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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Nov 28. 2024

차르와 호박이

세상의 모든 고양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길 바라며


 

자는 척하는 차르


호박이는 덩치 큰 치즈냥이다.

우리 차르를 보다 호박이를 보면 고양이가 저렇게 클 수도 있구나 놀랍다.

그 큰 덩치가 울음소리는 아기 냥이처럼 가냘픈데 외모는 이름처럼 딱 늙은 호박이 생각난다.

우리 차르보다 훨씬 어르신 같다.

표정도 느긋하고 천천히 움직이고 볼  때마다 자는지 눈을 감고 식빵 굽는 자세로 앉아있다.  


호박이는 밖에서만 지내니까 길냥이긴 한데 엄연히 집사를 거느리고 있다.

호박이 집사는 상가 1층 ㅇㅇ미용실 사장님이시다.

우리 차르도 없는 '호박이'라고 쓰인 목걸이를 걸고 있는 것만 봐도 집사님의 호박이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엄마한테 가고 있는 호박이


미용실 맞은편 1층 아파트 앞에는 악간 경사진 잔디밭이 있는데, 거기 동그랗게 손질된 키 작은 나무 밑에 호박이 집이 있다. 젖지 않게 박스를 비닐로 싸서 만들었고, 입구는 안이 보이지 않게 두껍지만 부드러운 비닐로 문어발을 쳐 놓았다.

떨어진 곳에 있는 스테인리스  밥그릇과 물그릇도 항상 반짝반짝 윤이 난다.


다른 나무 밑에도 여름에는 시원한 돗자리를, 겨울엔 폭신한 담요를 깔아놓아서 날씨가 좋을 때면 호박이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세심하게 보살펴 주겠지만 그래도,

밤이나 긴 연휴 때, 비바람이 불 때, 눈보라가 칠 때, 폭염과 한파가 몰아칠 때면 신경이 쓰인다.


언젠가 미용실 휴일 때, 미용실은 문이 닫혔는데 호박이가 나무밑 깔개에 앉아 있었다.

'호박아~' 부르니 '냐~' 하며 호박이 특유의 애기 소리로 대답했다.

집사님 집이 근처는 아닌 것 같아 이렇게 쉬는 날에도 사료가 있나 밥그릇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선뜻 보게 되지 않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멀쩡한 남의 자식 괜히 불쌍하게 보고 동정하는 것 같은, 엄마가 보면 기분 나쁠 것 같은.

나도 누가 차르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먹을 것을 함부로 주면 싫을 것 같다.

내 자식이 괜스레 동정받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호박이 집사님이 어련히 알아서 해 주셨을까 하는 믿음과, 괜한 오지랖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쳤다.

실제로 가지고 있던 캔을 준 적이 있는데 미용실 집사님이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출퇴근할 때면 호박이를 보려고 일부러 돌아서 가는 길을 택한다.

안 보일 때도 많지만 호박이를 발견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쳐다보게 된다.


항상 나무 밑에 앉아 있지만 가끔 그 특유의 가녀린 야~옹 소리를 내며 미용실 문 앞까지 가기도 한다.


엄마를 부르는 호박이


안의 주인은 손님 머리를 만지느라 대꾸를 못해주고, 손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그러는지 대부분 호박이가 울어도 쳐다보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호박이는 절대 미용실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밖에서 혼자 야옹거리는 게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냥 지나친다.

하던 일을 마치면 집사님은 다정하게 호박이를 부르며 먹을 것을 챙겨 나오고, 호박이는 야옹 거리며 졸졸 따라가는 것을 몇 번 봤기 때문이다.

 

며칠 전 늦게 퇴근하고 지나다 보니 호박이 집 안에 폭신한 털담요가 깔려있었다.

그런 세심함에 마음이 훈훈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호박이는 밤과 아주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는 어디에서 지내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단지 내에 길냥이들 피신처가 여러 군데 있고 밥을 챙겨주는 캣맘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극한 환경 속에서도 무사히 잘 지내니 또다시  볼 수 있는 것이겠지 하고 위안할 뿐이다.



요즘 자주 이런 질문을 해 본다.


그럼 호박이는 밖에서 사니까 집에서 사는 차르보다 불행할까?

그 질문에 마음속으로 긍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물론 보통의 길고양이보다는 훨씬 안전하고 행복하겠지만, 호박이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호박이와 호박이 집사님한테 너무 미안해진다.


사실 나는 마당냥이가 가장 이상적일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저 밖은 너무 위험하고, 영역동물인 고양이에게 나무도 보고 꽃도 보고, 나비도 보고 새도 볼 수 있는 마당 정도의 영역을 확보해 줄 수 있으면 가장 좋을 것 같다.

아파트 창 밖에서 나는 새를 보고 채터링하는 고양이를 볼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사시사철 좁은 거실에서 이리저리 뛰는 차르를 볼 때면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호박이는 우리 차르보다 조금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더 넓은 곳에서 다양한 자연환경을 보고, 더 오래 살았고, 그만큼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을 테니까.


에고, 그래도 밤중에 문 닫힌 미용실 문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호박이를 때면 안타까운 걸 어쩌랴!




최근에 아주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름하여 '롱노즈'!

주둥이가 길어서 못생겨 보이는 길고양이를 칭하는 신조어이자 밈 단어라고 한다.

예쁜 고양이는 '입양'으로 솎아지고 못생긴 길고양이만 남아, 남은 개체 간 '근친 교배'로 길고양이들의 코가 길어진다는 주장에서 나온 말이란다.


하지만 길고양이 중 롱로즈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신뢰할 만한 연구도 없어서 롱노즈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고, 과학적으로 실증된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말은

자주 보는 문구이고 나도 적극 찬성하지만, 그 말 이면에 책임비까지 받아가며 길고양이를 팔아넘기고 자신들은 품종묘를 기른다는 일부 캣맘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 있다니 씁쓸하다.

'롱노즈'가 길고양이와 캣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인터넷 밈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가여운 길고양이들을 외모로 차별하는 일이 존재한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내가 보아 온 집사님들은 고양이 외모가 어떻든 모두 자신의 고양이가 제일 예쁘다고 말한다.


사랑이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소중하고 귀한 것 아니겠는가!


호박이 집사님은 호박이가 제일 예쁠 것이고,

나는 우리 차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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