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수다
파올로코엘료는 천재입니다.
동화와 같은 아름다운 얘기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철학적 사고와 통찰을 넣어둔, 독자의 의식 수준에 따라 매번 다르게 느껴지게 합니다. 그의 책 ‘연금술사’를 읽고서 진한 감동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처’의 첫 장을 열었을 때의 그 느낌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행동 없는 기도는 활 없는 화살과 같다.
기도 없는 행동은 화살 없는 활과 같다. 주1)
궁수에게 필요한 활, 화살, 표적 그리고 궁수의 자세는 지금 내 삶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선, 활은 생명입니다.
궁수에게 활이 없으면 안 되듯 모든 근원에 활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 활력의 근원이 지금 제겐 책입니다.
활은 유연합니다.
유연함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책 또한 본연의 의식이 없이 독자의 생각과 사고로 끝없이 사유가 확장될 수 있기에 나의 활은 책입니다.
화살은 나의 의도이자 의지입니다.
마치 활의 힘을 표적의 정중앙으로 전달하는 화살처럼 말입니다.
의도는 명료하고 올곧고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하며 올바른 동작을 취했다면 손을 펼치고 활시위를 놓아 화살을 날려야 합니다.
목표를 향한 저의 과정이 충실했다면 이제 결과는 내 몫이 아닙니다.
혹, 신성한 무관심이라는 얘길 들어보셨나요? 우리가 자신의 최고의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면 결과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자세에는 삶에 대한 우리의 능동적인 모습을 그러나 결과에 대해서는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수동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 이그니티우스 로욜라는 만일 교황이 예수회 신학대학을 탄압한다면 어떤 기분이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25분 정도 기도하고는 거기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아마도 이것이 모든 고행 중에서 가장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최고의 에너지를 쏟아부은 이상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신성한 무관심’을 달성하는 것 말이다. 크게 성공한다면 좋은 일이다. 그리고 실패한다 해도 역시 좋은 일일 수 있는데, 그것이 시간에 속박된 제한된 마음에게 지금 여기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나기만 한다면 말이다. 주2) 올더스 헉슬리, 영원의 철학
표적은 내 삶의 목적, 꿈, 사명입니다.
나에게는 저만의 사명이 있습니다.
표적은 궁사에게 하찮은 종이 조각을 넘어 세상의 중심이 됩니다.
나의 꿈, 사명 역시 누가 뭐라 하든 내 인생의 중심입니다.
나에게는 이미 표적이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표적을 선택했으니, 그 책임 또한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표적 앞에 서서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거리를 좁혀가야 합니다.
내가 표적에 닿을 자격이 있는지, 갖추어졌는지 끊임없이 점점해가야 합니다.
궁사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궁사가 존재해야 표적도 존재합니다.
내가 삶의 목적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산다면 내 삶은 하찮은 종이조각이 되어 가벼운 바람에서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겠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의 목표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육중한 무게로 나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끝으로 자세입니다.
활 쏘는 법을 배우는 궁사로서의 나의 자세는 어떠한가?
책을 읽는 나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영어로 태도를 뜻하는 Attitude를 알파벳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한 다음 (예를 들어 A는 1, B는 2, C는 3, D는 4, E는 5) 그 번호를 더해보면 정확하게 100이 나옵니다.
태도는 모든 것입니다.
사람, 일 그리고, 삶을 대하는 나의 자세와 태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결과물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내가 자격이 갖춰졌을 때, 나는 더 이상 활과 화살과 표적이 필요하지 않은 궁사가 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배움의 과정에서 필요했던 도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것이 궁사의 무의식 속에서 자연스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이르게 한 수단보다는 그 길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끝으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이 감명 깊었더라도 너 스스로 직접 경험해야만 진정한 의미가 된다는 걸 잊지 말아라.”
나는 과연 어떠한가?
활은 준비가 되었나?
활과 화살은 있는데 표적을 정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혹시 활, 화살, 표적도 있는데 아직 그 길에 들어서는데 망설이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나의 태도를 점검해 봅니다.
나 스스로 직접 경험을 해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벽 5시,
새벽의 에너지와 함께 하는 동료들의 응원 덕분에 오늘도 이 자릴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활과 화살을 가지고 올바른 자세로 표적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주1) 아처(Archer), 파올로코엘료, 민은영 역, 김동성그림, 문학동네, 2021년
주2) 영원의 철학, 올더스헉슬리, 조옥경 역, 김영사, 2014년