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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길 May 06. 2024

불편한 연휴

가치는 높게 평가한다.

 이번주 주말에는 어린이날이 끼어 들어가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월요일이 대체공휴일이기에 토요일부터 월요일 까지 3일을 연속으로 쉴 수 있다. 그리고 금요일날 기숙사에서는 연휴를 알차게 즐기라는 의미로 본래 지속하던 9시 까지의 자습 후의 퇴실이 아닌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에 가도록 조기퇴실을 해주었다. 금요일 저녁에는 매우 신났다. 당연하다. 3일을 연속으로 쉴 수 있는데 너무나 행복하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토요일은 학원을 가야했다. 일주일에 나는 학원을 딱 하루 가지만 하필이면 그 날짜가 토요일이다. 학원은 1시 20분까지만 가면 되며, 가봤자 1시간 이상 있다가 오는 것도 아니기에 금방이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다. 하필이면 오후 1시 20분이라는 애매한 시간에 걸터있다. 이 시간이 내게 애매한 이유는 주말 동안은 잠을 오래자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매일이 6시간 이하로만 잘 수 있다보니 주말에 부족한 잠을 채우는 편이다. 그렇기에 나는 금요일날 일찍이 잠에 든다고 하더라도 11시 즈음에 되어야 일어나는 편이다. 하지만 1시 20분이라는 시간은 내게 11시에 일어날 것이라는 선택권을 제한해버린다. 최소 10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학원이 먼 것이 아니다. 나의 학원은 일주일치 숙제를 하루에 모두 검사하기 때문에(그것도 구두 테스트로 진행한다.) 일주일간 공부했던 것을 당일날에 한번은 무조건 되돌아보아야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공부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당연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래, 토요일은 버리자. 정확히는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자고 마음을 먹고 일요일과 월요일은 푹 자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 토요일이 되었을 때, 나는 10시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바로 학원에서 준 교재를 폈다. 그 후 일주일간 배웠던 내용을 복습하다보니 어느새 12시가 되었고, 나는 밥을 먹고 학원으로 출발했다. 평소에는 버스를 타고 가기 때문에 훨씬 일찍 나가야 했지만, 이번 연휴에는 엄마도 쉬었기 때문에 엄마가 차로 태워다 주어서 아침에 복습할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나는 학원으로 갔다.


 학원을 간 후 나는 서점으로 향했다. 사고 싶었던 소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학원 바로 옆 건물이 서점이었기 때문에 나는 서점으로 쉽게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서점에 들어선 순간, 나랑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공유하는 3학년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는 다른 친구분들과 함께 오셨던 모양이다. 우연히 만났기에 너무나 반가웠다. 서로의 안부인사를 짧게 거친 후, 서점으로 들어갔다. 서점에서는 내가 사고 싶었던 소설 3권, 그 중에서 추리소설이 2권이고 로맨스 소설이 1권이다. 채 3개를 모두 산 나는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서점이라는 곳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곳 중에 하나이다. 그냥 책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토요일은 그렇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며 마무리 했다. 가는 길에 친구와 만나 pc방에서 잠시 게임을 즐기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문뜩 떠올랐다. 내가 이번 주말을 행복하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내게는 해야할 것이 많았다. 학업과 관련된 일이다. 최대한 많은 일을 한번에 끝내 놓는다고 한다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번 연휴 동안 해야한다고? 난 놀아야 되는데?

 굳이 연휴 동안 하지 않아도 되는 과제도 있었다. 허나 무조건 처리해야만 하는 과제가 2가지 있다. 하나는 국어 수행평가 발표를 위한 발표자료를 만드는 것, 또 하나는 학교 동아리 활동 보고서 작성이었다. 보고서 작성은 다행히 내가 동아리 시간에 조금 진행해 놨던 터여서 좀만 쉬다가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마음 먹었다. 보고서는 일요일 까지 작성해야 했고, 발표자료는 월요일 까지 작성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먹었다. 오늘 깔끔하게 보고서 작성하고 내일 놀고 월요일날 발표자료를 만들자고. 그리고 나는 잠간 낮잠을 청하였다.


 낮잠을 잔 후 눈을 떴다. 10분 알람을 맞춰놓은 덕에 깨어날 수 있었다. 근데 분명 저녁에 잤는데 왜 날이 밝은 것일까?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일요일이었다. 나느 분명 10분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들었는데, 어째서 일요일 9시 알람에 깬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그냥 내가 너무 피곤했으니 깊히 잠들었다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허나 또 하나의 의문이 나의 머리를 지배했다. "어째서 9시에 알람이 맞춰져 있지?"라는 의문. 나는 알람을 맞춰놓지 않는다. 생각해보았다. 그리고는 입으로 외쳤다. "아!!!!!!!!"

 떠오른 것이다. 알람을 맞췄던 이유가. 저번주에 나는 한국사 수행평가인 박물관 유물을 보기 위해 박물관에 갔다왔다. 박물관에서 유물을 하나 선택해서 사진을 찍은 후 그 유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수행평가인데, 내가 찍은 유물은 소위 말하는 '듣보' 유물이었다. 보고서에 적을 역사적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주 주말에 다시 가기로 하였고, 그것이 일요일 이었던 것이다. 기분이 더럽다. 이것을 왜 이제야 떠올린단 말인가?


 친구와의 약속은 10시 30분에 역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9시에 일어나서 5분 동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정리하였고, 얼른 아침을 먹고 일단 나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아침을 먹고 나가니 시간은 10시였고, 마침 운도 좋게 버스가 와서 버스를 타고 10시 15분에 역에 도착하였다. 길을 막혀있지 않아 금방금방 지나갔다. 1시 30분 즈음이 되자 친구도 도착하였고, 그 친구와 함께 박물관으로 향했다. 비오는 날이라 기분도 더러웠다.

 약 90분 정도에 걸쳐서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비가 미치도록 쏟아졌다. 너무 쏟아진다. 역에서 나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걸어가는데, 우산을 쓰고 있었음에도 나의 신발이 물을 내뿜는 지경에 이르렀다. 슬리퍼를 신었어야 했는데....

 신발에 물이 차면 기분이 더러운 건 당연하다. 그 더러운 기분으로 나는 박물관 탐사를 진행했다. 약 50분 정도에 걸쳐서 미리 검색해 놨던 유물을 찾아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안그래도 신발이 축축해서 기분이 불쾌할 지경이었는데, 박물관에서 역으로 걸어가면서 다시, 그리고 더 축축해지니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더러운 기분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니 오후 3시였다. 예상 했던 것 보다는 1시간 일찍 도착했다. 나는 잠시 낮잠을 취한 후 동아리 보고서 작성이나 일단 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고는 잠을 잤다.

 이번에도 알람이 나를 깨우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오후 5시에 일어났다. 나의 생체 시계에게 감사를 표한 후, 나는 침대에서 나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키고 동아리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다. 내가 미리 작성을 꽤나 많이 해놨던 터라 금방 끝났다. 6시가 조금 넘어서 할 일이 끝난 것이다. 보고서 작성을 끝내니 기분이 좋아져 거실로 나왔다. 기르고 나는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어버이 날에 할머니 댁에 방문할 수 없으니 월요일날 오전에 대신 방문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요일까지 내가 원한 만큼 잠을 충분히 청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에게는 국어 발표를 위한 ppt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도 9시에 일어나야 했다. 허나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토요일에 매우 일찍이 잠에 들어서 일요일 오전에 일어난 것은 이미 잠을 오래 청했다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나, 반대로 생각하자면 잠을 청했기에 나만의 저녁시간을 날려버린 셈이었다.


 뭐가 어찌되었든 더 생각해 봤자 스트레스라고 판단한 나는 잠시 침대에서 쉬다가 국어 발표 자료나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대로 난 침대에 누웠고 월요일날 엄마가 깨워서 일어났다. 젠장 젠장 젠장. 잘 생각이 아니었다. 잠시 눕고 싶을 뿐이었다. 누워보니 잠이 몰려왔고, 잠깐 정도는 자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던 사이 나는 이미 하루를 또 날려버렸다. 내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고, 해야할 것들, 다른 말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만 하며 이틀을 보내버렸다. 화가 났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에 너무나 화가 났다. 내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저녁만 되면 잠이 몰려오는 내가 너무나 화가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말자고 항시 말하던 나는 잠깐만 연연하고 할머니 댁에 갈 준비를 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활머니 댁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시골에 가까웠다. 어렸을 때는 장수풍뎅이와 사슴 벌레로 씨름이 가능할 정도로 다른 도시에 비해서는 시골인 편이었다. 그리고 그 시골에 오랜만에 다가섰을 때, 냄새가 다르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고향의 냄새라고 표현해야 할까? 냄새가 달랐다. 나의 후각 세포들이 내게 이것은 내가 바라왔던 것이라고 외쳤다. 괜히 감상에 젖는 기분이었다. 

 본격적으로 집에 들어서니, 내가 키가 컸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할머니집 벽에는 선풍기가 붙어있다. 나는 중학생이 되며 지금 집으로 왔는데, 어렸을 때 올려다보기만 했던 선풍기가, 지금은 나와 정면으로 응시를 하고 있었다. 키가 컸다는 것이 체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잠시 인사를 나눈 후, 금방 나왔다.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친할머니 댁이었다. 친할머니 댁에서는 짜장면을 먹고 왔다. 마침 아침도 먹지 않았던 터라 포만감에 행복해졌다.


 집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3시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12시가 되기 전에 무조건 국어 발표자료를 만들고, 선생님께 보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3시 20분이 되는 순간에 발표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6시가 되어서 완성했다.

 국어 수행평가는 관심사를 소개하는 발표하기였다. 나는 그 발표를 나의 진로인 수학과 연관을 짓기 위해서 큐브를 관심사로 선정하여 ppt를 만들었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큐브를 많이 만져왔다. 물론 중학교 3학년 부터는 큐브에서 손을 떼어버린지 오래이긴 했지만, 큐브만큼 이번 수행평가에 어울리는 주제는 없었다. 평소에 내가 관심을 가지던 분야이었기 때문인지 금방 만들어서 기분이 꽤나 좋아졌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니 금방 기분이 더러워졌다.


 월요일까지의 3일 동안, 내가 자유를 만끽했던 적이 있었나? 토요일에 학원 갔다 서점에 들리고 pc방에 잠시 들린 것 빼고는 없던 것 같았다. 토요일에 학원에 갔다 친구와 잠깐 2시간 정도 놀다가 헤어지고 그대로 잠들어버려서 일요일이 되었고, 박물관에 다녀온 다음 동아리 보고서를 작성하고 또 잠에 들어 오늘, 월요일이 되었고, 오늘은 할머니댁에 갔다온 후에 국어 발표 자료를 만들었으며, 곧 나는 기숙사로 다시 입실해야 했다. 젠장, 생각할수록 불편한 연휴였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내 연휴가 아주 편안하고 만족할 만한 연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갖고 있던 걸 잃어버렸을 때의 그 빈자리, 그 불편함은 누구나 알 것이다. 평소 주말에 나의 자유를 만끽해왔던 나는, 주말 동안의 소소한 행복을 챙기지 못하는 주말, 연휴가 생소했고 익숙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과 비교를 하게 되면서 억울함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억울함을 느낄 필요도 없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는 안다. 허나 뭐가 되었든 간에, 그 사람들 처럼 나도 스트레스가 쌓이고 화를 불러일으키는 호르몬이 분비되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 양이 다를 뿐이겠지.


 이번 연휴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금만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매일이 한가했던 연휴에 바쁨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해본 것 뿐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취업을 하든, 대학생이 되든, 혹은 군대를 가게되는 간에 이 바쁨이라는 이름으로 물들여진 주말은 더 자주 찾아오게 될 것이고, 강도도 지금과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런데 고작 이따위 일에 힘들어 하는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더 강인해질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여유를 즐기되,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연휴였다.

 내가 듣는 인터넷 강의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하루에 하나씩만 깨달으면 돼"

 3일에 하나를 깨달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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