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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길 May 10. 2024

기숙사 탈출의 날

꾀병은 없어도 돼


 이번주 목요일에 나는 아침부터 몸이 몹시나 아팠다. 기숙사에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는 매우 멀쩡한 상태였으나 학교로 등교하여 1교시를 시작한 이후부터 점점 배가 아파왔다. 화장실을 무진장 가고 싶었지만, 그 어디를 둘러봐도 휴지 한 장도 찾지 못하였다. 그런고로 나는 미친듯이 대변을 보고자 하는 욕구를 참았다.

 아마 3교시즈음 부터였을 것이다. 배가 아픈 것은 조금 나았지만, 갑자기 온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열이 높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터라 그냥 그러러니 넘어갔다. 그러고서는 4교시가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내 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러고는 곧장 보건실로 향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들어온 이후로 보건실을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보건실은 1층 복도 끝에 위치해 있었는데, 시설이 매우 좋았다. 마치 교실과 비교되는 교무실처럼 보건실은 세련되어 보이고 최근에 리모델링 한 듯이 모든 기구들이 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업 시간에 보건실을 간다고 꾀병을 부리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보건실에 들어서자 보건 선생님께서 가만히 앉아계셨다. 옆에 있는 의자에 앉자, 보건 선생님께서 "학번이랑 이름 말해볼래?"라고 내게 물으셨고 나는 곧장 대답했다. 내가 대답하자 보건 선생님은 컴퓨터에 타자를 치시더니 이어서 말씀하셨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라고 내게 물으셨고, 나는 몸에 열이 나고, 두통도 있다고 대답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보건 선생님은 체온계를 내 귀에 꽂으시고 열을 재시면서 37.7도라고 알려주시고는 코로나 일지도 모르니 학교 끝나고 병원에 한번 들려보기를 내게 권고하시면서 타이레놀을 주셨다. 나는 그 타이레놀을 먹고서 5교시에 임했다.


 이번주 목요일은 6교시까지만 있었다. 나는 사실 조퇴하고 싶었으나 5교시, 6교시 총 2시간만 버티면 학교가 끝날 것이기에, 개근을 목표로 가지고 있던 나는 학교에서 버티기로 마음 먹었다.

 타이레놀의 효과는 역시라면 역시인 듯이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5교시가 시작하고 나서 나는 내 몸이 점점 좋아지지 않고 있음을 느꼈다. 확실한 것은 체온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었다. 점심시간보다 월등히 나의 체온은 올라갔다. 또한 두통의 정도도 극심하였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서 머리를 손으로 쥐어짜고 싶을 정도였다. 교실에서의 나의 자리는 복도 벽 쪽 자리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머리를 기대기 위해 허리를 기울이기도 하는데, 그 날도 아무 생각 없이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벽에 기대자, 약하게 부딪힌 그 충격에 나의 두통은 극심해졌다. 나도 모르게 신음을 낼 정도였다. 물론 소리를 크게 내지는 않아서 내 옆자리 짝꿍말고는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6교시가 되었다. 6교시는 곧 있을 체육대회를 위한 준비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우리 학교는 체육대회 당일 날에 반마다 퍼포먼스를 준비해야했다. 따라서 우리반은 퍼포먼스를 위해 6교시가 마침 담임선생님 시간이었기에, 6교시 시간에 퍼포먼스 연습을 하기로 했었다.

 나의 상태로는 연습은 무리였다. 불가능이었다. 연습 중간에 쓰러진다고 하더라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고 할 만큼 나의 상태는 매우 좋지 못했다. 얼른 타이레놀의 효과가 나타나기를 고대할 뿐이었다.

 연습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 나는 반장에게 말하여 연습에 빠진다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반장은 나의 상태를 제대로 알아차리고는 내게 쉬라고 말하였다. 또한 담임 선생님도 나의 상태를 보시고는 조퇴를 안해도 괜찮겠냐고 걱정해주셨다. 딱 1교시만 버티면 오늘 하루는 조퇴 처리 없이 말끔하게 나의 생기부에 기록될 것이었기에, 나는 학교가 끝나고 병원에 갈 것이라고 선생님께 전하였다.

 반 친구들이 춤 연습을 하는 모습을 뒤에서 의자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았다. 6교시 내내. 하지만 나는 그때의 상태가 아마 가장 최악이었을 것이다. 열이 하도 높아서 체육복 위에 후드 집업을 입고도 너무나 추웠다. 나는 그렇게 온몸을 옷으로 두르고 후드집업 모자까지 쓴 상태에서 온몸을 벌벌 떨어야 했다.


 종이 쳤다. 이제 나는 병원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기숙사에서는 자습 시간이었기에, 감독 선생님께 병원에 가야한다고 전해야 했고, 말씀도 전할 겸 가방도 기숙사에 놓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학교 밖까지 걸어가기란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오자, 열 때문에 벌벌 떨던 나 마저도 덥게 느껴질 정도로 밖은 더웠다. 그나마 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통에, 온몸은 쑤시고 무거웠지만 그래도 밖이 더웠기에 춥다고 더이상 느껴지지는 않았다.

 기숙사에 가방을 놓고 나와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었으나 걸어서 10분거리에 병원이 있었기에, 그냥 걸어서 병원에 가기로 했다. 또한 마침 진통제의 효과도 나타나기 시작한 터였기에 걷는 데에 큰 지장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였다. 나는 목도 안아프고, 콧물도 가래도 없었다. 즉, 나는 내 몸의 열의 원인을 잘 몰랐다. 적어도 감기는 전혀 아닌 것 같았다. 병원에서 접수를 하고 진료를 받으며 의사 선생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


 "학생처럼 열의 원인을 모를 때에 그 열을 불명열이라고 하거든요? 혹시 오늘 설사를 한 적이 있었나요?"


 라고 내게 말하셨고, 나는 학교에서 화장실을 무진장 가고 싶었으나 휴지가 없어 가지 못했다고 전하였다. 그러자 하시는 말씀이,


 "아마 장염일 것입니다. 보통 장염에는 구토나 설사 등의 증상만 있을 뿐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두통과 열도 있을 수 있고, 몸살도 있을 수 있습니다."


 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장염이구나. 그리고,


 '내 계획대로 되었구나 라는 사실을.'


 목요일이 되기 이틀 전 화요일이었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째서인지 그날따라 너무나 집에 가고 싶었다. 어떻게 집에 갈 방법이 없을까를 궁리하기 시작하였다. 기숙사라고 해서 무작정 학생들을 잡아두는 곳은 아니고, 가족 사정이 있거나 혹은 기숙사에 있기에는 몸이 너무 아프다면 잠시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따라서 나는 '꾀병을 부려야 할까? 아니면 무언가 사정이 있는 척을 해야할까?' 등등 나는 여러 생각을 걸치고 있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숙사에서 나올 수 있는,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생각을 하다가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 기숙사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기숙사 방에 돌아왔을 때였다. 목이 너무나 말랐다. 오늘 저녁 메뉴에는 음료수도 없었기에 내게는 수분이 급했다. 뭐라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속에 나는 침대 밑, 서랍을 열어 무언가가 있나 확인을 해보았다. 오렌지 주스가 있었다. 한 모금을 마셔보았다. 그러나 맛이 무언가 이상함이 분명히 느껴졌다. 다시 한 모금을 더 마셔보았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음료수는 상온에서 3주 동안 방치된 음식이었음을.

 나는 떠올릴 수 있었다. 꾀병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아파진다면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서둘러 장염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장염에 대해 검색을 했더니 식중독도 한세트로 설명이 나왔다. 어쨌든 내가 하나 깨우친 사실은, 장염은 24~48시간의 잠복기 이후에 2~3일간 구토나 설사 등이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이 음료수를 마시고 장염에 걸린다면 기숙사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에 장염에 자주 걸렸었다. 그래서 장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장염의 정도가 커지기를 난 바라지 않았기에, 음료수를 소량만 섭취한다면 적절히 버틸만한 장염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마신 두 모금으로는 장염에 걸리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현재 음료수 병에는 음료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음료수를 다 마신다면, 잠복기간을 생각해 수요일은 무사히 넘어갈 것이며, 목요일 중 어느 때에 아플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목요일부터 집에 갈 수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수요일 날에 무진장 후회했다. 내가 한 짓이 너무나 멍청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해도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을 해버렸다. 그러나, 현재 시점인 금요일을 기준으로 난 나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너무나 편안한 저녁과 밤을 집에서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장염이라고 진단을 받은 후, 나는 엄마에게 전화해 기숙사에서 잠시 나와야할 것 같다고 전하였다. 그리고는 나는 그 날 그대로 기숙사에서 나왔고, 집으로 도착해 바로 설사를 했다. 설사를 한 후에 밥을 먹고 약을 먹은 다음 그대로 잤다. 그리고 목요일날 누우며 생각했다. 이렇게 침대에 누워 일찍 잘 수 있다니, 가끔은 이런 일탈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진짜 내 계획대로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배가 아팠던 것은 설사를 한번 하자마자 괜찮아졌고, 몸은 여전히 조금 아팠지만, 진통제에 병원에서 지어준 약 덕분에 움직이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따라서 나는 그날 침대에 누워 자유를 만끽하며 일찍이 잠을 청했고, 다음 날 아침에 이르러 확실히 느꼈다. 금요일의 나는 완치였다. 몸의 그 어느 곳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환자로 위장하여 금요일도 학교에서 편히 보냈다.


 이 사실은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담임선생님도, 내 친구들도, 사감선생님도, 부모님도,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선배님들도 모를 것이다. 오직 나만이 이 비밀을 꾹 간직해둘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내 자식들이나 친구들에게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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