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이란 없어

by 김현아

귀찮은 날의 연속이었다. 무기력이라는 거대한 힘이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굳게 닫힌 조용한 방 안 양쪽 스탠드만 켜놓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연신 바라보는 고독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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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쉼 없이 움직인다. 볼품없는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나의 울타리는 점점 쇠약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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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할머니는 행복이 필요한 것 같다.


늘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할머니에게 유일한 행복이자 삶의 이유라고 말한다.


할머니의 행복에 괜스레 마음이 묵직하다.


그 행복을 가득 채워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텅 빈 공간에 깡통 소리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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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걸렸었다. 무지하게 아파 몇 날 며칠을 골골거렸다.


애석하게도 아플 때면 항상 할머니가 떠오르게 된다.

할머니가 힘들 거 뻔히 알지만 결국 휴대폰을 들어 할머니께 전화를 건다.


“할머니, 나 너무 아파.” 1시간도 채 안돼서 달려오던 그녀였다.


나는 왜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할까?

왜 넘치는 사랑에 익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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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사랑이라는 단어는 참 무섭다.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사랑을 받는 건 한없이 익숙하지만, 이에 걸맞게 사랑을 주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다할 사람이 없을 만큼 사랑은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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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말로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다. 못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그저 말로는 이미 할머니의 행복을 다 채워준 것 같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행동으로 이룬 건 손에 꼽기 창피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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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이룰 수 있는 건 안부전화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뿐.


이마저도 부족한 내가 부끄러워 침대 밑으로 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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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본 유튜브가 생각났다.

“나중이란 없어, 난 가족을 잃었잖아. 나중엔 하나도 소용이 없더라.”

나중이란 없다. 현실에 충실하자고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도 나중으로 미루는 나다.


오늘의 귀찮음과 핑계가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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