추가로 더 받고 차르는 복막염 의심 진단을 받았습니다.

며칠 전 X-ray에서 없던 흉수가 이미 꽉 차 있었어요. 복막염 진단이 쉽진 않다지만 여러 가지 증상이 복막염 의심을 말해 주고 있었죠.

천자한 흉수 검사를 통해 더욱 확실해졌죠.


우리 온 가족은 폭풍검색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환묘 카페를 통해 유일한 치료제 신약을 알게 되었고, 구입 방법과 투약방법 등을 집중 공부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신약을 투여해야 생존율을 높일 수가 있다고 하지만, 그때가 마침 설 연휴이고 구한다 해도 배송기간이 있어서 애가 탔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중고나라에 한 번 알아보라고 팁을 주셔서 어렵게 한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전의 한 분이 고양이 복막염을 치료하고 남은 약을 올려놓으신 거였어요.

즉시 대전으로 가서 신약을 구해 와 그날 밤 11시에 첫 주사를 맞혔습니다.

그날 눈보라가 엄청 휘날리고 몹시 추워서 몸과 마음이 꽁꽁 얼고 어두웠던 기억이 납니다.


신악은 정말 신약이었습니다. 다 죽어가던 차르가 다음날 보니 눈이 또랑또랑해지고 야옹거렸으니까요.



치료는 총 12주, 84일 동안 해야 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주사 치료 밖에 없었는데 그즈음에 다행히 경구약도 나와서 차르는 21일 동안 주사를 맞고, 나머지 63일은 캡슐약을 먹였습니다.

여러 부위를 돌아가면서 맞는다고 해도 84일 동안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니 서로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드디어 2023년 4월 17일 마지막 약을 먹이고, 1년 뒤 2024년 9월 건강검진에서 완치판정을 받았습니다.


차르 애착 인형 꼬부기



오늘이 황제 냥이실록 30화로 끝을 맺는 날인데 복막염 얘기로만 가득 찼네요.

그만큼 저희 가족한테는 큰 사건이었고 온 가족이 한마음 한 뜻으로 한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했던 경험이라 소중해서 그랬나 봅니다.


정작 쓰려고 한 말은 '어떻게 황제 냥이실록을 쓰게 되었나' 였는데 말입니다.


우리 차르가 복막염이 발병한 때는 겨우 5개월 때였습니다.


한 살도 안 된 아기 고양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애타는 심정이었는데 고맙게도 살아나 주었죠.

큰일이 없다면 제 명대로 살아도 우리 가족보다는 먼저 하늘나라로 가게 될 차르의 생을 기록해 두고 싶었어요.

우리 가족과 차르가 살다 간 이야기를요.


이제 황제 냥이실록은 막을 내리지만 차르와 우리 가족의 사랑 나누기와 아웅다웅은 계속될 겁니다.


참, 근데 왜 황제 냥이냐고요?

차르는 러시아 황제 칭호인데 우리 가족 고양이 이름 짓기 경쟁에서 이겼답니다.



그동안 읽어주시고 라이킷 눌러 주시고 댓글 남겨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작은 형아와 아기 차르


keyword
이전 29화행복한 공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