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니카 Sep 19. 2024

황제 알현 -2

입양 희망자

도도하고 시건방진 고양이를 나는 왜 더 사랑 못해 안달일까?







그날 밤

심상치 않은 방법으로 생긴 고양이를 떠안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시어머니는 앓아누우셨다.

어쩌다 빼꼼 열린 문으로 고양이가 머리를 디밀면 과격하게 쫓아버리셨다.

나머지 세 식구는 오랜만에 거실에 다 모여 하늘에서 뚝 떨어진 꼬물이를 관찰하고 있었다.

고양이라는 게 이런 동물인가?

원래 고양이는 경계심이 많고 곁을 내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은 마치 예전부터 여기가 제 집인 것처럼 집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우리 곁으로 왔다.

그러더니 아들과 나의 무릎에 파고들어 꼬물꼬물거리다 누워있는 남편의 넓적한 배 위로 올라가 쌕쌕 잠이 들었다.


아까 집안에 들여다 놓자마자 안절부절못하더니 베란다 구석으로 가서 쉬아를 했는데 아들이 화장실을 찾는 거라고 했다.

키워본 적이 있는 강아지도 아니고, 앞으로도 키울 계획이 전혀 없었던 고양이에게 당장 필요한 게 뭘까? 급히 검색을 해서 근처 다이소에 가서 화장실에 버릴 수 있다는 두부모래와 캔사료를 사 왔다.

좀 깊숙한 그릇에 모래를 깔아주니 얼른 들어가 팍팍 헤치며 볼 일을 보고 야무지게 뒤처리를 했다. 주변을 온통 모래천지를 만들어 놓고.


캔사료도  먹고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잠도 잘 잔다.



다음 날 월요일 

아들은 일찌감치 동물병원 갈 채비를 했다.

나중에 누구에게 주더라도 병이 있는 고양이를 줄 수는 없기에.

상자에 넣어서 데려가려고 했더니 하도 발버둥 치며 할퀴고 물며 소동을 부려서 스키장갑을 끼고 담요로 감싸서 데려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차소리에 놀라 품에서 뛰쳐나가면 어쩌나 걱정도 지만

'그래, 좋아하는 네가 책임져~

하며 아들 혼자 보냈다.


아들이 병원으로 간 사이, 나는 누가 고양이를 놓고 갔는데 해결방법을 알려 달라고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었다.

동물병원에서는 자기네는 유기묘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아프면 데려 오라고 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고양이를 찾는다는 주민도 없었고, 그런 걸로 방송을 하면 항의가 들어온다고 곤란해 했다.

마지막으로 시청에 전화해서 여러 사람을 거친 후에 마침내 해결책을 알아냈다.

해결책은 '보호소'였다

보호소에서는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아기 고양이를 바로 데려가서 입양공고에 올려준다고 했다.

간단하게 해결되니 기분이 좋긴 했는데 뭔가 찜찜했다.


"입양 공고기간 지나면 안락사 시키는 건가요?"

"입양이 안되아마 그럴 수 있습니다."

,,,,,,,,,,,,,,,,,,


아기고양이 '안락사'라니!

그건 아니었다.


"아,....... 그럼 저희 집에서 일단 임시 보호할게요,

데려가지는 마시고 입양 공고에만 올려주세요."

"그럼 고양이 사진을 찍어서 보내 주세요."

제일 예쁘게 나온 사진을 보냈다.

시어머니한테는 입양 공고에 렸으니 입양 희망자가 나타날 때까지만

임시보호 하는 거라고 설득했다.



약 2개월, 2.5kg, 수컷.


아기 고양이는 동물병원에서  여기저기 검진을 한 후 예방주사를 맞고

이동장에 넣어져서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은 없지만 눈과 발이 안 좋은지 약을 처방받아 왔다

어제정신이 없어서 지저분한 것도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눈곱도 끼어있고 발도 꼬질꼬질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을 아들이 담요로 보쌈한 사이

내가 서툴게 넣고 바르고 했다.

그리고 또 다이소로 가서 스크래처와 장난감을 사 왔다.



놀랍게도 그다음 날 바로 입양 희망자가 나타났다.

한 청년이 자기가 기르다 범백이라는 병으로 하늘나라로 간 아기 고양이와 너무 닮았다고

꼭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 행운이 너무 기뻤다.

왜냐하면 아기 고양이가 온 후로 원래 비염이 있는 아들이

재채기, 콧물, 눈물, 두통 때문에 못 견디게 힘들어 하며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것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은 고양이 알러지가 최고 6단계 중 5단계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보호소에 등록된 동물은 임시 보호자와 입양 희망자 쌍방이 보호소에 가서 서류 작성을 한 후에야 입양 절차가 완료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당장 줄 것처럼 빠른 시일 내에 서로 맞는 시간을 조율하자고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꾸 못 할 짓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식을 남에게 수양아들로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물병원에서 사 온 사료를 그 조그만 이빨로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고 나를 쳐다보며 스크래쳐를 박박 긁는 아기 고양이를 보니 심정이 복잡해졌다.


고시생이라 아직 수입이 없는 아들은 하필 고양이 알러지까지 있으니

자기 속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게 뻔했다.

그저 여자친구와 고양이 카페를 여러 번 갔어도 아무 증세가 없었다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기 고양이를 누가 데려가 주기만 한다면 만사가 해결될 것 같았는데

도리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녁에 의논을 했다.

-그래도 하필 우리 집에 온 건 인연이잖아.

-그 청년 고양이가 두 마리 더 있다던데 가면 텃세 부리는 거 아냐?

-그냥 쉽게 주지 말고 거기 환경이 어떤지  까다롭게 알아봐야 하는 거 아냐?

마치 보내지 않기 대책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그 입양 희망 청년에게 아기가 가면 살 공간을 보여줄 수 있냐고 하니 흔쾌히 사진을 보내줬다.

출 건 다 갖춰진 고양이들만의 방이 따로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우리 집보다는 아기 고양이한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나는 또 쪼잔하게 이미 건강검진도 다해서 돈이 20만 원도 넘게 들었다고 했다.

청년은 보호소를 통해 입양이 오고 갈 때 돈거래는 법에 걸린다고 하며 개인적으로 10만 원 정도는 드릴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좋아요'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의논 끝에 입양 희망자에게 연락했다.

-이번 추석 때 한 번 데리고 있어 보고 결정할게요.


그 해 추석은 중대한 결정을 해야만 하는 무거운 명절이었지만,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그 귀여운 생명체는 하루라도 더 인연을 맺으면 헤어지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추석이 지난 후에 남편과 나와 아들은 결정했다.


-저희가 키우기로 가족들이 합의했어요. 죄송합니다.


그 청년도 짐작은 했을 거다. 포기했는지 흔쾌히 말했다.

- 잘 생각하셨어요. 집안에 반대하시는 분이 계시다고 하셨는데 금방 변하실 겁니다.


무지개 다리를 건넌 아기 고양이가 생각난다고 했는데 안겨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다.









이전 01화 황제 알현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