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니카 Nov 14. 2024

차르야 행복하니?

미냥이가 될뻔한 차르

궁금쟁이 차르



저녁 5시쯤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거의 모든 것은 가족 단톡방으로 소통하는데 무슨 급한 일일까?

전화를 받자마자 거의 울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엄마, 차르가 나갔어요!"

"엥?"


한참 바쁠 시간이지만 뛰어나갈 자세를 취했다.


"언제?"

"방금요~현관문 열자마자 나왔는데.... 놀랄까 봐 가만 지켜봤는데.... 그냥 계단으로 내려갔어요~"

"잡지 그랬어~"

"쫓아가면 놀래서 더 도망갈까 봐.....  계속 내려가고 있는데 안 보여요~"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지 숨이 가쁘다.



우리 집은 계단식 아파트 13층이다.

내 일터가 아파트 상가에 있고, 우리 집은 상가에서 가까우니까 내가 쏜살같이 달려가면 1층 입구에서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쳤다.



"알았어, 엄마 금방 갈게!"


급히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해괴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핸드폰 속에서 울렸다.


"엄마, 차르 찾았어요~"


서른 살 먹은 아들의 반 울음 섞인 소리와 뒤섞인 아~~~웅 아~~~~웅~~고양이 울음소리....

아! 그건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울부짖는 소리였다,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가 천신만고 끝에 만나서 두려움과 반가움에 터트리는 그런 울음소리!




그날 밤 자초지종을 들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온 차르는 슬금슬금 계단 쪽으로 갔다.

잡을 수 있으려니 하고 놀라지 않게 천천히 다가갔다.

갑자기 차르가 빠르게 내려갔다.

놀라서 쫓아가니 차르가 더 놀래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정신없이 따라갔지만 차르는 보이지 않고, 10층에서 한 아저씨가 무슨 일인가 문을 열고 나와 있었다.

고양이 봤냐 하니까 금방 내려갔다고 하더란다.

머리가 하해져 나한테 전화를 걸며 뛰어 내려갔다.



차르는 6층 우리 집 라인 현관문을 박박 긁으며 그렇게 울고 있더란다.

얼마나 놀라고 겁을 먹었는지 처음엔 형아도 못 알아보고 꼭 안고 오는 내내 통곡을 하더니, 열어 놓은 우리 집 안을 보고 쏜살같이 뛰어들어 가더란다.


'아이고, 차르야, 다시 길냥이 될래?'



요즘 차르는 형아와 엄마가 현관 번호키 누르는 소리를 들으면 문에 바싹 붙어 기다린다.

문을 열면 자세를 바짝 낮추고 슬금슬금 나온다.


미냥이가 될 뻔 한 이후 한동안 현관엔 얼씬도 안 하더니,  옛 공포를 잊고 또다시 밖을 엿본다.


차르는 그냥 밖이 궁금한 걸까?

아니면 저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걸까?



차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내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해독할 수 있다면, 나는 제일 먼저 묻고 싶다.


"차르야, 지금 행복하니?"



차르는 할머니와 둘이 있는 낮 동안은 거의 잠만 잔다고 한다.

성묘는 하루에 14시간 정도 자고, 고양이는 야행성이라 낮에 종일 자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주말에 식구들이 있을 때는 잠을 잘 안 잔다.

자다가도 금방 깨서 온갖 참견으로 아무 일도 못하게 하던가, 지가 좋아하는 어딘가에 앉아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밤에 잠을 안 자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잘 때는 조용하다.

혼자 공을 가지고 우다다 뛰는 소리가 간혹 들리기도 하지만, 새벽 5시 밥 먹을 시간까지는 깨우지 않는다.


가끔 생각한다.

차르는 이 좁은 공간에서 매일 똑같은 걸 먹고, 보고,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 무료한 건 아닐까?

캣폴에 앉아 하염없이 내다보고 있는데, 그냥 창밖을 구경만 하고 있는 걸까?




저 너른 세상에서 마음껏 뛰놀고, 사랑놀이도 해서 예쁜 새끼도 낳고, 사냥에 실패도 해 보고, 싸움도 하며 사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더 행복하지 않을까?


가끔 그런 걸 주제로 가족들과 이야기 나눈다.

남편도 현관문을 열면 차르부터 찾는 차르 바라기이지만 항상 '다움'을 강조한다.

사람은 사람 다움을, 동물은 동물 다움을!


사람의 관점에서 차르를 바라보지 말라고 한다.

내가 가끔 청양마요 돈가스나 바지락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차르도 별식을 먹고 싶을 거라고 생각 마라 한다.

가끔 바깥바람을 쐬는 것이 차르 정신건강에 좋을 건데 하고 아쉬워하지 말라고 한다.

아기 사랑하듯이 과잉 표현하지 말라고 한다.


성당의 길냥이 이쁜이가 너무 뚱뚱한데 병이 있는 건 아닐까, 날씨가 추워지는데 어디서 잘까 걱정하면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고 말한다.


어차피 사람보다 짧은 수명이니 죽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감정과 정이란 게 그렇게 선이 분명하고 냉정할 수 있는 거냐고 반박을 하며

부딪치지만 서로 암묵적 일치가 있다.


'차르야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 행복하게 살자!'



어릴 땐 안기는 걸 그렇게 싫어하더니 2년 넘게 같이 살다보니 사람이 다 됐다.

퇴근하고 안아주면 아기처럼 폭 안긴다.

사랑이란 걸 아는지 무한정 뽀뽀를 허락해 준다.

하루종일 심심했다 저녁에 식구들이 모이면 수다스럽고 바빠진다.

누가 무얼 하든 온갖 참견을 다한다.


이런 차르를 보며,

그날 차르를 다시 찾지 못해 길냥이가 됐다면

차르는 생존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 방귀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쫄보인 데다가 편직쟁이이고 치아도 부실한 현찮은 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너무 깊은 인연을 쌓아서 어쩌면 지가 반 사람인 줄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요 연재 중이신 '하숙집 고양이' 작가님의 글을 보고 안심했다.

고양이의 뇌에는 과거 현재 미래를 파악하는 신피질이 없어서

매일 같은 집에서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매일 같은 놀이를 해도 불행을 느끼지 못한다는.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는 오늘만 산다는.


아하~그렇구나 차르야~

어쩐지 매일 먹는 사료를 그렇게 욤욤 짭짭 맛있게 먹더라!

하루씩 바꿔서 흔드는 장난감을 처음 보는 것처럼 신나 하더라!

그래서 거실 한가운데서도 벌렁 누워서 형아가 눕짜루 특집을 만들게 하는 거구나!


눕짜루 특집




하지만 차르야!

절대 나가면 안 돼!

밖은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