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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31. 2024
차르랑 밀당하기
내가 졌다 차르야!
차르야! 발 하나가!
우리 차르는
두 살짜리가 뭐가 급하다고 벌써 스케일링도 하고, 맨 안 쪽
쌀알
만 한 어금니도 뽑았다.
쌀이
랑 대보면 더 작을 지도 모를 그 쪼끄만 어금니는 말해주지 않으면 평생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뿌리는 이미 없어지고 심하게 흔들려서 뽑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고양이 스케일링이라니!
2년 전의 내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납득 못할 일을 주저 없이 시행했다.
차르가 아프다니까!
차르는 왜 그렇게 구강상태가 불량할까?
우리 식구
누구
도 없는
주치의 선생님 말에 의하면,
유전 일수도 있고 사료 탓일 수도 있는데, 차르는 아마 둘 다인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리 식구 아니랄까 봐 아빠와 형처럼 치아가 안 좋다.
고양이는 치아 구조상
충치
는 절대 안 생기지만 치석은 아주 쉽게
생긴다고
한다.
차르의 밥은 주로 습식인데, 습식의
끈적함이
더
쉽게
치석을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린 처방은 철저한 관리뿐!
건사료만
먹일 것, 물 충분히 먹일 것, 양치 잘해줄 것!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2년 차 집사는 세 가지 다 자신이 없다.
건사료만
주기?
길냥이를 막 벗어났을 때는 아무거나 다 잘 먹었다.
그러나 큰 병 치료하면서 애지중지 기호성 좋은 습식만 먹였더니 인이 박혀 버렸다.
고집도 세서 싫은 건 절대 싫은 고집냥이다.
물 충분히 먹이기?
넓은
도자기
그릇
두
개에 찰랑이는 물, 항상 맑은 물 솟아나는
분수대가 늘 대기하고
있거늘
,
지가 안 먹으면
할 수 없
지 어떻게 억지로 먹일 수 있을까?
양치 잘해주기?
이건 정말 너무 어렵다.
에오
~ 차르야~ 협조 좀 해 주렴!
스케일링하고 온 날,
차르는 온 집안을 구석구석 순찰한 후 내놓은
건사료를
오도독오도독 맛나게 잘 먹었다.
'오! 생각보다 쉽겠군!'
다음날,
어김없이 새벽 5시에 밥 달라고 내 귀에 대고 아옹 아옹했다.
"차르야 밥 있는데.."
어젯밤
에 북어 트릿 토핑한 건사료를 수북이 담아 놓았는데 그거 먹지 왜 안 먹고 깨우니 차르야!
밀당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못 들은 척했다.
한참을 아옹대더니 할 수 없는지 오도독오도독 씹는 소리가 났다.
'휴~ 사료 바꾸기는 성공할 수 있겠군.'
확인해 보니 1/3 정도
먹었다.
그날 온종일 내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밥
달라고
다리에
비비고 깨물고 아옹 아옹
난리도
아니
다
.
북어트릿이
고명으로 얹힌 건사료는 코만 대보고 홱 돌아서면서....
"인이 배긴 걸 하루아침에 안 주면 되겠니? 양을 줄여서 줘 봐라~"
시어머니가 안쓰러워 못 보겠다고 나를 탓했다.
"어머니, 습식을 먹으면 잇몸 구멍에 다 쌓인다잖아요. 그럼 이 다
뽑
아야 된대요!"
그렇지 않아도 맘이 아파 죽겠는데 속상하게 불을 질러서 큰소리를 냈다.
찔끔찔끔 먹기는 하는데 허기만 때우는지 기운이 없고
,
눈도 또렷하지 못하고, 장난감을 흔들어도 조금 뛰다 픽 쓰러져 누웠다.
온종일 건사료 몇 알만 먹은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모질게 마음먹었다.
'차르는 치아가 안 좋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바꿔야 돼!'
토요일을 온종일 같이 있으면서 신경을 썼더니 마음뿐 아니라 머리도 아팠다.
도서관에 간 아들도 차르 뭐 먹냐고 계속 묻는 것이 차르 걱정에 공부를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던 나는 이틀 만에 항복했다!
차르의 오줌똥 때문이었다.
오줌똥 양이 급격히 준 것이다.
차르의
1회
습식 레시피는 이러하다.
'국물 있는 습식
(
1/2)
+ 물 수북이 아이스크림 수저로
3
개'
이렇게 밥을 물에 만 수준으로 아침에 2번, 저녁에 2번 먹는다.
그러니 예쁘게 생긴 맛동산도 하루에 두 번, 거의 돈가스 수준 감자도 하루에 서너 번은 캔다.
그런데 건사료 먹이기 밀당 후 이틀 동안 토끼 똥 만한 똥 한 개와 작은 감자 한 개만 구경했다.
음수량 감소, 스트레스 -> 소변량 감소 -> 신부전?
필요
이상으로
섭렵한
유튜브
상식이
내
모진
결심을
급전환하게 했다.
신
부전은 고양이 사망률 2위에 랭크된 무서운 질병이
라
는데
덜컥 겁이 났다.
급기야
전발
치냐 신부전이냐!
전발치한 고양이도 먹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하지만 신부전은 생명과 관련 있지 않은가!
그럼 답은 정해져 있는 거지!
내 맘대로 진단하고 병명을 정하고 처방을 내렸다.
아들도 한소리 덧붙였다.
20년도 채 못 사는데 좋아하는 것도 못 먹는건 너무 불쌍하다고.
며칠 후
,
주치의 선생님이 차르 어떠냐고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
,
밀당에 실패했어요~"
"............"
"습식 다시 먹여요"
"에고...."
어이없는지
선생님이 웃으신다.
"오줌을 너무 안 눠서 신부전 걸릴까 봐요."
"그것도 위험한 병이긴 하죠."
"대신 양치 잘 시킬게요."
"네~ 양치 잘해주고 6개월 후에 다시 내원해 주세요. 차르는 워낙 잇몸이 안 좋아 정기적인 확인이 필요해요."
차르야 내가 졌다.
네가 좋아하는 것 맘껏 먹으렴.
.
.
.
.
차르는 습식을
맘껏 먹고 다시 두 눈이
똘망똘망
해졌고, 체육특기생이 되었고, 화장실을 열심히 들락거리며 윤기 나는
맛동산과 돈가스만 한 감자로 나를 기쁘게 해 준다.
나는
치석이 생길까 봐
고양이 양치용
엄지검지 손가락
면
장갑
을
끼
고 양치시킬 기회를 노린다.(칫솔질은 어려워 바르는 치약을
발라
주려고)
자식이나 반려동물이나 사랑이 지나치면 이길 수 없고, 과보호는 나약함을 만든다는 걸 알기는 안다!
그런데 실천은 왜 그렇게 어려울까!
차르와 쥐돌이
keyword
치아건강
고양이
스케일링
Brunch Book
목요일
연재
연재
황제 냥이실록
06
차르의 사랑법
07
차르 똥
08
차르랑 밀당하기
09
차르는 뽀뽀냥
10
차르야 행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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