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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17. 2024

차르의 사랑법


그거 엄마껀데






차갑고 시원할수록 좋은 계절이 가고,

기를 쓰고 피하고 가리고 했던 햇살을 찾아가는 계절이 왔다.


차르가 아침 햇살이 담뿍 쏟아지는 창가에 자리 잡는 계절이다.

쳐다보지도 않던 포근한 숨숨집을 찾아가는 계절이다.


낮은 아직 반 팔도 봐주는 햇살이지만, 선풍기를 조용히 밀어내는 선선한 공기다.

시어머니는 해가 지기가 무섭게 베란다 문을 닫고, 빨래를 걷고, 거실 문까지 꽁꽁 닫으신다.

이 계절에 차르는 베란다에 나가 창 밖 내다보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나는 닫힌 문을 열심히 연다.


철을 따라 좋아하는 장소는 변하지만

높은 캣폴 투명 해먹은 차르가 사시사철 애용하는 장소다.

 좁은 곳에 몸을 구겨 넣고 어떻게 그렇게 오래 잠을 잘 수 있는지 볼 때마다 신기하다.

아깽이 때는 폭 잠기더니 이제는 네 다리를 밖으로 걸치고 잔다.



오늘도

현관문을 열자마자 차르를 부르니

투명 해먹에서 잠에서 막 깼는지 꼼짝도 않고  빤히 쳐다본다.


'변덕은~

어제는 냐아옹~ 하며 '쿵'소리가 나게 뛰어내려왔잖아!'

살짝 섭섭해서 가방을 내려놓고 다가가 볼을 쓰다듬으려 하자 물려고 한다.


칫!


나도 토라진 얼굴로 바로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콩 닫는다.

후다닥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방문 앞으로 달려와 냐아아아옹~ 크게 운다.

그래도 문을 안 열어 주면 오자마자 열어놓은 거실문으로 뛰어나가 뒷 창문으로 달려간다.

귀엽고 우습고 심술이 나 계속 문을 안 열어주면 방문과 창문을 왔다 갔다 하며 문을 박박 굵고 더 길게 냐아아아아옹~ 애처롭게 운다.

밀당이고 뭐고 내가 못 참고 문을 열면

얼굴을 비벼대며 다리 사이로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해서 걸음을 걸을 수가 없다.


"알았어~엄마 손 좀 씻고."


차르는 화장실까지 쫓아와 변기 뚜껑 위에 앉아 손 씻는 나를 쳐다보며 나 좀 보라는 듯 앞발로 건드린다.

화장실 문이라도 닫으면 그때는 서러운 울음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먼 옛날

화장실 들어간 엄마를 부르며 화장실 문을 붙들고 울던 아들 생각이 나서 웃지 을 수가 없다.




전엔 퇴근하고 들어오면 집이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어떨 땐 시어머니가 컴컴한 집에서 당신 방만 불을 켜고 TV를 보고 계셨다.

원래 표현이 적으셔서 반갑게 맞아주는 건 기대도 지만

"왔니?"

이 한마디도 없으시다.

어두운 거실에 불을 켜고 나도 아무런 말 없이, 감정 없이 씻고 저녁을 차려 먹었다.

남편도 긴 말이 없는 사람이다.

그나마 아들이 와야 사람 말소리가 났다.

그렇다고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묘하게 의사소통에 서 웃을 일, 걱정할 일, 화낼 일이 다 전달됐다.

불금엔 눈빛으로 치킨이 통일되고 TV앞에 오손도손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원래 말이 귀한 성인 4명이 조용조용 살았다.

(독립한 작은 아들은 그중 가장 입이 무거운 터라 있어도 달라질 게 없다)


이렇게 말없는 사람들이 심심하게 사는 걸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짐작하듯이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고양이 한 마리가 가족으로 합류하는 바람에.


지금은

우리 가족 모두 현관문을 열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있다.


"짜루(애칭)는?" 

 "짜루 어딨니?"

"이 녀석 어딨는거야?"

"짜루야~"


할머니랑 단둘이 있는 낮 동안에는 종일 잠만 잔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 아빠 형아가 차례로 돌아오면 야옹 대고 비비고, 박고, 물고, 어리광이 끝이 없다.

그러면 다들 밥 먹는 것도 미루고 쓰다듬고, 안아주고, 뽀뽀하고, 낚싯대를 흔들어 댄다.


"짜루, 뭐 하고 지냈어?"

"하루종일 심심했어요"?

"밥 먹었어?"

 "똥은 눴나?"

"짜루, 할머니랑 잘 놀았나~"


대답도 없는 짜루한테 없이 질문을 퍼붓는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차르도 온몸으로 답한다.


그런데

차르의 사랑에는 등급이 있으니 영악한 것이 사람마다 차별을 한다.


누가 뭐래도 1등급은 유감스럽게도 내가 아니라 형아다.


들리지도 않는 엘리베이터 멈춤 소리는 어떻게 들었는지 귀를 쫑긋 세우다 삑삑삑 번호키 소리가 나면 쿵 소리가 나도록 후다닥 캣폴에서 뛰어 내려와 현관문 앞에서 격하게 냐~옹댄다.

누가 봐도 기다림에 지친 반가움과 원망의 모습이다.

형과의 상봉이란 둘 다 너무 애틋해서 끼어들 틈이 없다.


살짝 아쉽긴 해도 내가 2등급이다.


내가 오면 그래도 캣폴에서 뛰어 내려와 현관문 앞에서 대기하기는 하나 반가움의 냐~옹은 거를 때가 많다.

때론 캣폴에서 내려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머리 박고 비비고는 진심으로 해준다.

먹여주고 치워주는 건 난데 변함이 없다.


3등급은 아빠다.


들어오는 순서가 바뀐 날도 번호키 누르는 소리는 기가 막히게 구별한다.

아빠가 들어오면 캣폴에서 얼굴만 들고

"왔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빠가 다가와 코인사를 시도하면 마지못해 받아준다는 얼굴로 억지로 해준다.


슬프게도 가장 마지막 등급은 할머니다.


할머니는 삑삑삑 누르는 속도로도 구분할 수 있지만, 어느 때 어느 순간에도 할머니가 들어오고 있다는 걸 귀신 같이 안다.

"짜루야~"

하고 사랑을 담아 불러줘도 캣폴에 머리를 박고 누워서 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특별 등급이 있다.


작은 형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보지만 한식구라는 걸 아는 것 같다.

차르는 엄청 쫄보라 누가 오면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가지만

작은 형이 들어 올 때면

"형 왔어?"

하고 오랜만에 는 식구 반기익숙하게 쳐다본다.


복막염 걸렸을때 가장 먼저 치료비로 큰 돈을 보내준 걸 아나보다,


차르의 이런 차별 사랑법에

할머니는 심히 섭섭하시겠지만 인정하신다.

엄마나 아빠도 할 말은 없다


고양이의 장기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특히 안 좋고 아프고 불안했던 부정적인 기억은 평생 기억한다고 한다.


차르가 초라한 길냥이로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를 생각해 보면 불평할 자격이 없다.


'얘를 선택하든 나를 선택하든 둘 중 하나를 택하라'앓아누웠던 할머니,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곳에 보내려고 애를 썼지만, 그래도 금방 마음을 바꾸어서 보호소에 보내지  않고 품어준 엄마,


동물은 동물다운 삶이 있다는 철학을 갖고 이러든 저러든 관심이 없었던 아빠,


그리고 처음부터 식구들 반대를 무릅쓰고 온몸으로 품어준 형아!


나라도 동등한 사랑을 주기 어려울 것 같다.


모두들 그걸 다 인정하기에 차르의 차별 있는 사랑표현에 불만을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차르야~

지금은 온 식구가 모두 형아 못지않게 널 사랑한단다!


할머니도 너를 조금이라도 더 만지고 싶어 니가 싫다고 냐~ 해도 궁디 팡팡 손길을 멈추지 못하시잖아.

.

.

.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적극 권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받아들였을 때는 이미 가족이 된 것이다.

가족은 좋고 싫고 나쁘고 이쁨이 없다.

내 자식이 아파도, 속 썩여도, 버릇없어도, 돈이 많이 들어도 기꺼이 감수하고 마음으로 품지 않는가.


더구나 그들이 주는 사랑의 에너지는 너무나도 크다.


우리 차르도 나의 큰아들과 작은아들에 이어 막내아들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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