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會食) 말고, 회식(回食)!!!
유달리 고된 하루가 지났다.
열일로 발갛게 부어오른 목젖을 식힐, 아찔하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간절하다.
‘그래! 오늘은 회식이다!!!’
아찔한 혼술회식.
혼자/술 마시며/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시간.
나만의 회식은 ‘모일 회(會)’가 아닌 ‘돌아갈 회(回)’ 한자를 쓴다.
강 차장도.. 아내와 엄마도 아닌 온전히 나 자신으로 돌아가 술 한잔에 힘든 하루를 태워 버리는 시간.
지나치게 발달한 사회성과 환경에 따른 후천적 요인으로 MBTI 검사 결과, E(외향적)가 됐지만, 나의 원래 성향은 I(내향적)다. 국민학교 시절의 나는 등교부터 하교까지 선생님의 입에서 나의 이름이 한 번도 불리지 않기를 매일 기도했고, 반에서 단짝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학년이 끝나갈 때까지 단 한 번의 대화조차 없던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고목나무에 달린 한낱 매미의 그림자가 되고픈 어린 시절의 내게, 동네를 휘젓고 다녀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건 바로 엄마의 푸념이 귀에 꽂힐 때였다.
"밥때가 됐는데 뭐 하느라 이렇게 안 들어와!! 일 끝났으면 바로바로 집엘 들어와야지! 어디 가서 또 술 마시고 있겠지, 아휴 웬수야, 웬수."
부엌 너머 보이는 엄마의 얼굴은 마치 해 질 녘 노을 같았다.
붉으락 푸르락 점점 변화무쌍해지는 빛깔을 띠는 엄마의 모습에서 이내 ‘오늘 저녁도 순탄하긴 글렀구나’를 직감하고 아빠를 찾아 동네를 나서야 했다.
요즘에는 말이 좋아 ‘가맥집’이니, ‘레트로 술집’이니 하지만 그때만 해도 동네 구멍가게 한편 좌판에 놓인 소주병, 종이컵, 황태포 3종 세트는 행인의 감성적 소구를 전혀 이끌어내지 못했다.
"아빠!!! 또 여기 있었네!!!"
늘 똑같은 동네 아저씨, 똑같은 슈퍼, 똑같은 소주 한 병,
그리고 눈앞에 나타나 소리치는 날 바라보며 웃는 똑같은 아빠의 미소.
"얼른 가아아~~ 엄마 화났어!!"
"허허, 한 잔만 더하고~"
"무슨 소리야!! 빨리 가야 해~~ 된장찌개 다 식는대~~!!"
아빠는 내가 잡아당기자 슬그머니 팔을 내어주더니 마지못해 자리를 파해야겠다는 머쓱한 표정과 왠지 모를 흐뭇한 미소로 일어섰다.
하지만 임무를 완수함과 동시에 그림자이길 희망하는 존재였던 나는 타격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혹여나 취한 아빠와 돌아가는 내 모습을 친구들에게 들킬까 걱정이 앞섰고, 결국 아빠와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한 채, 줄곧 땅만 보며 걸어갔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나에게 이런 걱정을 안겨주는 아빠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냐, 아빠 보다 술이 문제야. 술이 웬수인 게 틀림없어.’
아빠가 아닌 술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아빠가 술을 마실 때면 몰래 소주를 다 버리고 물로 채워놓기 일쑤였지만, 아빠는 그때마다 그냥 웃고 넘겨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득이하게 나의 경계에 허점이 생기는 날이면,
아빠는 경보해제를 눈치채고 편히 술을 마셨고, 끝내는 싸구려 알코올에 절여진 멸치젓갈 같은 모습으로 귀가했다. 그럴 때면 아빠에게서는 희한하게 시골 아궁이 속의 타는 장작 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다섯이나 되는 가장의 무게에 숨고 싶어도 그저 걱정과 애환을 술잔에 담아 흘려 태우는 게 전부였던 아빠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타는 속에 술까지 끼얹어 활활 태우고, 겨우 재만 남긴 채 제자리로 돌아와 버티고 있었음을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린 마음에 휘청이며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빠가 싫었고, 취기에 엄마와 싸우는 아빠가 미웠다.
"나는 절대로 술 안 마실 거야!!!"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인생이란 없음을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듯..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강력한 DNA는 서양의 우아한 앤쵸비(멸치를 소금물에 씻어 올리브유에 절인 우리의 젓갈과 비슷한 음식)도,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화목난로도 아닌 아궁이 속, 타는 장작의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멸치젓갈 어른으로 자라게 하였다. 마침내, 술을 전혀 못 하는 엄마에게는 집안에 하나였던 웬수가 언니들 포함 나까지 도합 다섯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비글 자매가 말문이 트여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어느 해였다.
시어머니와 함께 명절 장을 보러 들린 마트에서 카트에 앉아있던 1호가 손을 뻗더니 덥석 맥주병 하나를 집어 담으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 엄마 좋아하는 거~ 내가 사떠~“
마트 오기 전까지만 해도 술은 입에도 못 대는 며느리였던 나는, 1호의 반란을 계기 삼아 반주를 꽤나 즐기는 며느리로 커밍아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알면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땅 꺼지게 한숨 쉬셨겠지만,
아빠에게 받은 유전자가 내 안에서 발전해 진화하고 있음을 더는 숨기기 힘들었다.
혀끝에 닿은 알코올의 쓴맛이 서글픔, 애환을 제압해 식도를 통해 씻겨 내려가면, 위장이 저릿해지면서, 단전으로부터 올라오는 최종보스 '화'를 맞이한다. 비록 아빠는 그들의 결합 속에서 타오르고 재만 남았지만, 나는 목구멍에서 절로 터지는 ‘캬~’ 소리와 함께 화염방사기가 되어 몸 밖으로 시원하게 토해낸다.
(물론, 그 화염 방사기에 때때로 남편이 맞지만.)
20대의 술은, 불확실한 미래라도 꿔볼 수 있는 내일이 있음에 안도하며 마셨고,
30대의 술은, 쳇바퀴 돌 듯 늘 제자리인듯한 막막한 청춘을 위로하며 마셨다.
40대의 술은, 전우의 시체를 왜 자꾸만 넘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고무줄만 마냥 넘었던 그때가 그리워 한잔, 불안정한 열정보다 안정에서 오는 나태함이 부러워 한잔, 학원 셔틀과 라이딩으로 느끼는 관절의 시큰함보다 똑같이 힘든 길을 감내해야 할 아이가 안쓰러워 한잔, 끝없이 성장통만 앓고 있는 흰머리 자식 걱정에 맘 편히 뻗지 못하는 부모님의 두 다리가 죄송해서 한잔,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가면이자 무수히 많은 나의 페르소나를 위해 한잔을 들이켠다.
고되고 힘든 하루의 끝에서 치열했던 아빠의 그때와, 업무에 지치고 비글자매에 치이는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지만, 술이 전하는 옛이야기에 귀 기울여 그 마음을 짐작해 본다.
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있다.
엄마가 애써 차린 저녁상이 식어도 왜 아빠는 술로 먼저 위장을 달랬는지.
빈속에 마시는 한 잔의 달큼함이 인생의 쓴맛도, 술의 쓴맛도 잊게 해 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