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광고주의 마음에 곱디고운 주단이 깔릴지, 거칠고 뻣뻣한 무명천이 깔릴지 헤아리기는 여전히 어려웠다.때때로 잡히지 않는 갈피 여도 나의 고된 수용과 관용으로 채우면 그만이었다.
출고 직전까지도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는 뻔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면 됐고,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만 숨긴 채, 오조 오억 번 제작물 수정을 감내하면 됐으며, 확신 대신 애매한 확답을 건네는 광고주의 슬픈 법칙은 감수하면 됐다.
최종 출고 완료 후, 인쇄 기계가 가열되려는 찰나에 들리는 단말마의 그 비명.
"STOP!!! 차장님! 조금만 더 수정할게요!"
"네? 출고 파일 넘어갔어요!"
"에이~ 아직 인쇄 안 돌아갔잖아요~"
조사, 문장부호, 자간과 행간 등등...
어느 쪽으로 열든 상관없는 출입문을 두고 안쪽에 Push를 붙일지, Pull을 붙일지 고민하는 그들만의 일생일대, 최대 선택의 기로. Push든 Pull이든 손님들에겐 P만 보인다는 사실은 모른 채 장고와 퇴고가 거듭됐고, 타이밍을 놓쳐 제동을 걸지 못하는 나에게 인쇄소의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장님! 이 상태로라면 납품 기한 못 맞춰요! 원망하지 마요!!
그냥 가야 해, 무조건 GO!!!"
순간적으로 떨어진 당을 채우기 위해 가방을 뒤적이는데 얼마 전, 시식해 보라며 길에서 나눠준 샌드 쿠키 하나가 손에 걸렸다. 가방 속에서 길을 잃고 파우치와 지갑에 치여 결국 찌부러지고 만 쿠키. 부서지고 갈라진 쿠키 틈으로 크림이 탈출을 감행했으나. 얼마 못 가 비닐에 덕지덕지 펴 발라져 있었다. 형태에 이어 크림 본연의 맛까지 잃지 않으려면 더는 지체하지 않고 긁어서라도 먹어야 했다. 그리고, 광고주, 대행사, 인쇄소 모두 한데 얽히고설켜 본질을 잃은 덩어리가 되지 않으려면 나라도 단전에 기를 모아 지금이라도 외쳐야 했다.
"Please!!!"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인쇄는 거침이 없었고, 납품은 기한 내 완료됐다.
겨우 고비를 넘기나 했건만, 두근두근 언박싱의 첫 주인공으로 광고주가 당첨된 게 문제였다.
샘플을 미처 확인할 겨를도 없이 인쇄가 진행됐고, 새 기계의 달라진 컨디션에 따라 미묘하게 바뀐 색상을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다.
"차장님!!! 이거 어떻게 해요!!!"
분명 단단하게 영글었다고 믿었던 요령과 여유가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회사업무를 하면서도 아이들을 돌봤고, 구멍이 생기지 않으려고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웠다. 출근 준비하며 오후에 먹을 애들 간식을 준비했다. 회의가 끝나면 하교는 잘했는지, 학원 수업은 잘 출석했는지 전화 통화를 하며 체크했다. 거래처의 요청을 처리하는 와중에도 짬짬이 학원 선생님과 정기상담도 했다. 퇴근 중에는 낮에 마저 보지 못한 교정일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차리고 숙제를 챙겼다. 학교 알림장을 확인했고, 주말에는 때론 출근을, 때론 아이들의 비염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거나 안정적인 유대관계를 위한 가족 나들이를 했다.
비글 자매가 똥 싸고, 광고주가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시간 빼고는 그들의 생각과 일정으로 내가 없는 나의 스케줄로 빼곡히 채워 두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려 했고, 꺼진 불도 다시 보려 했다. 하지만, 보조 미러, 후방탐지기, 후방카메라를 달고도 후진 주차를 하며 기둥에 사이드미러를 한 방에 날려 먹어야 했던 것처럼 나의 사각지대는 어디서든 존재했고 불현듯 나타났다. 그럴 때면 스스로 독려했던 마음이 무너졌고, 비장했던 초심은 흐려지면서 초조해졌다.
열 번 중 아홉 번을 잘하고 한 번을 못해도 나는 타격감이 열 배로 다가왔다.
늦은 만큼 남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허점이 약점이 되기 싫어서 더 악착같이 매달리고 싶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나의 자리가 여전히 제자리에서 흘러가는 시곗바늘로 채워질수록.
직급이 바뀌어도 나의 업무가 여전히 변함없이 (광고) 주님의 보우하사일수록.
껑충 자라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바뀌어도 여전히 나의 부역은 부엌에서 마무리될수록.
내 마음의 구멍이 자라나는 것은 보지 못했다.
놓아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하지 못했다.
몇 해 전, 흙이라고 하면 맨발로 뛰어다니고 뒹구는 1호로 인해 농사의 농도 모르던 내가 주말 농장 한답시고 상추 씨앗들을 대량으로 파종한 적이 있었다. 씨앗이 발아했고, 우후죽순 너도나도 얼굴을 디밀던 새싹들이 마냥 신기했고 대견했다. 다음 스텝인 솎아주기를 과감히 점프한 우리의 상추는 태어나자마자 서로 부대끼며 치열한 경쟁사회에 돌입해야 했다. 겨우 손톱 크기만 한 이파리로 친구, 이웃, 형제 할 것 없이 서로 따귀를 날리더니 하루가 다르게 파리해져 갔으며, 농사는 감성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는 초보 농사꾼에게 보란 듯 자멸해 갔다.
결국 뽑고 난 그 자리는 텅 빈 구멍만이 남았다.
나에게도 솎아주기란 숨 고르기 타이밍이 필요함을 알면서도 계속 간과하며 살아왔다.
부서진 쿠키와 비닐에 발린 크림이 되었다가, 기둥에 부딪혀 날아간 사이드미러가 되고, 머지않아 모든 것이 사라진 텅 빈 구멍이 되지 않으려면 결단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게 조금 능글해진 강 차장은 당근과 단호박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알게 됐고, 조금 뻔뻔해진 강엄마는 애착과 분리를 구분할 줄 알게 됐으며, 조금 현명해진 강드라이버는 늘지 않는 주차실력 대신 뚜벅이가 되어 건강과 환경 보호를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