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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아, 쑥대머리 내게 다오...

골룸이 되기 전에...

by 강나봉

‘1호’를 낳은 지 16개월 만에 ‘2호’와 대면하며, 두 해 연속 같은 조리원을 방문했다.

발정기의 개과 포유류, 또는 그와 같은 짐승처럼 보이지 않을까 우려됐지만, 다행히도 조리원 선생님들은 연년생 육아의 고단함을 먼저 걱정해 주셨다. 산모가 최대한 쉴 수 있게 배려해 주신 덕에 곧 산후조리원은 지상 낙원 에덴동산이 되었다.


‘그래!! 이왕 이래 된 거, 선악과 먹기 전의 이브가 되어보자!'


‘1호’ 키우며 그동안 못 본 미드부터 드라마까지 죄다 섭렵했고, 매시간 식욕과 수면욕에 충실하게 하루를 꽉 채웠다. 종종 내가 두 아이 엄마란 사실을 깨닫게 된 건 ‘2호’ 수유 알림과 ‘1호’의 영상전화였을 정도로 오롯이 날 위한 시간만으로 2주를 보냈다.


드디어 다가온 퇴소일, ‘연년생 육아는 전투다’라는 육아 지침서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나는 고독하고도 치열한 싸움에 나선 선봉장의 마음가짐으로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비장함으로 무장한 내가 민망할 정도로 수월하게 첫날이 흘러가는 듯했고, 이대로라면 첫날부터 침대에 눕혀 재우는 것까지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유를 끝내고 침대 바닥에 눕혀 토닥이는데 갑자기 ‘2호’가 잠에 취한 얼굴로 더듬더듬 뭔갈 찾기 시작했다.


‘흠.. 손가락을 줘 볼까? 그러면 핸드폰을 할 수 없는데...’


짜장면과 짬뽕 다음으로 신중했던 고민 끝에, 살포시 나도 옆에 누워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 일부를 ‘2호’의 손에 쥐여 줬다. 처음엔 낯선 감촉 탓인지 손동작이 느려지더니 다시 용기 내어 만지작거렸고, 이내 새록새록 꿈나라로 들어갔다. 이제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맘껏 핸드폰을 즐기면 되는데, 갑자기 가슴께 응어리가 박힌 듯 뭉글거리고 매스꺼워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글과 말로만 익힌 연년생 육아에 지레 겁먹고, 한참 모자란 모성애로 조그만 아기를 낯선 곳에 혼자 떨어트린 못난 엄마였다. 2.8kg의 작은 세상에서 처음 느낀 감정이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순간, 2주의 시간이 자책으로 다가왔다. 따스한 피부도 아닌 고작 머리카락에 온기를 찾는 ‘2호’가 안쓰럽고 미안했다.

왜 나는 엄마라면 모두가 갖는 모성애라는 것이 ‘1호’와 ‘2호’ 출산까지 이어지는 시간에도 발현되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아이가 울면 나도 눈물이 났고, 아이가 떼를 쓰면 버겁고 힘들었다.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나조차도 모를 때가 많은데 우는 게 전부인 아이의 마음을 읽는 건 너무 어려웠다. 때로는 내가 지쳐갈수록 사랑스러워야 할 아이들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모성애보다 자기애가 강해서였을까. 아이들을 위해서라기보다 내게 주어진 과제를 끝내지 못하면 추가로 해야 할 나머지 공부가 싫었던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쥐고 잠든 ‘2호’를 보면서도 기막힌 모성애를 기대해 달라는 약속 대신 미안하다고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애틋한 내 마음과 달리 반전이 일어났다. 온기 가득한 손가락을 쥐여주면 오히려 울음으로 거부했고 머리카락만을 원했다. 그게 엉켜있건 씻지 못해 냄새가 나건 아랑곳하지 않았고, 빠져나오려 할수록 오히려 더 움켜 잡아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중엔 잠투정할 때만 아니라 불안할 때도, 옹알이할 때도, 젖을 먹을 때도 수시로 머리카락을 찾았고, 그것도 꼭 내 머리카락만을 고집했다. 그동안 혼자 즐긴 나를 책망하듯 머리채 잡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리란 믿음으로 견뎠다.

그 시간이란 게 2.8kg이 28kg이 될 때까지 이어졌지만 말이다.


‘1호’와 함께하는 놀이시간에도, 소아과에서 진료를 보는 동안에도 내 목은 항상 90도로 꺾여 있었고, 행색은 옥에 갇혀 목에 칼을 찬 쑥대머리의 춘향이었다. 기괴했지만 모두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희생이었고, 내게 주어진 과제라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과제를 완수할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 모성애는 자랐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하나를 내어주면 하나를 잃게 되는 생태계의 슬픈 원리를 깜박했던 나는 춘향이 다음 단계가 골룸이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 밤낮으로 머리털과 숱한 이별을 고했던 탓에 두피는 민낯을 드러냈고, 춘향의 쑥대머리는 그냥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모성애가 자랐다고 해서 본질의 나를 버릴 수는 없기에 28kg의 ‘2호’에게 이해를 바랐고 간절히 부탁했다.


“유치원 발표회 때 기대해~ 엄마가 반짝이 응원봉 들고 갈게~

근데 응원봉보다 엄마 머리가 더 빛나면 어쩌지?”


'2호'는 여전히 머리카락을 만지긴 한다. 대신 바뀐 게 있다면 본인의 머리카락으로 대상이 달라졌고, 달라진 대상 덕에 살살 어루만지는 수준이 되었다.

한 번은 휑한 정수리를 보며 한숨 쉬는 내게 ‘2호’가 떨어진 머리카락을 다시 내 머리에 살포시 얹더니 말했다.

“엄마! 내가 나중에 돈 벌면 예쁜 가발 사줄게~”


비록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빛나던 전깃불 같은 시간은 지났지만, 나의 세상과 시간은 온기 가득한 군불로 채워지고 있다.



나의 '부캐'를 '부타캐'~~

/ 흔하디 흔한 'K줌마-158764호'

/ 불혹을 앞두고 기나긴 경단녀 청산

/ 중고 신입 사원,직장의 新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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