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줌마는 참지 않긔!!!
새벽 6시 기상, 영양제와 물 한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전날 누적된 피로와 밤새 찌뿌둥한 기운을 시원한 물줄기로 씻어낸다.
남편이 아이들의 아침 식사를 차리면, 바통을 이어받은 나는 비글 자매의 허기진 맘이 채워지길 바라며 오후 간식을 미리 준비한다. 순조롭게 끝내고 나면, 1호와 2호를 차례대로 깨운다.
아들이었다면 조금 편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비글 자매의 드레스 코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복이기에 의상 고민은 따로 할 필요가 없다. 대신 헤어스타일만큼은 주문에 불 이행시, 무한굴레의 나락으로 빠지게 되니 방심은 금물이다.
일과대로 흘러간다면 평화롭기만 할 아침이건만, 변수는 항상 일어나기 마련이다.
"옆으로 조금 가 봐."
"아~왜~ 언니가 가~"
"너 때문에 내가 자리가 좁잖아!!"
마주 보기를 지양하는 비글 자매는 꼭 식탁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데,
오늘따라 전날 늦게 잔 탓에 잠이 부족한지 얼굴과 말투에 짜증이 덕지덕지 묻었다.
결국 비글 자매의 조찬 행사에 초대된 나는 소프라노의 화려한 기교가 섞인 아리아를 열창한다.
혼을 갈아 넣은 열창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남편은 본인에게도 전달될까 얼른 아이들을 달래듯 나무란다.
시간 관계상 1막 공연을 짧게 마무리하고, 8시 3분 지하철을 타기 위해 부랴부랴 달린다.
숨이 터질 듯 아찔한 지하철에서 하차하면 절로 따라오는 다크서클이 ‘출근길 OOTD(Outfit Of The Day : 오늘의 패션)’를 완성한다.
"안녕하세요~"
아침 인사와 함께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모니터가 켜지길 기다리며 어제 보다 만 서류들을 다시 훑어본다.
수신 메일을 확인한 뒤, 본격적 업무를 시작하기 전, 광고업계 동향 및 기사를 살펴본다.
<네이버 파격 인사 채용, 81년생 여성 CEO 최수연氏>
'훗, 곧 능력 있는 40대 여자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오겠군. 이제 나도 조금 있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내 모습을 상상하면 흐뭇한 미소를 숨길 수가 없다.
그런데 히죽거리는 어깨너머로 현실을 알리는 부름이 들린다.
"강대리님!!"
"아! 네네~ 뭐 시키실 일 있어요?"
"오늘은 커피 머신 세척 하는 거 알려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불혹을 불과 며칠 앞둔 12월,
나는 경단녀 타이틀 대신 커피 머신을 씻고 비품 파악을 해야 하는 중고신입사원이 되었다.
선배가 알려준 대로 머신을 세척하다 보니, 묵은 때가 보였다. 소매를 본격적으로 걷어붙이고 솔로 구석구석 꼼꼼히 닦아본다. 그러자 세면대 주변이 커피 찌꺼기로 덕지덕지 묻었다. 세면대용 수세미로 주변을 야무지게 쓸다 보니 수전을 둘러싼 빨간 곰팡이와 물때가 눈에 띈다. 청소도구함에서 세제와 청소용 솔을 찾아 말끔히 제거하고 흥건해진 물기를 마른행주로 닦아낸다.
아무리 감추려 해 봐도 불쑥불쑥 살아나는 아줌마의 본능이 작은 일 하나도 대충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아지경 상태로 청소를 끝내고 나니 그제야 물 범벅이 된 셔츠 앞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소위 말하는 ‘현타’란게 오면서 청소 아줌마로 취직한 건지 기획 업무 담당으로 취직한 건지 헷갈렸다.
말끔한 주변과 달리 곱게 다려 입은 셔츠는 엉망이 됐지만,
깨끗한 머신으로 추출해 한결 짙어진 원두향이 어지러워진 내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20대,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그때, IT팀의 파트장이었던 40대 초반 여자 상사가 롤모델이었다.
비록 다른 팀이었지만, 성비부터 남자가 다수였던 IT업종에서 바늘귀를 뚫고 파트장이 되었던 그녀가 새내기의 눈엔 그저 ‘직장의 神’ 같았다. 그녀를 보며 나 역시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커리어를 쌓아가다 보면 멋진 미래를 꿈꿀 수 있을 줄 알았다.
현실은 40대를 앞두고 광고업에 전무한 ‘직장의 新’이 될 거라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당장은 20대에 꿈꾸던 화려한 커리어, 눈부시고 찬란한 미래는 맞이하지 못했지만, 아직 나에겐 남은 시간들이 많다. 평범한 아줌마의 언젠가 성공할지도 모를 성장 스토리지만, 매 순간 충실히 그리고 창피하지 않게 채워보려 한다.
청소든, 업무든, 소통이든, 그게 뭐든!!! K-줌마의 열정은 참지 않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