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지도사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두 역할 안에서의 딜레마

by 평화

나는 올해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하는 두 딸이 있다. 세 살 터울의 아이들은 큰 사춘기 없이 자기 몫을 열심히 하며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조용하지만 밴드 음악을 사랑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며 감수성 높은 큰 아이와, 예체능 부문으로 다재다능하고 활발한 성격의 둘째가 주인공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공부도 잘 챙기고, 주말에는 청소년수련관에서 참여기구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두 아이 모두 청소년지도사인 부모 아래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청소년 활동을 보고 배웠다. 그 까닭에 큰 아이는 청소년참여위원회를, 둘째 아이는 청소년운영위원회 활동을 꽤 오래 했다.

이 활동을 통해 다른 교급과 연령의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소통하고 협력하는 법을 배웠다. 청소년기에 경험한 시간들이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삶의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는 시점이 오니 두 갈래 생각 속에서 늘 딜레마에 빠진다.

바로 청소년지도사라는 직업인으로서의 나와, 엄마로서의 나 사이의 갈등이다.
청소년지도사로서 나는 우리 집 청소년의 꿈을 응원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하고 격려하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 다양한 경험으로 삶을 다채롭게 채우고, 나보다 조금 더 멀리 보고 넓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엄마로서의 나는 한 가지를 더 기대한다. 바로 ‘학업’이다. 지금까지 공부하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노력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는 만큼 나오는 것이 성적이고 실력이라 여겼다. 비단 공부뿐 아니라 무엇이든, 노력을 완전히 배신하는 일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아이와의 대화가 늘었다.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는 중학교 때보다 공부량을 훨씬 늘렸다. 처음 겪는 압박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지만,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 점수에 불안해한다.
머리로는 안다. 대학 입시 결과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수없이 청소년들에게 말해왔다. “지금의 성적이 너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라고. “입시는 긴 인생의 한 장면일 뿐”이라고.
그런데 그 문장이, 막상 내 아이 앞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입시 결과가 성공의 시작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선택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욕심이 스민다. 세상이 말하는 ‘잘 나가는 대학’에 입학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만족하는 일을 찾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 바람이 기대가 되고, 기대는 어느새 조용한 압박이 될까 봐 스스로를 경계한다.

본격적인 입시 생활을 앞두고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날이 좋아 바닷가에서 한참을 놀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동생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웃는 모습이 그저 예쁘기만 하다. 집으로 오기 전 들른 낙산사에서 아이들이 무언가를 적고 있기에 다가가 보니, 기왓장에 소원을 쓰고 있었다. ‘학업성취, 시험 고득점.’
아이의 마음 한가운데가 온통 성적으로 채워져 있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쓰렸다.

얼마 전 읽은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온 힘을 다해 해낸 것이 끝까지 남는다.”
결과가 어떻든, 아이가 자신의 시간을 다해 애쓴 경험이 언젠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에게 바라건대 고등학교 3년 동안 아이를 채근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청소년을 응원하는 다정한 마음으로, 내 아이를 대하고 싶다. 힘들 때 마음을 열어 기대어 오는 여느 청소년처럼, 내 딸이 나에게 기대어 오면 좋겠다.
직업과 엄마 역할 사이의 딜레마로 내가 흔들릴지언정, 그 갈등을 아이에게 내보이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오늘도 나는, 시험에 빠지지 않을 연습을 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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