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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길 Nov 24. 2024

기숙사는 부끄러웡

살짝?

 기숙사를 처음 경험했던 날이 떠오른다. 뭘 하기도 너무 그렇고, 좀 부끄럽달까? 그냥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같은 방을 공유하는 사람이 성별이 다른 것도 아닌데, 방에서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을 때면 괜히 좀 부끄럽고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뭘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확실히 단체 생활에 익숙해지니 마치 집에서의 내 모습처럼, 아니면 그 이상으로 날라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숙사에서 부끄러운 것이 있다.


 "글쓰기"


 이유는 모르겠다. 글쓰기 수행평가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은 아무런 감정이 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릴 때나, 아니면 나 혼자 소설을 쓰고 있을 때. 그러한 상황이 누군가에게 목격된다면 오랫동안 잊고 있던 부끄러움이란 놈이 "나야, shy boy..."이러며 내 머릿속에 등장한다. 왜 글 쓰는 것이 그리 부끄러운 거지?


 막말로 기숙사에서 뭘 하든 전혀 부끄럽지가 않다. 우리 기숙사는 건물이 하나라 남녀가 한 건물에서 생활하는데, 가끔 방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문이 열리면 간혹 여자에게 내 팬티만 입은 모습이 노출될 때가 있다. 근데 그 때에도 딱히 부끄러움은 안느껴진다.(부끄러워야 맞긴 한데)

 또 기숙사에서는 핸드폰을 걷다보니 친구들 끼리 모이면 할 것이 대화밖에 없다. 그럴 때면 자신들의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 그런데 기숙사는 마치 하나의 가족 공동체같이, 심지어는 그 이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전혀 부끄럽지 않다.

 또 고딩이 한방에 모여있으면 야한 농담도 서슴치 않게 한다. 가끔 큰 소리로 야한 말을 외치기도 하고, 신음소리를 큰 소리를 내며 문 밖으로 많은 사람이, 심지어는 사감선생님에게 까지 들리도록 하기도 한다. 근데 그럴 때에도 딱히 부끄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오직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


 기숙사에서 글쓰기, 딱 저 말만 들으면 너무나 낭만이 있다. 설령 내가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아다가 "기숙사에서 글쓰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낭만 뒤@지잖아?"라는 대답이 올 것이다. 난 그렇게 확신한다.

 이 말대로라면 사실 난 낭만을 제대로 즐기는 중이다. 아, 절반만 즐긴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기숙사에서는 일주일 내내 내용만 구상하고, 글은 주말에 몰아서 쓰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주중에, 기숙사에서 왜 나는 글을 쓰지 않는가?


 이것은 아마 기숙사의 자습실 구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내 기숙사는 자습실이 따로 있어서 거기에서 공부를 해야한다. 그리고 자습실은 상상 그 이상으로 고요하다. 이런 상황속에서 노트북의 키보드를 누르는 것은 "나 노트북 쓰고 있어요~"라고 기숙사 전체에 알리는 행동과 비슷하다. 

 스터디 카페를 가본 적이 여러분에게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스터디 카페는 노트북 사용을 금지한다. 노트북 소음 때문이다. 그리고 기숙사에서 노트북을 사용한다는 것은 마치 스터디 카페에서 노트북을 사용한다는 느낌이다.

 물론 스터디 카페와 기숙사 자습실은 완벽히 다르다. 내가 노트북을 쓴다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머리로는 항상 느낀다. 내가 뭘 한다고 아무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내 스스로 뭘 해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도저히 기숙사에서 글을 못쓰겠다. 내가 글을 쓰다가 남들이 내게 "오이~ 너 뭐하냐?"라고 물을 때면 나는 "그냥 수행평가 때문에 글 쓰는 중"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좋다. 부끄러움과 그냥 살아가자. 그럼 기숙사에서 어떻게 글을 쓸 수가 있을까? 그것은 바로 핸드폰! 핸드폰으로 쓰면 된다. 핸드폰은 기숙사 내 방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며, 자습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데다가 소음도 없다. 핸드폰으로는 내가 뭘 해도 아무도 모른다. 근데 한가지 단점이 있다.


 "아 쌉 진짜 핸드폰으로 못해먹겠네."


 내가 실제로 했던 말이다. 핸드폰으로 글쓰기는 너무 어려웠다. 짧게야 뭐 쉽게 쓰는데, 조금만 길어져도 눈도 너무 아프고, 그냥 너무 힘들다. 따라서 핸드폰은 탈락.

 핸드폰까지 탈락된 나머지, 나에게는 한가지 방법이 남았다.


 "기숙사에서는 생각만 하면 되잖아?"


 주중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이다. 사실 글 쓰는 시간에 생각을 한다면 소재를 더 늘릴 수 있고 더 많은 글을 써낼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써낼 시간을 주말에 확보하면 되는 것이다.

 너무나 완벽한 시간 소비. 주중에는 공부하고, 주말에는 글을 쓴다. 이러한 스케줄에는 '게임'이라는 것이 내 일과에 들어가지 않는다. 너무나 건강한. 무슨 느낌인지 알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계속 머릿속으로 정답을 알고 있다.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하면 되잖아?"


 글쓰는 게 부끄럽다. 그러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글을 쓰면 된다. 이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발표라는 것이 처음에는 나도 부끄러웠지만, 부끄러운 대로 그냥 목소리 크게 하다보니 지금은 마치 내 삶의 일부처럼 별 생각이 안든다.

 이것처럼 부끄러우면 그냥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하면된다. 그럼 부끄러움은 자랑스러움으로 바뀐다. 근데 나는 부끄러움과 100분 토론을 신청하지 않았다. 언젠가 '적절한 시기'에 하면 되겠지 뭐.

 한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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