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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Nov 21. 2024

차르와 할머니

차르야~ 이젠 할머니도 널 사랑한단다

네 맘을 알고 싶다 차르야~


일요일 오후 4시 30분,

시어머니가 교회에서 오신다.


삑  삑  삑... 번호키 누르는 속도만 들어도 누군지 금방 알 수 있다

삐리릭~가장 속도가 빠른 것은 작은 아들이고, 다섯 자리 하나씩 꾹꾹 누르는 소리는 어머니이다.

남편과 큰아들 나도 살짝씩 다르다.

우리도 그걸 구분할 수 있고 차르도 그런 것 같다.


누르는 소리를 듣고 내 옆에 누워 있던 차르는 벌써 할머니인 줄 알고 고개도 들지 않는다.  

달려가서 반겨주지는 못할 망정 쳐다보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2년 넘게 같이 살았어도 한결같다.

처음처럼 고양이를 질색을 하시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손자들 어릴 때 대하듯 예뻐하시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문이 열리고 어머니 모습이 나타나자 웬일로 차르가 벌떡 일어나 다가간다.

나도 놀랐지만 어머니는 더욱 놀라 반가움과 기쁨에 신발을 벗으시기도 전에 허리를 굽혀 손을 내미신다.


"어이구~차르가 마중 나왔네"


감정 표현이 소극적이신 분이셔서 손자들이 다 큰 후에는 하이 톤의 목소리를 좀처럼 듣기 힘든데 오늘은 저절로 그런 목소리가 나오신 것 같다.


그런데,

차르 이 녀석은 내민 할머니 손에 얼굴 한 번 비벼주면 좋으련만, 홱 피하고 들고 계신 비닐봉지에만 관심을 보인다. 하긴 누가 들어오더라도 손에 무언가 들고 있으면 그것에 초관심을 보이긴 한다.


온종일 할머니랑 둘이 있다가 식구들이 한 명씩 오기 시작하면 자다가도 뛰어나와 야옹야옹 수다스럽고 수선스럽게 왔다 갔다 하는데 손에 뭐라도 들고 있으면 더 바빠진다.

고개를 쳐들고 다리 사이를 요리조리 휘감고 돌아 걸음을 못 걷게 하고, 내려놓기가 무섭게 비닐봉지나 쇼핑백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검사하듯 냄새를 맡고, 마지막에는 봉지나 쇼핑백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오늘도 할머니가 들고 오신 비닐봉지에 호기심이 생겨 달려가긴 했는데, 딱 거기까지이다.


"차르야 이리 와봐"

다정하게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한다.

방으로 향하는 할머니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다.


평소에도 마찬가지이다.

차르는 주로 거실에 많이 머물지만 하루에 몇 번씩은 각 방을 순찰하듯 돈다.

들어가면 그냥 나오지 않고 야옹 거리며 부르거나 비벼대며 알은체를 하고, 노트북을 차지해 관심을 끄는데, 할머니 방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본체만체하고 한 바퀴 돌고는 창문을 통해 뒷베란다로 나가 버린다.

순전히 할머니 방은 뒷베란다로 나가는 통로로 삼는 것 같다.

할머니는 창문이 닫혀 있으면 누워 계시다가도 일어나셔서 몇 번이고 열어 주시고, 거실로 들어오는 문이 닫혀있을 까봐 에고에고 하시면서도 일어나셔서 확인하신다. 우리를 시키지 않으시고 꼭 손수 열어주신다.


그런 모습만 봐도 이제는 차르를 얼마나 예뻐하시는지 알 것 같은데 차르는 그런 마음을 모르는 걸까?

고양이가 장기 기억력이 뛰어나고 특히 부정적인 기억은 평생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할머니와의 좋지 않은 첫 만남 때문에 그런 걸까?


어머니도 차르와의 첫 만남 때를 기억하시고 섭섭하지만 차르의 차별을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얘를 택하던지, 나를 택하던지 둘 중 하나를 택해라'

매몰차게 말하시고, 당신 방에 기웃거리는 차르를 사정없이 내쫓았던 기억 때문에 그럴 거라고 인정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미안해서 그런 기억을 씻어 주려고 애쓰시는 것 같다.


한 번은 저녁에 퇴근한 식구들에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털어놓으셨다.


"아, 고놈이 갑자기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거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지 뭐야.

내가 미워하는 거 알고 잠깐 현관문 열 때 나가버렸나 가슴이 철렁했다."


반 열린 옷장에 들어가 옷 사이에서 한참을 자고 나올 때까지 가슴을 졸이며 찾았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애태웠을 마음이 전해온다.


한 번쯤 만지고 싶어서 싫다는데도 엉덩이 두드리기를 멈출 줄 모르시다가 물릴 뻔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간식은 꼭 당신이 주고 싶어 하시고, 모르는 척 듣고 있으면 간질간질할 정도로 다정하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 녀석은 할머니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뭔가!


아들이 문을 닫고 있고,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할머니가 옆에 있는데도 마치 혼자 남겨진 것처럼 왔다갔다 아웅~아~웅 거리며 방과 화장실 문을 긁고 울어댄다.


"기다려~ 기다려~"

참다못해 할머니가 달래 보지만 민망하게도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래서 섭섭함에 성질이 나실까 서둘러 나오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시고, 성경책을 보시다가도 금방 누워 버리시는데 낮에 단 둘이 있을 때 할머니께 애교도 부리고 살갑게 굴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 입력된 나쁜 기억을 바꾸기 어려운 건 사람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나도 첫 만남이 안 좋았거나,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연락을 끊기도 하고, 서로 화해를 했더라도 전처럼 회복되기 어렵지 않은가.

1년에 두 번씩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던 우리 집 행운목이 차르 괴롭힘을 받은 후로 절대 꽃이 안 피는 것을 보면 식물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은데, 차르도 어릴 때 받은 배척과 미움이 깊게 각인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아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들려준 얘기가 있다.

나이 든 선생님과 젊고 예쁜 아가씨 선생님과 봉사 나오신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서 손을 벌리고 부르니

아장아장 걷는 아가들이 젊고 예쁜 아가씨 선생님께 우르르 달려갔다고 한다.

나이 든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인데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안으려고 하자 울음을 터트렸다고 했다.


가끔 혼잣말로 어머니가 하시는 소리가 있다.


"늙은이는 다 싫어하지.."


혹시 그래서 차르가 어머니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신다면 말씀드려야겠다.

"다른 식구 다 마다하고 중한 병으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할머니 옆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 보셨잖아요~"

(실제로 고양이를 ㅂㅌㅎ 방송에서 봤다)


그리고

고양이와 친해지는 법 7가지를 알려 드려야겠다.

몸을 낮추고 눈높이 맞추기, 먼저 다가올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리기, 천천히 눈 깜빡이며 눈인사하기, 부드럽게 불러 보기, 냄새 맡게 해 주기, 간식으로 환심사기, 스킨십은 천천히 하기

아! 그런데 이 중에 상당 부분은 다 실천하고 계신데!


차르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냥신이나 미야옹철, 윤샘을 한 번 모셔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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