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다고요!!!
2호 친구 엄마들 중,
완벽한 MZ세대가 있다.
70년대부터 80년대 출생자가 대부분인 엄마들 사이서 유일한 90년대생인 그녀는 단연코 화두였고, ‘추리닝과 조거팬츠’, ‘수금 가방과 벨트 백’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녀의 패션은 한마디로 ‘힙’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녀가 ‘ZUMMA-Influencer(줌마-인플루언서)’인 만큼 부러움 섞인 시샘의 시선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 이쁘긴 한데 애들 돌보기엔 저런 옷이 거추장스럽지 않나?”
내가 ‘국민학생’이었을 때다. X세대였던 언니는 시스루 뱅을 앞서가는 갈고리 뱅, 피죽도 못 얻어먹었을 것 같은 삐쩍 마른 갈매기 눈썹,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입술 경계선 등 지금 생각하면 꽤 파격적인 화장법을 고수했다. 강경 유교파인 엄마의 눈을 피해 외출하면 엄마는 언니가 숨겨둔 배꼽티를 찾아서 내게 입혔고, 허벅지까지 찢어진 청바지는 천을 덧대 곱게 기워놓았다. 외출에 돌아와 본인의 옷 상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언니가 항의라도 하면 ‘엄마는 전직 배구선수가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 정도의 강력한 스매싱을 등짝에 날리고 소리쳤다.
“대학생이면 학생다워야지!!!”
엄마를 포함한 당시의 기성세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X세대 언니는 스스로 개성과 표현의 아이콘이라 자부했던 것 같다. 언론에서 X세대의 패션을 비롯해 타인은 신경 쓰지 않고 개성만 추구하는 그들의 행태에 우려를 표할 때도 개의치 않아 했던 언니가 지금, 반백살의 기성세대가 되었다. 얼마 전, 대학에 입학한 Z세대 아들의 패션과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내게 하소연하기에, 그나마 조카와 나이 차가 덜 나는 내가 타일러 보고자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랑 뭐가 그렇게 안 맞는 거야?”
“음... 엄마랑은 모든 생각이 다 안 맞아.”
“아...”
회사에도 극과 극의 X세대와 Z세대가 있다. 업무이해도가 높은 90년생의 Z세대는 기성세대의 사고방식과 일 처리를 답답해했고, 잡무는 동등하게 분배해야 하며, 돈을 더 받는 직책의 책임론을 내세웠다.
70년생의 X세대는 팀원은 곧 제2의 가족이라 여겼으며, 업무든 회식이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대동단결론을 내세웠다. 하지만,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회사문화를 주창하던 Z세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본인의 근태까지도 자율성에 맡기곤 했고, 수평보다 수직의 소통을 선호하던 X세대는 회사의 안위를 걱정하며 만족할만한 업무 성과를 도출하기까지 고민을 거듭했다. 뇌 구조부터 다른듯한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항상 각자의 기준과 잣대로 평가했고, X세대도 Z세대도 아닌 나는, 그들 사이에서 고충을 양쪽으로 흡수하며 피로도가 쌓여갔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그들이 자아성찰을 먼저 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렇게 업무 외적인 요소와 내면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무렵, 불현듯 지난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떠올랐다. 10대 때, 만났던 친구들이 이제는 눈가 주름이 자글한 아줌마들이 되었고,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 다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아니, 첫 출근하고 다음날 걔 엄마가 전화 왔다니까? 우리 애 이제 거기 안 다녀요~ 하는데... 그 말을 내가 또 원장님께 전해야 하잖아. 하... 나 원장님한테 그날 오전 내내 붙잡혀 있었어..”
“우리 직원은 지각한 이유가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방귀 뀌어서래, 속이 매스꺼워서 회사를 못 오겠다고 하더라고. 팀장님이 어이없어서 나보고 원래 요새 애들 이러냐고 묻는데,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내가 주눅이 들더라니까. 더군다나 난 요새 애들도 아니라고!!”
“그거 알아? 우리 나이 검색하면 나무위키에서는 기성세대라 나오고 위키백과에서는 MZ세대라 나오는 거? 우린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세대야. MZ가 아니라 완전 DMZ 같아. 더(D)러운꼴 매(M)일보는 지(Z)랄 맞은 세대.”
깔깔 웃으며 X세대와 Z세대의 태도에 대해 비판을 이어가던 중, 친구 한 명이 의문을 제기했다.
“근데 왜 우린 아니면 아니다, 맞으면 맞다 그렇게 얘길 못하는 거지?”
“그러게... 사실 Z세대가 부럽기도 해. 걔넨 자기 의견 잘 말하잖아. 덕분에 우리가 편해진 적도 있고...”
“X세대인 팀장님은 열정이 여전히 20대 같아, 늘 지쳐 사는 듯한 우린 뭘까?”
툭 던진 질문에 우리는 그제야 다른 세대에 대한 비판은 신랄히 이어가면서 우리 세대만큼은 관대했음을 깨달았다. 자아 성찰에 대해서는 어느 세대도 빠질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간과했던 것이다.
동창들과의 대화를 상기하며 관계의 스트레스로 힘들었던 나 자신에게 물음표와 쉼표를 던지며 생각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면, 책임도 생각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각자가 속한 세대의 아집은 버리면서 타 세대에 아량을 베풀면, 세대 간 소통이 원활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본다. 물론, 다짐한 마음과 다르게 나 역시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보내고 있고, 여전히 극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꿈틀거리고 싶어 하는 이 '생각 변화' 자체가 희망의 조짐이 아닐까?
-에필로그-
“그런데, 우리 세대는 진짜 이름도 없나? M세대야? Y세대야?”
“음... 우리 세대는... 이해찬 1세대.. 라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