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니카 Oct 31. 2024

차르랑 밀당하기

내가 졌다 차르야!

차르야! 발 하나가!



우리 차르는

두 살짜리가 뭐가 급하다고 벌써 스케일링도 하고, 맨 안 쪽 쌀알만 한 어금니도 뽑았다.

쌀이랑 대보면 더 작을 지도 모를 그 쪼끄만 어금니는 말해주지 않으면 평생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뿌리는 이미 없어지고 심하게 흔들려서 뽑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고양이 스케일링이라니!

2년 전의 내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납득 못할 일을 주저 없이 시행했다.

차르가 아프다니까!


차르는 왜 그렇게 구강상태가 불량할까?

우리 식구 누구도 없는 주치의 선생님 말에 의하면,

유전 일수도 있고 사료 탓일 수도 있는데, 차르는 아마 둘 다인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리 식구 아니랄까 봐 아빠와 형처럼 치아가 안 좋다.


고양이는 치아 구조상 충치는 절대 안 생기지만 치석은 아주 쉽게 생긴다고 한다.

차르의 밥은 주로 습식인데, 습식의 끈적함이 쉽게 치석을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린 처방은 철저한 관리뿐!

건사료만 먹일 것, 물 충분히 먹일 것, 양치 잘해줄 것!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2년 차 집사는 세 가지 다 자신이 없다.


건사료만 주기?

길냥이를 막 벗어났을 때는 아무거나 다 잘 먹었다.

그러나 큰 병 치료하면서 애지중지 기호성 좋은 습식만 먹였더니 인이 박혀 버렸다.

고집도 세서 싫은 건 절대 싫은 고집냥이다.


물 충분히 먹이기?

넓은 도자기 그릇 개에 찰랑이는 물, 항상 맑은 물 솟아나는 분수대가 늘 대기하고 있거늘,

지가 안 먹으면 할 수 없지 어떻게 억지로 먹일 수 있을까?


양치 잘해주기?

이건 정말 너무 어렵다.


에오~ 차르야~ 협조 좀 해 주렴!





스케일링하고 온 날,  

차르는 온 집안을 구석구석 순찰한 후 내놓은 건사료를 오도독오도독 맛나게 잘 먹었다.


'오! 생각보다 쉽겠군!'


다음날,

어김없이 새벽 5시에 밥 달라고 내 귀에 대고 아옹 아옹했다.


"차르야 밥 있는데.."


어젯밤에 북어 트릿 토핑한 건사료를 수북이 담아 놓았는데 그거 먹지 왜 안 먹고 깨우니 차르야!


밀당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못 들은 척했다.

한참을 아옹대더니 할 수 없는지 오도독오도독 씹는 소리가 났다.


'휴~ 사료 바꾸기는 성공할 수 있겠군.'


확인해 보니 1/3 정도 먹었다.


그날 온종일 내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밥 달라고 다리에 비비고 깨물고 아옹 아옹 난리도 아니.

북어트릿이 고명으로 얹힌 건사료는 코만 대보고 홱 돌아서면서....


"인이 배긴 걸 하루아침에 안 주면 되겠니? 양을 줄여서 줘 봐라~"


시어머니가 안쓰러워 못 보겠다고 나를 탓했다.


"어머니, 습식을 먹으면 잇몸 구멍에 다 쌓인다잖아요. 그럼 이 다 아야 된대요!"


그렇지 않아도 맘이 아파 죽겠는데 속상하게 불을 질러서 큰소리를 냈다.


찔끔찔끔 먹기는 하는데 허기만 때우는지 기운이 없고, 눈도 또렷하지 못하고, 장난감을 흔들어도 조금 뛰다 픽 쓰러져 누웠다.

온종일 건사료 몇 알만 먹은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모질게 마음먹었다.


'차르는 치아가 안 좋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바꿔야 돼!'


토요일을 온종일 같이 있으면서 신경을 썼더니 마음뿐 아니라 머리도 아팠다.

도서관에 간 아들도 차르 뭐 먹냐고 계속 묻는 것이 차르 걱정에 공부를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던 나는 이틀 만에 항복했다!


차르의 오줌똥 때문이었다.

오줌똥 양이 급격히 준 것이다.


차르의 1회 습식 레시피는 이러하다.

'국물 있는 습식(1/2) + 물 수북이 아이스크림 수저로 3개'

이렇게 밥을 물에 만 수준으로 아침에 2번, 저녁에 2번 먹는다.


그러니 예쁘게 생긴 맛동산도 하루에 두 번, 거의 돈가스 수준 감자도 하루에 서너 번은 캔다.


그런데 건사료 먹이기 밀당 후 이틀 동안 토끼 똥 만한 똥 한 개와 작은 감자 한 개만 구경했다.


음수량 감소, 스트레스 -> 소변량 감소 -> 신부전?


필요 이상으로 섭렵한 유튜브 상식이 모진 결심을 급전환하게 했다.

부전은 고양이 사망률 2위에 랭크된 무서운 질병이는데 덜컥 겁이 났다.


급기야

전발치냐 신부전이냐!


전발치한 고양이도 먹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하지만 신부전은 생명과 관련 있지 않은가!

그럼 답은 정해져 있는 거지!

내 맘대로 진단하고 병명을 정하고 처방을 내렸다.

아들도 한소리 덧붙였다.

20년도 채 못 사는데 좋아하는 것도 못 먹는건 너무 불쌍하다고.



며칠 후, 

주치의 선생님이 차르 어떠냐고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 밀당에 실패했어요~"

"............"

"습식 다시 먹여요"

"에고...."

어이없는지 선생님이 웃으신다.


"오줌을 너무 안 눠서 신부전 걸릴까 봐요."

"그것도 위험한 병이긴 하죠."

"대신 양치 잘 시킬게요."

"네~ 양치 잘해주고 6개월 후에 다시 내원해 주세요. 차르는 워낙 잇몸이 안 좋아 정기적인 확인이 필요해요."


차르야 내가 졌다.

네가 좋아하는 것 맘껏 먹으렴.

.

.

.

.

차르는 습식을 맘껏 먹고 다시 두 눈이 똘망똘망해졌고, 체육특기생이 되었고, 화장실을 열심히 들락거리며 윤기 나는 맛동산과 돈가스만 한 감자로 나를 기쁘게 해 준다.


나는 치석이 생길까 봐 고양이 양치용 엄지검지 손가락 장갑고 양치시킬 기회를 노린다.(칫솔질은 어려워 바르는 치약을 발라주려고)



자식이나 반려동물이나 사랑이 지나치면 이길 수 없고, 과보호는 나약함을 만든다는 걸 알기는 안다!

그런데 실천은 왜 그렇게 어려울까!



차르와 쥐돌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