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은 빼기
퇴고(推敲): 글을 쓸 때 여러 번 생각해 잘 어울리도록 다듬고 고치는 일.
본능적으로 배고프면 밥을 먹고 배가 아프면 화장실에 가듯, 글쟁이라면 꼭 거쳐야 할 본능과 같은 과정이다.
며칠 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눈의 실핏줄이 폭죽 터지듯 여러 갈래로 아름답게 터져 쓴 글은 다음날 몽땅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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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주로 쓰는 나로서, 에세이 책과 산문집은 교과서와 같은 존재다. 하지만 교과서를 읽고 감탄할 수 록 내 글은 휴지통에 적립되고 만다. 특히 내가 정말 좋아하는 류시화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면 그는 마치 인생 2회 차를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와 같은 지식, 동서양을 넘나드는 문학작품들을 꿰고 있는 것은 물론 그의 인도 기행문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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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다채로운 경험과 눅진한 세월이 흘러야만 대작이 될 수 있는 걸까?
하물며, 18세기 위대한 작가나 화가들도 그들이 죽고 나서야 세상 모습을 들어내 명성을 떨치고 있다. 천재적인 작가들을 접할수록 나는 한없이 초라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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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면으로 아무런 경험이 없으니 무작정 해외로 떠나고 싶었다. 해외로만 나간다면 기행문 한 편은 이미 따놓은 당상. 비행기 티켓, 숙소, 경비 등 현실적으로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엔 "아, 여행 가고 싶다."라는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시기와 질투로 인한 해외도피인 것이다. 터무니없는 생각과 망상은 이루어질 수 없는 달콤한 꿈이었고 내 글을 자꾸만 의심하다 보니 키보드의 따뜻한 온기는 이미 식은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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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 서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감정을 맞닥트렸다. 거짓은 빼고 정직함 한 스푼을 추가하다 보니 워낙 투박해 썼다 지웠다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퇴고의 길이 그저 퇴행의 길이 되지 않기만을 바랬을 뿐이다. 요근래 책을 볼 때면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필사 노트와 함께한다. 많은 예술가들의 명언이나 감탄을 금치 못하는 문장들을 손으로 직접 써보면서 그들의 영혼에 닿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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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록과 경험들이 쌓여 정녕 내 글이 되길 바라면서 오늘도 퇴고하고 퇴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