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넋을 만나다.
어른들이 그러셨다.
'산 사람은 다 산다. 죽은 사람이 불쌍하지.'
아무리 가슴 아픈 일도 세월이 가면 잊힌다는 진리를 나도 믿었다.
그러니 이 충격도 언젠가는 잔잔한 가슴으로 마주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세월을 채우는 하루하루는 너무 가혹했다
국방색 군복을 입고 대문을 들어서던 아버지가 토요일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엄마와 우리 오 남매 시선 끝에 늘 계시던 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달력의 숫자들이 하나 둘 셋넷... 열스물... 자꾸 지나가도 아버지가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남은 식구들은 서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자식들은 자식대로 참고 있는 슬픔과 충격을 건드릴 수가 없었다.
아직은 무엇 하나 정리를 못 하고 있을 때 광주에서 손님들이 오셨다.
광주 시내를 큰 이모가 걷고 있었다.
한 사내가 다가왔다.
'집안에 무슨 큰일이 있었소? 얼굴이 겁나 그늘졌소.
이승을 떠도는 혼백이 있는 갑소. 그 혼이 아직 이승을 못 떠나는가 보오. 답답하다고 하오. 편한 옷을 입혀 드려야 하오.
혼이 길을 못 찾고 있응께 그 혼을 이승으로 불러들여 마지막 인사도 하고, 남은 사람 마음도 정리하도록 하소.'
이 말을 전하며 큰 이모는 초혼제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위하는 일이라면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아직 온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라 큰 이모가 앞장서서 일을 진척시켰다.
그때
아버지의 위패는 합동 영결식 날을 기다리며 국립묘지 영현 봉안실에 모셔 있었지만, 돌아가신 후 모든 절차 때는 당연히 군복을 입고 계셨을 거다,
외할머니, 큰 이모와 함께 오신 손님들은 초혼제를 진행할 무녀와 북을 치는 어른 한 분이었다.
초혼제 밤,
초겨울 밤은 몹시 추웠다.
산 사람도 하늘도 별도, 바람도 얼었다.
흐릿한 전구가 어둠을 밝히는 마당에 북소리가 조용히 둥둥 울리자 소복 차림의 무녀가 아버지의 혼을 불렀다.
북소리가 점점 고조되어 온 마당과 차가운 밤하늘에 가득 찼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무녀가 갑자기 아버지의 말투와 몸짓을 하는 것이었다. 음성은 다르지만 살아생전 아버지의 습관과 말과 행동이 그대로 재현되고 급기야 아내와 다섯 자식을 두고 가게 되어 발걸음이 뗄 수 없다고 흐느꼈다.
우리 가족은 마치 아버지가 나타난 것 같아 목놓아 울었다.
엄마를 껴안고 울며 위로와 당부를, 다섯 자식 하나하나 쓰다듬고 어두 만지며 용기와 당부를 했다.
이제 아홉 살 된 막내를 붙잡고는 한참을 서럽게 울어서 마당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동안 참고 쌓아두었던 울음을 쏟아냈다.
무녀는 꽁꽁 묶인 긴 무명을 엄마와 우리 오 남매 목에 두르고 종이로 만든 총채로 가볍게 쳤다.
신기하게도 단단히 묶인 매듭이 술술 풀어졌다.
맺힌 한을 푸는 예식이라고 했다.
이윽고 아버지가 된 무녀는 작별을 고했다.
떠나기를 힘들어하며 자꾸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둥둥 낮고 느린 북소리와 조용한 흐느낌이 마당 안에 깔렸다.
'이제는 미련을 놓고 저승으로 가시게. 자손들도 다 잘 될 것일세....
마음 놓고 이 옷으로 갈아입고 편히 가시게.'
무녀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낮은 북소리도 잦아들었다.
외할머니가 타오르는 불 속에 흰 한복과 흰 고무신을 태우시며 우셨다.
'식구들 걱정 말고 잘 가게 강서방..'
어둠을 환히 밝히며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조용히 잦아들고 흰 연기가 먼 밤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밤,
이승과 저승 사이에 놓인 다리가 잠시 열린 것일까?
갑작스러운 죽음의 단절로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우리 가족은
비로소 아버지를 보내드릴 마음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잠드신 아버지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나와 동생들은 아버지 입관시 참여를 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영원히 그 밤 대성리 역에서 손을 흔드시던 모습으로 살아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