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을 당하다
저는 보통 5시 30분이면 일어납니다.
요새는 좀 게을러져서 간단히 먹고 다시 자다가 6시 30분 혹은 7시에 일어납니다.
오늘은 다시 잠들었는데 어이가 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와 팀장님은 같은 팀으로 10년이 넘게 같이 일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북돋아 주고 믿고 의지하며 지내왔어요.
저에게 유일하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정말 인생의 선배, 언니처럼 생각했습니다.
꿈에 제가 팀장님에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팀장님은 사장님, 전무님, 대리와 함께 뭔가를 먹고 있으면서 저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습니다.
저는 팀장님한테는 화를 내고, 사장님께는 저는 이만 가겠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친했던 후배한테 자꾸 내가 잘못한 건지 묻습니다.
그 후배도 처음에는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질색하는 눈치였습니다.
참 이상한 꿈이죠
저는 가끔 있을 법한 꿈을 꾸거나, 정말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서 관련된 꿈을 꾸면 맞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왜 나는 팀장님한테 자꾸 화를 내고 있을까..
내 권고사직과 팀장님은 아무 연결이 없는데..
그런데 기억에 스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때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팀장님께 심한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그때 저 몸과 마음이 지쳐서 어느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서
팀장님과도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팀장님이랑 잘 지내자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어느 날, 사장님께 결재를 올리러 갔는데 모니터에 팀장님과의 채팅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팀장님한테 이야기 한 내용을 캡처해서 사장님한테 보여준 겁니다.
그때 저와 비슷한 급의 동료 한 명이 권고사직 유력 후보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팀장님한테 팀 내 채팅창에서 말했던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이 사장님 채팅방에 캡처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썼다면서 "저는 권고사직을 받는다면,, 담담히 받아들일 것 같아요.."라고
그 밑에 직원들이 전부 혼란스러워합니다. 빨리 정리해 주세요?라는 식의 팀장님의 메시지
아니 우리끼리 이야기 한 건데 이걸 사장님한테 말한다고?
지금 권고사직 이야기 하는 사람은 사장님이 하는데?
그게 트리거가 됐나 봅니다.
자리에 돌아와서 팀장님께 팀장님 딱 걸렸어요. 왜 사장님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마치 원래는 권고 대상이 아니었는데, 팀장님 때문에 권고사직 대상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물론 그게 아닌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요.
돌아가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게 점점 저한테 불리해지고 있다는 걸 감각적으로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버틸 때까지 버틴다, 설마 나를 자르겠어 이 생각도 같이 하고 있었어요.
저 날 이후로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권고사직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 채팅이 생각났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원망할 사람을 찾고 있었나 봅니다.
팀장님은 그 뒤로 쉽게 저한테 연락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회사를 안 나가고 한 일-이주 동안은 잠깐잠깐 채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회사 관련된 이야기는 안 해주시고 대화하는 걸 꺼려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제 착각이겠죠.
그래서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회사에서 제일 의지하고 믿었던 사람인데 이렇게 되는 게 어이가 없기도 하고..
회사 나갈 때 결국 사람도 두고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한참이나 씁쓸했습니다.
그즈음부터 제 우울증도 심해졌고요.
다른 분들은 조심스러워서 연락 못하겠다고 하는데 그 마음도 이해하지만
팀장님은 그래도 편히 연락하면서 회사 소식도 알려줄 거라 생각했던 제가 순진했나 봅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꿈을 꿨나 싶었어요.
이런 꿈은 더 이상 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좋아했던 선배라도 회사를 그만두면 역시 끝인가 봅니다.
좋은 일로 나왔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좋았던 관계라도 회사라는 틀 안에서만 존재했던 것일 수도 있구나 싶습니다.
씁쓸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깨달음이겠죠.
이제는 진짜 개인적인 관계들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