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면 병나!!!
먹으면 싸고, 슬프면 울어야지.
나의 30년 변비 역사는 길고 험난하다.
질풍노도 시기였던 10대 때는 학교에서 해결했다간 놀림감이 될 게 뻔해 참았고, 대학 시절엔 노는 게 재밌어 참았고, 직장 생활 때는 칼퇴를 위해서라면 쉼 없이 달려야 하니 참았다.
특히,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었던 고등학생 시절엔 거사를 치를 때마다 대들보에 긴 수건을 걸어 잡아당기며 출산의 고통을 겪던 사극의 한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날 위해 엄마는 거의 매일 고구마를 삶았다. 입이 짧은 내가 그나마 질려하지 않고 먹을 수 있었던 게 고구마였고, 그마저도 얄밉게 항상 갓 삶은 고구마만 먹었다. 껍질 채 먹어야 식이섬유를 더 많이 섭취할 수 있다는 전문가 정보에 엄마는 벅벅벅, 꼼꼼히 흙먼지를 씻어내며 종종 신세 한탄을 하곤 했다.
"고구마 밭주인한테 시집을 보내든가 해야지 저거 저 웬수... 에휴!!"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구마를 들고 푸드 파이터처럼 물도 없이 먹는 내 등짝을 엄마는 있는 힘껏 후려치며 말했다.
"똥 싸고 싶어서 고구마만 무식하게 처먹다가 골로 갔다고 뉴스에 나오게 생겼네!!"
참으면 병난다는 엄마의 타박에도 참는 게 능사였던 나는 ‘화장실에서 발생한 기행(奇行:기이한 행동)’ 또는 ‘화장실에서 만난 요행(僥倖:뜻밖의 행운)’을 꾸준히 이어갔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20년 후... 두둥!! ‘인과응보’, ‘사필귀정’에 이르는 일생일대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코로나 발생 초기, 확진자는 음압병실에 격리되고, 그들의 동선까지 파악되어 뭇사람들의 질타를 피하지 못할 때였다.
비글 자매의 약한 면역력이 걱정도 됐지만, 확진 이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보호자의 부주의가 두려웠기에 가장인 남편을 제외한 우리 셋은 철저히 외출을 금하기로 했다.
그러나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바깥 생활을 차단당해 답답해하던 비글 자매가 날뛰려는 조짐이 보였고, 그녀들의 주의를 돌릴만한 놀잇감이 절실했다.
종이접기를 하고, 그림 그리기를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한글과 숫자 공부를 하고, 욕조에서 물놀이도 했지만, 하루는 가혹하리만치 길었다.
더군다나 방심했다간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은 비글 두 마리가 나를 궁지에 몰거나, 또는 협상 결렬로 서로 쥐어뜯으며 싸우기 일쑤였다.
매일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없는 통에 배변 활동은 잠정적 휴업을 자주 하게 이르렀고, 그럴수록 나는 괄약근을 단단히 조이며 버텼다.
지난 30년간 변비 인생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흘러갔고, 인내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다며 스스로가 대견했다. 비록 매슬로의 인간 욕구 중 1단계인 생리적 욕구에 무감각해지며, 퍼스널 컬러는 누룽지톤이 되었지만,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감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비극은 머지않아 발생했다.
요정이 아닌 인간임을 각성하고, 단단히 조인 괄약근의 힘을 아랫배로 슬금슬금 옮기며 미약한 장운동을 몇 번에 걸쳐 시도하던 끝에, 갑자기 수도관이 터진 듯 피가 거침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 힘을 다시 아랫배에서 괄약근으로 옮겼고, 지혈은 되었지만, 이미 화장실은 피비린내 가득한 범죄 현장 그 자체였다.
'그래.. 배변활동을 당분간 차단하면 아물 거야..'
곡기까지 줄여가며 스스로 아물 수 있는 시간을 내어 주었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되었고, 나중에는 소변 누며 힘 줄 때도 피가 흘러나왔다.
결국, 며칠 지나자 방에서 거실로 옮기는 그 몇 발자국에도 숨이 차고 어지러웠다.
이러다 하의만 벗은 채 119 구급차에 실려가는 大참사가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에 남편의 도움을 받아 동네 내과를 방문했다.
"피검사 결과는 내일 전화로 알려드려요."
무심한 듯 의사가 말했다.
다음날, 분명 병원 오픈 시간은 9시인데 8시 10분쯤 전화가 왔다.
빈혈 수치가 11 이상이 정상인데 그때의 나는 5였고, 전날 무심했던 의사는 다급한 말투로 얼른 큰 병원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난 이름 모를 공혈자의 혈액을 세 통이나 링거로 맞으며 수술에 들어갔고, 마침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회복실 앞에서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대기하던 남편은 병실에 누워 끙끙 앓는 내 손을 잡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내가 미안해... 앞으로 잘할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줘...”
마취에서 깨고 어느 정도 정신이 들자, 회사 일로 한창 바쁠 타이밍에 열 일 제쳐두고 간호해 주는 남편이 걱정됐다.
"이렇게 휴가 내도 괜찮겠어...?"
"무슨 소리야, 와이프가 이렇게 아픈데... 회사에 말 잘했으니 걱정 마."
"뭐!!? 치질 수술이라고!!?"
"아니, 아니. 장출혈이 심해서 수술해야 한다니까 다들 엄청 걱정하더라."
"헐... 장출혈..."
"아무도 신경 안 써~ 그리고 출혈은 출혈이니까 틀린 말도 아니지 뭐~ 얼른 낫기나 해~."
퇴원 후 며칠만 지나면 회복될 거란 믿음과 달리 나는 또다시 응급실을 들락날락했고, 제왕절개로 두 번 출산한 경험보다 더한 극한의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더딘 회복으로 힘들어하는 날 위해 엄마는 언니 편으로 뜨끈하게 갓 삶은 고구마를 한 솥 보내줬고, 뜨끈한 고구마만큼 뜨거운 엄마의 사랑에 고구마를 먹기도 전부터 목이 메어왔다.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이미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피폐해진 상태에서 수화기 너머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엉엉 눈물부터 터져버렸다. 왜 그동안 엄마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던 것인지 후회도 물밀듯 밀려왔다.
“치질 수술 한 번 하는데 요란하게도 한다. 으이그...
그래서 참으면 병 된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앞으로는 제때제때 잘 싸!!!”
"흑흑... 응... 잘 먹고 잘 쌀게..."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온 가족의 병구완 노력 덕분에, 올 것 같지 않던 마지막 외래 진료날을 맞이할 수 있었고, 의사 선생님께 마지막이길 바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진료비 결제를 하고, 보험금 청구를 위해 발급한 진단서 속에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 명료한 진단명이 적혀 있었다.
'내치핵 4기'
저녁에 퇴근한 남편과 비글 자매와 소소한 축하 파티를 하며, 다시 돌아온 일상의 행복에 감사했다.
다음날, 보험금 청구 때 제출할 진단서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혹시 내 진단서 못 봤어?"
"어~그거 회사 복지로 직원 가족 병원비 지원해 주잖아~ 증빙서류 내야 해서 갖고 왔어~복사해서 제출하고 다시 가져갈게."
“... 나 장출혈이라고 했잖아...”
“어... 어...? 흠... 병원비 받으면 쇼핑 갈까~?”
“쇼핑이고 뭐고 당장 진단서 갖고 와!!!”
계절이 바뀌면서 어느새, 내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활짝 웃는 남편과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나는 쇼핑백이 들려진 손을 불끈 쥐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처럼 오랜 시간 단련한 내 장과 이별을 고하고, 말랑말랑 유연한 장으로 새로 태어나겠다고.
참는 것만이 능사라 생각한 내게 내치핵은 때로는 참는 것보다 배설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배설이라는 것이, 먹고 싸는 일차원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감정을 들이켜고 제때 내보내지 않아도 병이 난다. 정상적인 소화 활동의 마지막 단계를 참으면 몸에 독소가 퍼지고 종내 병이 나듯이 정상적인 감정 활동 역시 참으면 신체와 정신이 마비되는 강력한 독소가 퍼지기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듯이 나 역시 날때부터 엄마였던건 아니지만, 엄마라면 울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엄마라면 아이의 행동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엄마라면 가족의 감정까지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부장적 제도하에 시집살이 국룰이었던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 벙어리 삼 년이 현대판 육아와 씨름하는 엄마의 국룰이 되면서 나는 마음도 몸도 배설활동을 잊고 잃어버렸다. 아픔과 고통을 겪은 뒤에야 미련함과 아둔함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 결과 더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으며 치료를 해야 했다.
비록 현재인 지금, 여전히 가변적인 일정과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느리게나마 전반적인 내면의 변화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중이다.
참, 그리고 항상 강아지마냥 내가 들어간 화장실 문 앞에서 끊임없이 시답잖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남편과 비글자매에게도 화장실 선언문을 선포했다.
“앞으로 나 화장실에 있을 땐 집중해야 하니까 아무도 건드리지 마!!
건드리면 누구라 해도 가만 안 둘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