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너무 귀찮을 뿐이었을까?
수능이 끝나고 다음날인 금요일. 다른 학교는 재량휴업일인데에 비해서 우리 학교는 정상 등교다. 미친것. 하지만 교장선생님보다 더 미친 것은 수능 끝난 고3이었다. 도대체 스윙을 2명이서 타며 학교 운동장을 배회할 생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것일까? 박수 마렵다.
수능 때문에 반에 있던 책을 싸그리다 집에 가져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금요일에 등교할 때는 특히나 교과서를 집에 두고온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난 괜찮았다. 기숙사에 짐을 두었기 때문 ㅋ
학교가 끝난 뒤에 친구와 pc방에 갔다가 9시는 되어서 집에 들어왔다. 아빠는 저 먼 부산으로 출장을 가셨고, 엄마는 직장에 있었다. 집에는 형과 나 둘 뿐이었다.
내가 학교를 가며 엄마가 내게 항상하는 말이 있다. 아니 사실 매일 하는 말이다.
"밥 해놓은 거 있으니까 나중에 차려먹어"
이 얼마나 감사스러운가. 나와 형을 위해서 밥을 준비해놓으셨고, 알아서 차려 먹으라고 하신다. 아 그 마음, 너무나 감사하다. 하지만 감사한 건 둘째치고 나는 밥을 차려먹지 않는다. 하교하는 길에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는 거짓말을 한다.
"미안해요 엄마"
엄마의 지극정성인 사랑을 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솔직히 굳이 저녁을 먹었다는 거짓말을 앞장 세우고 밥을 먹지 않을 때 마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왜 나는 엄마가 준비해준 밥을 먹지 않을까? 단순한 귀찮음 때문일까?
나도 궁금해서 미치겠다. 엄마가 나를 위해 밥을 차려주었다는 사실을 난 인지했다. 근데 왜 나는 굳이 거짓말을 거의 매번 하는 것일까? 이것은 반항심도 아니다. 그렇다고 고1인 내게 사춘기가 왔을 리도 없다. 나는 엄마가 무지막지하게 좋다.
식당 음식을 하도 자주 먹어서 그냥 내 입이 집밥과 맞지 않게 된 것일까? 끊임없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보았다. 하지만 고민을 거듭한다고 한들 난 도저히 답을 모르겠다. 이번에도 답이 없는데 나 혼자 방황하는 것일까? 근데 생각해보니까
"그냥 내가 배고프지 않았어"
저녁에 집에 왔는데 배가 부르지는 않다. 그렇다고 굳이 밥을 먹어야 할 만큼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그냥 배고프지가 않아서 나는 그런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내 행동이 어머니의 사랑을 무시하는 행위였을까? 내 욕구대로, 내 마음가는 대로 행동한 것이 엄마에게 상처가 될까? 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절대 그럴리가 없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집밥을 꽤나 자주 먹었다. 엄마가 밥을 차려주면 그냥 먹었다. 엄마가 차려준 거니까. 그리고 이러했던 나의 태도는 집밥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만들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밥을 먹어야만 한다. 근데 그 시간에 꼭 배가 고픈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내게 밥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난는 먹었다. 밥그릇이 깔끔해질 때 까지 먹었다. 배가 불러도 밥그릇이 채워져 있다면 계속해서 먹었다.
배고플 때 먹는 밥은 최고였지만, 밥그릇을 비워야 한다는 집념에 의해 먹는 밥은 맛있지 않았다. 그저 배를 억지로 채울 뿐이었다.
어릴 때는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그저 엄마가 밥을 먹으라 했다는 이유만으로 밥그릇을 비워야 한다는 압박까지 받으니까. 그래도 압박을 받는 만큼 그 압박에 대한 해방도 금방 깨우칠 수 있었다.
내가 너무나 배불렀을 때였다. 정말로 더 이상 음식을 먹었다가는 위가 터져서 온 집안이 내 뱃속 음식물로 뒤덥힐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밥그릇을 비워야 했다. 근데 나는 먹을 수 없다. 배부르니까. 배고프지 않으니까. 난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배불러서 못먹겠어."
"배부르면 억지로 먹지마렴"
"그럼 앞으로도 밥먹기에 배부르면 안먹어도 되는거야?"
"당연하지, 억지로 참을 필요 없어. 참지 않는 게 엄마는 더 편해."
어린 시절에는 고작 말 따위가 마법을 능가할 때가 있다. 고작 저 짧은 대화 하나로 나는 행복을 느꼈다.
"참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것 참 순수한건지... 어찌되었든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고작 저 몇초의 일이 지금의 나에게 까지 영향을 주었다. '억지로 참지 말자.', '싫은 건 싫은거야.'라는 내 생각이 형성된 이유였다.
결국 나의 저녁을 먹었다는 거짓말은 엄마의 업보였다. 엄마가 나를 이렇게 키웠잖아. 싫은 건 싫다고 하라고. 엄마 덕분에 나는 자기 주장이 강한 고딩이 되었어. 소신있는 고딩이 되었어. 물론 엄마의 사랑을 대표하는 저녁을 먹지 못한 건 조금 미안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거 알잖아.
"한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