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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Oct 02. 2024

하늘은 높고 고양이도 살찐다.

천고마비 아니 천고묘비.

얼마 전까지 대체 언제 가을이 오냐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더랬는데

비와 어깨동무하고 온 찬 공기 덕에

기다리던 손님 가을이 식구가 되었다.


가을은 고양이에게 어떤 계절까?


사람 말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에게도 식욕의 계절이다.

일조량이 줄어듦에 따라 고양이도 우울함을 느낀다.

더불어 봄에 가볍게 입었던 얇은 털코트를 벗고 두껍고 무거운

겨울 코트로 갈아입어야 하기에 털갈이의 계절이다.

봄보다 더 자주 털을 빗어주어야 한다.

털이 많이 빠지기에 그루밍(혀로 털을 훑어주는 일 고양이 침에 소독 성분이 몸을 깨끗이 해준다)만으로

장모종의 경우 많은 털을 먹어 털을 토해내기도 하기에 자주 빗어주어야 한다.

단모종인 제리도 가시는 걸음걸음 털을 뿜뿜 해주시고 사뿐히 즈려밟고 가신다.(-.-)


제리는 털을 빗는 행위 자체를 너무 싫어해서 더 세심한

배려의 손길이 필요한 미용실 손님이다.

여차하면 야무지게 물어주신다.


그러기에 생긴 노하우는

좋아하는 부위와 싫어하는 부위 섞어서 빗어주기다.

머리 턱 양 볼 등은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고

몸통 배 그리고 꼬리는 제일 싫어하는 부위다.

이들을 교차로 해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안 물리는가 하면 물리기는 할 수 있다.

그만해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즉 그만할 때를 모르는 나는 늘 길게 하다가 물리고 마는

결말이다. 하하하.

다시 가을로 돌아가서

일조량이 적으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감수성이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바리 깃 세우고 찬바람 맞고 돌아다니는 추남들을 많이 만나게 되지 않는가?

가을 추다. 추할 추 아니다. 많이 싸돌아 다니면 추할 수도 있다.

뭐든 적당해야 아름다운 법.

부쩍 냥플릭스(창틀) 고정석에 자주 앉아 밖을 보는

제리에 뒷모습이 어찌나 처량하던지.

저도 가을 남자다. 이 건지. 추묘?!

울음소리도 어찌나 애절하던지.

미야 미야 미야오(그 그룹 홍보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행태로 인해 잦은

식사를 요구하는 데 있었다.


원래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지 않는

스타일이라 적은 양의 잦은 식사를 하는데

이건 너무 자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안 주면 그 처량한 자세와 애절한 울음으로

일관하니.


살찌면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이 있으니

입맛이 확 돈 추묘 제리 덕에 가을 고민이 깊어간다.

인도어 용(집안 고양이 작은 운동량에 맞춘 사료) 사료로 전환하고

원래 먹던 성묘 다이어트 사료를 좀 더 혼식해야 할지.

심히 걱정이 된다.


근데 아주 놀랄만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한 시간 늦춰진 필라테스를 다녀오고 돌아오는

내 등에 그 유명한 똥파리 한 마리가 같이 엘베를

타고 올라와 무사히 우리 집에 안착하는 일이 생긴 거다.


그 존재를 발견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전 똥파리 한 마리가 몰래 들어와 알을 깐 적이 있었기에

도시 생활만 한 나는 구더기를 보고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그랬던 안 좋은 기억으로

보기만 해도 겁이 나는 존재가 똥. 파. 리.

근데 들어온 줄 모른 채 제리

사료를 주고 돌아서서 나오며

그 존재와 딱 눈이 마주쳤다.

잡으려다 실패했다. 얼마나 눈치가 빠른 지.


그 존재는 휘리릭 날아 제리 밥그릇에 안착했던 모양이었다.

제리는 그 존재를 잡으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라. 정말 날쌘데. 

앞발을 고스란히 모아 딱 내가

그것을 잡으려는 손동작과 같은 자세로

제자리에서 몇 번을 뛰어오르는데

아주 멋진 장면이었다.


제리의 다른 면모를 보고 크게 웃고 말았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캑캑 거리는 채터링 (새소리와 유사한데 사냥감을 발견하고 흥에 겨워 내는)소리.

문제는 이미 그 존재는 다른 창의 방충망으로 가 버린 뒤였다.


조심스럽게 방충망을 열고 닫고 하면서 똥파리를 방생하였다.

그런 전후사정을 모르는

제리는 아주 흥분해서  캣 타워를 오르내리며

난리를 피고 있는 것이었다.

제리가 밥을 마다하고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똥파리에 흥분한 모습이 웃겼다.

그러면서

불현듯 든 생각.

오 열심히 사냥하면 밥을 좀 덜 먹고 운동량이 늘어나니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벌써 가버린 그 존재를 향해 흥분한 엉덩이를 실룩실룩하며

기다리는 제리를 보니 실소가 나왔다.


누가 그랬던가 고양이는 동체 시력이 뛰어나

반응속도가 빠르다고 근데

왜 똥파리는 잡지 못한 걸까?

늘 하는 생각인데 벌레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잘 잡지 못하는 제리를 볼 때면

빈 수레가 시끄럽다고 사냥 실력은 젬뱅인 게 아닐까.


뭐 그래도 괜찮아. 제리야. 넌 허술한 게 딱 그 정도가 좋아.

다 완벽할 순 없으니.

근데 바퀴는 말이야. 이 집사가 극혐 하는 거거든. 델고 노는 게 아니라

잡아야 하는 거란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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