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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Dec 05. 2024

차르와의 하루

무직자가 되어 고양이와 보내기



오후 3시,

이 시간이면 할머니와 단 둘이 있을 시간인데 웬일로 엄마 집사가 집에 있나? 차르가 어리둥절할지 모르겠다.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거실 장식장에 기대어 앉아 있다.

차르는 내 옆에 깔아놓은 이불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책상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면 아무리 소리를 죽여도 언제 깼는지 야~옹하며 쫓아온다.

쫓아오는 것은 좋은데 노트북을 점령해 버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차라리 허리가 아플지라도 차르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은 선택이다.


차르가 가끔 끄~응 거린다. 

잘 때 끄~응 소리를 내서 처음엔 걱정스러웠는데 여전히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걸 보면 그냥 잠꼬대를 하는 것 같다.

끄~응 거리며 꿈틀꿈틀 움직일 때 아기 재우 듯 토닥토닥해주면 다시 잠들고, 또 꿈틀꿈틀하면 다시 토닥토닥... 이 녀석 다시 잠든다.



차르가 우리 집에 온 지 이제 2년 하고도 3개월이 되었다. 날짜로 치면 820일 정도 된다. 

생후 2개월 때 처음 만났으니까 나이는 2살 5개월 됐다. 사람 나이로 치면 24실 정도라고 하지만 고양이 생으로는 아직 성장기라 천방지축 개구쟁이다. 겁쟁이지만 성격은 생기발랄하다.

복막염 치료로 1주일, 그 외 하루씩 두 번 입원한 거 외에는 떨어진 적이 없다.

그 정도 세월이 지나니 정말 한 식구라는 게 실감 난다.


댕댕이처럼 다가와 애교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부른다고 달려오는 것도 아니고, 꼭 안고 싶어도 도망가기 바쁘더니 이 세월이 지나니 달라졌다.


댕댕이가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차르야~' 부르면 저 쪽으로 가다가도 뒤돌아 본다. 그렇다고 달려오는 것은 아니고 '왜 그래?' 하듯 쳐다본다.

간곡하게 손짓까지 해가며 '이리 와~이리 와~'하면 인심 쓰듯 천천히 다가온다. '도도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도 폭풍 뽀뽀세례에 싫어도 꾹 참고(정말 싫으면 물 텐데 즐기는 것 같다), 품에 머리를 기대고 폭 안길 줄도 안다. 


불금 때면 가끔 거실에 족발이나 치킨 상이 차려진다. 

배달 음식이 도착하면 차르도 신이 나서 차려진 음식을 돌아가며 킁킁 냄새를 맡아보고는 '내 취향이 아니군!' 하듯 싹 돌아선다.

'차르야 이것 좀 먹어봐~'

우리만 먹는 게 미안해서 닭가슴살을 조금 떼어서 줘도 

'흥! 내거나 내놔~'

하며 거실에 상을 폈을 때마다 미안해서 꼭 주었던 최애 간식을 대령하라고 손을 착 내민다.

불가능할 것 같은 고양이 '손~줘'를 성공할 만큼 좋아하는 간식이다.


이럴 때 우리는 항상 '동물농장'이나 '고양이를 부탁해'를 본다.

TV 화면 속의 같이 먹을 려고 차려놓은 상에 달려드는 댕댕이를 보며 우리는 치킨을 뜯고, 차르는 자기 간식을 얌전히 받아먹는다.


우리 가족 삶에 차르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차르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된 것 같다.


일을 그만두었으니 시어머니는 온종일 며느리와 같이 있을 일이 걱정이실 것이다.

학원을 정리한다고 했을 때 잠시 침묵하시더니 결혼 이후 쉰 적이 없는 며느리한테 '이제 좀 쉬어라'가 아니라 '그럼 이제 뭐 할 건데?'였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집합금지로 일주일 이상 학원 문을 닫아야 했을 때 서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차르가 없었고 지금은 차르가 내 삶 한가운데에 있다.


사실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 옴으로 해서 나의 할 일은 2배, 3배 늘었다.

새벽밥 주기로 시작해서 하루에 3~4번 화장실 치워주기, 놀아주기, 물 갈아 주기, 빗질해 주기, 발톱 깎아주기, 양치해 주기...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반드시 청소기 돌리기.

귀찮고 싫으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동물이지만 나의 아들들을 키울 때와 사랑의 정도나 쏟는 정성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다. 우리 아들들이 기쁨을 주었듯이 차르도 못지않은 즐거움과 기쁨을 준다.

얼굴을 비벼대고 박치기를 하고 골골거리고 안 보이면 야~옹 거리며 찾으러 다니고 꼭 곁에 붙어 있으려고 하고 미운 짓 하듯 때론 깨물기도 하고.... 말할 수는 없어도 차르가 우리 가족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행복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들 과묵해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우리 가족은 낚싯대를 흔들면 엉덩이를 씰룩대는 차르 때문에 크게 웃는다.

간식 달라고 애절한 눈빛을 발사하며 쳐다볼 때, 좁은 상자에 몸을 구겨 넣고 있을 때 활짝 미소 짓는다.

웃음 치료라는 말도 있고, 억지웃음조차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차르로 인해 우리 가족은 진정으로 행복한 웃음을 웃을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몇 박으로 여행 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독립한 작은 아들 이사한 원룸에 가는 것도 혼자 남을 차르 때문에 방문 시간을 고민해야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무직자가 되어 집에 있는 내가 무료하고 허전함을 느낄 새가 없이 나를 성가시게 하고 바쁘게 하는 차르가 있어 다행이다.

차르를 지독히 사랑하지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큰아들은 독립한다 해도 차르를 데려갈 수 없으니 차르는 죽을 때까지 우리 부부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더 애착이 간다.


2년도 이러한데 10년 이상 키운 집사님들의 심정은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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