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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24. 2024

차르 똥

설사만 하지 마~

뭘 보고 있니 차르야?



차르 똥을 치울 때면 아들 키울 때가 생각난다.


아들이 싼 황금빛 똥을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들여다보며 말했.


"아이고 똥 잘 생겼다~"

"에고~먹을 수도 있겠네."



지금

모래가 별로 묻지 않은 차르의 건강한 똥을 보며 말한다


"아우 똥냄새,

아우~ 구수해,  아우~ 구수해"


똥냄새 감소 사료와 냄새 잡는 모래가 나오는 마당에 고양이 똥 냄새가 좋을 리 있겠냐만 그렇게 말이 나온다.

얼굴은 좀 찡그렸을지 몰라도 마음만은 진짜로.


모래삽에 걸러지지 않은

작은 맛동산 부스러기나 조그만 감자 조각까지 돋보기를 쓰고 발이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골라낸다.



차르 똥이 마려우면 신호를 보낸다.

똥을 싼다는 표현은 왠지 똥 누는 차르를 달가워하지 않는 느낌이 드니  똥을 눈다고 해야겠다.


'나 똥 눠~나 똥 눠~'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을 빙빙 돌고 식구들을 쳐다보며 아웅~아웅거린다.

우리 식구는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다가도 이 아웅~ 소리가 나면


"짜루 똥 누네~"

어서 눠~, 어서 눠~"


하며 알은체를 해준다.


그러면 등을 활처럼 한껏 둥글게 구부려 올리고 우리를 쳐다보며 힘을 준다.

그때의 결연한 표정이란!

누가 쳐다본다거나 다른 고양이가 있으면 똥을 못 눈다는 건 우리 차르한테는 해당이 안 된다.

차르가 이렇게 똥 누는 자세를 취하면 나는 재빨리 쫓아가 똥꼬에서 나오는 똥을 쏘아본다.

'맛동산일까, 빈대떡일까?'


큰 일을 치르고 야무지게 묻고는 사방으로 모래를 털고 나오는 차르를 우리는 칭찬한다.


"짜루 예쁜 똥 눴네~"

"아이 구수해~ 아이 구수해~"


사실 '구수해'라는 말은 아들 단골 멘트다.

아빠는 "빨리 문 열어!" 하고 소리친다, 웃으면서.




설사에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차르  모양에 민감하다.

하루에 누는 횟수가 변해도 놀라고, 토끼똥처럼 똥글똥글해도 걱정하고,

질퍽하게 퍼져있으면 아주 심각해진다.


한 달 넘게 씨름한 그 질펀한 똥!


차르가 3개월 때, 초보 집사인 나는 '사막화'와 '뒷 처리'가 무서워 변기에 버릴 수 있다는 두부모래를 썼다.

차르가 밟고 파헤칠 때 발바닥이 아플까 봐, 향은 해로울까 봐

항상 가장 작은 입자에 무향으로 구입했다.

처음엔 길쭉한 이 두부모래는 쓸수록 점점 짧아지고 가루가 되어 밑에 쌓였다.


차르의 거의 물 같은 설사는 짧아지고 가루가 된 두부모래와 엉키고 흩어져 치우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전체갈이를 똥 눌 때마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일단 삽으로 푹 떠서 버리고 오염된 것은 일일이 골라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을 하루에 몇 번씩 해야 했다.


쪼그리고 앉아 오랫동안 작업하는 어려움 보다도 차르는 무슨 병이 걸렸을까가 더 고통스러웠다.


"짜루야 왜 자꾸 설사를 하는 거야.

왜 약을 먹어도 안 낫는 거야.

뭘 먹어야 되는 거야.

말을 좀 해봐 짜루야~"


질펀하게 퍼진 차르 똥을 치우며 거의 울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설사가 무서운 복막염으로 이어졌으니 설사는 공포 수준이 되었다.

..

.

.

차르는 큰 병을 이기고 이제 건강한 똥을 누고 잘 먹고 잘 놀고 잘 잔다.

지나간 고통은  서서히 희석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관절 건강을 위해 매일 저녁 스쿼트를 100개씩 한다.

그냥 하면 힘들고 지겨우니까  TV틀어놓고 한다.


틀기만 하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싸우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의 말잔치가 숫자 100에 집착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비단 입으로 나오는 말 뿐일까?


부드럽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거칠고 맛없는 것을 먹어도 누구나 공평하게 찌꺼기를 만든다.

찌꺼기가 몸속에 있을 때는 냄새가 새어 나오지 않으니 사람들은 잊어버린다.

찌꺼기가 똥으로 나오면 고약한 냄새를 난다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그런 고약한 냄새가 안 나는 줄 안다.

오히려 향기롭다고 믿고 있다.


글자 모양도 똥처럼 생긴 똥은 상상만 해도 유쾌하지 않은데

그건 똥의 주인 책임이다.

순수라는 아름다움은 이제 물 건너갔고

이미 오염될 대로 오염돼서 어쩔 수 없다면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나나 너나 똑같은 냄새나는 똥을 싼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소중한  아기의 황금빛 똥은 그래서 예쁘기만 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고양이의 똥은 그래서 구수하기도 하다.


그런데 내 아들의 똥과 고양이의 똥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다니!

사랑은 참으로 상식적이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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