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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10. 2024

차르 황제 호적에 오른 날

보호소와 길고양이

생각에 잠긴 차르 황제



화이트와 똘똘이


"요즘 화이트가 안 보이네요?"

오드아이 하양고양이가  달 가까이 보이지 않는다.

영역싸움에 밀려서 다른 곳으로 갔나 했는데, 이렇게 오래 안 오는 걸 보니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애교쟁이가 츄르를 들고 불러도 오지 않고 저만치서 혼자 물 먹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똘똘이도 안 오나 봐요?"

누가 봐도 길고양이는 아닌 것 같은 개냥이 치즈도 2주째 보지 못했다.


화이트와 똘똘이는 우리 교회에 오는 길고양이들이다.


화이트와 똘똘이 말고도 호랑이 무늬의 이쁜이, 또 밤에만 오는 냥이들도 있다.

사제님이(내가 다니는 성공회는 성직자를 사제님, 신부님이라고 부른다) 수시로 드나드는 길냥이들을 위해 교회 마당에 있는 나무 탁자 위에 항상 사료와 물, 간식을 준비해 놓으신다.

비나 이슬이 맞지 않게 작은 파라솔도 씌워 주셨다.

사료와 물이 있다는 소문이 났는지 많은 길고양이들이 찾아온다.


길냥이들의 간이식당



일요일에 교회에 가면 길냥이들이 먼저 다가와 맛있는 것 좀 달라는 눈으로 애처롭게 쳐다본다.

오드아이 화이트는 먹는 걸 정말 밝히는 아이였는데 계속 안 보이니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든다.

치즈 똘똘이는 오자마자 제 집처럼 성전을 돌아다니고, 사람을 보면 배를 내보이며 손길을 허락하는 영락없는 개냥이였다.

털도 깔끔해서 어쩌다 집을 나와서 못 찾아가는 것이던가, 이제 막 버려졌던가 둘 중 하나라고 다들 추측했다.

호랑이 무늬가 멋있는 이쁜이는 내가 첫눈에 반해서 우리 차르 친구 삼고 싶은 아이인데, 아직 매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아주 까칠한 아이라 만질 수 없는 게 아쉽지만.


교인들이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길고양이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풍경은

사제님이 영성체 시간에 반려동물 축복도 함께 해 주신 즈음부터인 것 같다.

'성직자는 모든 생명을 다 축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매주 함께한 동물들도 축복해 주신다.

주로 개들인데 예배 시간 내내 얌전히 있다가 주인과 나와서 축복받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나도 차르를 축복받게 해주고 싶지만 고양이는 데려온다는 게 불가능해 항상 아쉽다.


반려동물을 축복해 주는 것에 대해 물론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반려동물 축복은 점점 호응도가 높아지고, 지금은 많은 교단에서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문화라고 한다.



우리 교회도 처음에는 몇몇 어르신들이 우려하셨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주신다.

나도 처음부터 적극 찬성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바뀐 것을 보면 인간의 신념 중 일부는 고집에 불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추운 날, 사제님이 마련해 준 산실에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냥 '불쌍하다, 안 됐다'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아려올 정도니까 말이다.

늘 생각하지만,

내가 그 이름을 불러 내 마음속에 들어온 것은 그때부터 전혀 다른 의미로 존재하게 되는 것 같다.

아픔이 되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하고 기쁨이 되기도 하고 행복이 되기도 하고.




드디어 호적에 오른 차르 황제


차르가 한 식구가 되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동물보호소에서 연락이 왔다.

계속 기를 거라면 직접 와서 정식으로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 입양자가 나타날 때까지 '임시 보호' 하겠다고 한 것을 잊고 있었다.

보호소에서는 정말 기르고 있는지 인할 사진도 요구했다. 유기동물을 끝까지 책임져 준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안고 있는 사진을 보내고 싶은데 차르 황제께서 극도로 꺼려하셔서, 여러 번 시도 끝에 겨우 한 컷 성공했다.

드디어 차르가 서류까지 완벽하게 우리 호적에 오르는 날이다.


형에게 안겨 불편한 차르 황제




보호소에 다녀온 아들은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차르가 이제 완전한 우리 가족이 된 것은 기뻤지만,

그곳에는 가여운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보호소 사이트 입양 공고에 올라온 사진을 보며 나도 기분이 울적해졌다.

성한 아이들이 없었다.

눈도 못 뜬 꼬물이들이나 그보다는 좀 큰 아이들도 하나같이 심하게 다친 모습이었다.

그 아가들 사진 밑에는 대부분 '자연사'라고 적혀 있었다.

'입양'이라고 쓰인 아이는 우리 차르와 그나마 성한 몸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

단 두 마리뿐이었다.  

갓 태어난 고양이는 50% 이상이 생후 30일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었거나 버려졌을 새끼들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학대받았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더 미어졌다.


새끼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은 수명이 최대 3~4년이지만, 보통 1~2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이상 기온으로 이렇게 숨 막히는 더위와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란 보살핌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 같다.

특히 도시는 밥도 그렇지만 신선한 물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한 안전하지 못한 곳에서의 임신과 출산, 영역 싸움, 사람의 학대나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 2017~2020년까지 로드킬로 사망한 길고양이는 11만 3,641마리 정도나 된다고 한다.


먹이와 밥만 주면 잘 자라는 줄 알았는데 고양이는 생각보다 신체도 참 취약한 것 같다.

구내염이나 허피스 같은 질환으로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우리 차르의 경우처럼 치사율 99%라는 복막염이라도 걸리면 치료  받을 확률이 희박한 길고양이들은 그냥 죽을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그동안 주변에서 본 길고양이들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몸부림칠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길고양이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조해서 입양하는 것이라고 한다.

집고양이 수명이 평균 15년이라고 하니

구조하여 같이 살지 못한다면, 잘 살 수 있도록 돌봐주며 더불어 사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싶다. 


우리 교회에 오는 길냥이 중 당근이는 너무 심하게 부상을 당한 채로 와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는데, 깨끗이 치료받고(사제님 사비로) 변호사님 댁으로 입양 가서 신수가 훤해졌다.

한쪽 눈이 심각한 상태로 구조되어 온 치즈 아깽이도 착한 누나한테 입양 가서 설탕이란 이름도 얻고 눈 수술도 받았다.


우리 차르 황제는 병원에 갈 때마다 주치의 선생님한테

'복도 많네'라는 말을 듣는다.


당근이나 설탕이, 우리 차르처럼 모든 길냥이들이 '복도 많네'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지난주 설교 말씀이 생각난다.

하느님이 모든 만물을 닷새 동안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모든 만물이 더불어 있어야만 되기 때문이라는.


지금도 천방지축 뛰노는 우리 차르를 보며, 우리 집에 살게 된 것이 차르의 뜻인 줄은 알 수 없으나,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으니 최선을 다해 그의 생을 책임져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위험에 처했거나 아플 때 우리 가족이 두 팔을 걷고 나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듯이,

우리 차르 황제도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든든한 보호막, 방패자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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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R(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이

Trap(잡아서)  Neuter(중성화 수술)한 뒤, Return(원래 살던 제자리 방사)의 줄임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중성화 수술만으로도 고환암과 자궁축농증 등 고양이 생식기 질환의 발병률을

10배 이상 감소시켜준다고 한다.


지자체에서 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수술울 시행하고 있다는데

만약 길에서 귀가 잘린 고양이를 본다면,

그 고양이는 중성화수술울 마친 고양이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과 편리를 위해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는 행위는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동물들이 본능대로 자연스럽게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면 보호하며 안전하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중요하겠다.



보호소에서 알려준 대로 신청을 해서

몇 달 후 우리는 '유기동물 입양 지원비'로 시청으로부터 25만 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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